신문은 선생님

[숨어있는 세계사] '동방 구원자' 소문 돌던 몽골이 중세 서유럽 초토화했죠

입력 : 2024.01.16 03:30

가짜 뉴스가 바꾼 역사

몽골의 케레이트 부족 지도자인 ‘옹 칸’을 전설 속 기독교 왕국을 이끄는 ‘프레스터 존’으로 묘사한 15세기 그림. 책 ‘마르코 폴로의 여행기’에 실렸어요. /브리태니커
몽골의 케레이트 부족 지도자인 ‘옹 칸’을 전설 속 기독교 왕국을 이끄는 ‘프레스터 존’으로 묘사한 15세기 그림. 책 ‘마르코 폴로의 여행기’에 실렸어요. /브리태니커
지난 1일 새해 첫날, 일본 이시카와현에 규모 7.6의 큰 지진이 일어났어요. 혼란을 틈타 소셜 미디어 등엔 가짜 뉴스가 빗발쳤어요. 당시 일본 공영방송 NHK도 나서서 가짜 뉴스에 주의를 기울이라고 당부하기까지 했답니다. 재난 피해와 상관없는데도 "도와달라"면서 AI(인공지능)까지 동원해 조작 사진을 넣은 가짜 게시글이 올라왔어요. 거짓으로 기금을 모금하고, 조회 수를 높여 광고 수익을 올리려고 한 거죠. 이런 가짜 게시글은 돈도 문제이지만 진짜 구조가 필요한 사람들을 돕지 못하게 만들 수 있었기 때문에 큰 해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가짜 뉴스는 인터넷이나 소셜 미디어가 없었던 과거에도 있었답니다. 사람들의 마음을 현혹하고 사회를 혼란에 빠뜨렸어요. 여러분이 익히 알고 있는 유명한 사건들도 가짜 뉴스와 관련된 것이 많아요. 역사적으로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 한번 알아볼까요?

믿었던 '프레스터 존 왕국'에 발등 찍힌 유럽

'프레스터 존 왕국'에 관한 소문이 중세 유럽인을 사로잡았어요. 12세기 남독일의 역사가이자 주교였던 오토 폰 프라이징이 책 '연대기'에서 언급한 나라입니다. 책에 따르면, 이 왕국은 아시아(혹은 아프리카)에 있던 기독교 국가라고 합니다. 광대한 영토를 가지고 있어, 동쪽에서 달려 서쪽 끝에 도착하려면 4개월이나 걸렸다고 해요. 기독교의 일파인 네스토리우스교를 믿는 사제가 이슬람교도들을 물리치고 동방에 왕국을 건설한 것으로 알려졌어요. 당시 팍팍한 시대를 살던 유럽인들은 이런 위대한 기독교 국가가 있다는 이야기에 희망을 얻었어요.

11세기 말 비잔틴제국('동로마'라고도 불려요)의 황제는 로마 교황에게 도움을 요청했어요. 기독교 성지이기도 한 예루살렘을 이슬람 세력인 셀주크 튀르크가 점령했다며, 성지를 되찾기 위해 교황이 나서달라는 것이었어요. 이에 교황은 성지를 회복하기 위해 십자군 전쟁을 시작했어요. 서유럽에서 기사, 상인, 농민 등 다양한 사람이 전쟁에 동참했지만, 전쟁은 난항을 겪었어요.

대신 유럽에서는 '프레스터 존 왕국'의 군대가 예루살렘 성지를 회복해 줄 것을 기대하는 사람이 늘어났어요. 그들이 언젠가 군대를 이끌고 이슬람인을 몰아내 줄지도 모른다고 믿었던 거죠. 당시 유럽의 수많은 성직자와 역사가들이 유럽을 구원해줄 그들의 실체를 밝히고자 애썼어요.

하지만 당시 동방에 있었던 제국은 몽골이었답니다. 그들은 우리가 잘 알다시피 기독교와는 상관없었어요. 오히려 몽골군은 저항하는 이들을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무참히 살해하는 학살자에 가까웠어요. 기독교인들이 교회로 피신하자 그곳에 불을 질렀다는 기록도 남아 있죠. 그런데 '프레스터 존 왕국'의 소문은 어디서부터 시작된 것일까요? 아마도 옛 몽골 부족 중 네스토리우스교를 믿는 부족이 있었다는 것과 몽골 황실 내부에 네스토리우스교 신자가 있었다는 사실이 잘못 전달된 것으로 보여요.

13세기 몽골군은 말을 타고 서쪽으로 진군하며 유럽을 초토화해요. 러시아, 중앙아시아, 폴란드, 헝가리 등이 큰 피해를 보았죠. 그제야 유럽인들은 '프레스터 존 왕국'의 환상에서 완전히 깨어났어요. 그들이 기다렸던 이들은 동방의 구원자가 아닌 침략자였다는 사실을 알게 된 거죠.

흑사병 잘 버티던 유대인, 가짜 뉴스로 학살돼

14세기 중세 유럽엔 무서운 전염병인 '흑사병'이 덮쳤어요. 발병한 지 하루가 지나면 거의 사망에 이르렀어요. 병에 걸리면 고열에 시달리다가 피를 토하고, 호흡곤란이 생겼어요. 사망 직전엔 피부 조직에서 출혈이 생겨 환자 피부를 검게 만드는 증상도 있었어요. 검은 죽음이라고 해서 '흑사병'이라고 불렸대요. 당시에는 흑사병의 원인이었던 페스트균에 대해 전혀 몰랐고, 별다른 치료법도 당연히 없었어요. 흑사병은 당시 유럽 인구의 3분의 1을 죽게 했어요.

유럽인들을 신분에 상관없이 흑사병에 걸릴까 봐 두려움에 떨었어요. 언제 죽을지 모른다는 질병에 대한 공포는 엉뚱한 방향으로 표출됐어요. 당시 경제적 실권을 가지고 있던 유대인들은 흑사병에 잘 걸리지 않았다고 해요. 사실은 유대인들이 율법에 따라 청결하게 생활하기 위해 손을 자주 씻었기 때문에 병을 피한 것으로 보여요. 그러나 유럽인은 '질병의 원인이 유대인 아닌가' 하며 의심했어요.

악의적인 의심이 퍼지자, 스페인 아라곤 왕국에서는 유대인에 대한 폭동과 학살이 일어났어요. 이후 왕국은 '기독교가 아니면 모두 추방한다'고 선포하더니, 유대인은 기독교를 믿겠다고 해도 '진심이 아닌 것 같다'며 쫓아내거나 죽이기도 했어요. 그런데 수백년 뒤 2차 세계대전 때 독일 나치도 인종 청소를 하겠다면서 유럽의 유대인들을 집단 수용소로 보내 학살하는 비슷한 일이 반복됐다는 걸 아시나요? 이처럼 재난과 전쟁 속에서는 가짜 뉴스가 쉽게 퍼진다는 것을 기억하고 조심해야 해요.

"조선인, 우물에 독 타"… 日강점기 가짜 뉴스

가짜 뉴스 피해는 유대인에게서 그치지 않아요. 우리나라 사람들도 불과 100년 전에 가짜 뉴스 때문에 끔찍한 일을 겪었답니다. 1923년 9월 1일 일본에서는 규모 7.9 강진이 발생했어요. '관동대지진'이에요. 일본 도쿄도, 요코하마, 가나가와현 등 관동(關東·간토) 일대에서 약 10만명이 사망하거나 실종됐어요. 지진으로 인한 이재민도 약 340만명에 달했대요.

그런데 이와 관련해 조선인을 향한 가짜 뉴스가 퍼지기 시작했어요. 일본에 불만을 품은 조선인들이 폭도로 돌변해 관공서를 습격하고, 곳곳에 불을 지르며, 우물에 독을 넣어 일본인들을 해하려 한다는 소문이었죠.

황당한 유언비어였지만, 결과는 너무나 처참했어요. 일본인들은 스스로 자경단을 조직하여 수많은 조선인을 학살했어요. 지진이 일어나고 열흘 정도 동안 5000명이 훨씬 넘는 조선인이 사망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어요. 그런데 현재 일본 정부는 '학살은 없었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어요. 관련 자료가 있는데도 '공식적으로'는 확실치 않다는 것이에요.

관동대지진이 일어난 지 100주년인 작년, 대지진 당시 일본인이 조선인을 학살했다는 일본 정부의 공식 문서가 추가로 발견되기도 했어요. 가짜 뉴스로 인해 일제강점기 일본에 살고 있던 조선인들이 억울하게 큰 피해를 당한 것은 확실한 것 같아요. 이처럼 가짜 뉴스에 많은 사람이 현혹되면 돌이킬 수 없는 재앙을 불러와요. 가짜 뉴스에 대처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겠어요.
1349년 프랑스 스트라스부르에서 벌어진 유대인 학살을 그린 목판화. 책 ‘플랑드르 과거사’ 삽화예요. /벨기에왕립도서관
1349년 프랑스 스트라스부르에서 벌어진 유대인 학살을 그린 목판화. 책 ‘플랑드르 과거사’ 삽화예요. /벨기에왕립도서관
1923년 관동 대학살 당시 일본 자경단원들이 학살당한 조선인의 시체를 몽둥이로 건드리며 내려다보고 있어요. 당시 지진으로 인한 사회 혼란을 조선인 탓으로 믿은 사람들이 자행한 학살이에요. /동북아역사재단
1923년 관동 대학살 당시 일본 자경단원들이 학살당한 조선인의 시체를 몽둥이로 건드리며 내려다보고 있어요. 당시 지진으로 인한 사회 혼란을 조선인 탓으로 믿은 사람들이 자행한 학살이에요. /동북아역사재단
정세정 장기중 역사 교사 기획·구성=장근욱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