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2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6년 만에 베트남을 방문해 응우옌 푸 쫑 베트남 총서기와 정상회담을 했어요. 시 주석은 양국 관계를 '포괄적 전략 동반자 관계'에서 '운명 공동체'로 발전시켜 나가자고 했지만, 베트남은 거부했어요. 양국 공동성명에는 중국이 요구한 '공동 운명(common destiny)' 대신 '미래 공유(shared future)'가 들어갔죠.

중국은 과거 왕조 시대의 조공 질서를 연상시키는 '운명 공동체론'을 주장하고 있어요. 라오스, 미얀마 등은 경제적 이익을 위해 이를 받아들였지만, 베트남은 거부했다는 해석이 나와요. 이처럼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는 베트남의 외교 정책을 흔히 '대나무 외교(bamboo diplomacy)'라 불러요. 사실 베트남은 오랜 기간 중국 문화를 수용하면서도 주체적 정신을 잃지 않았어요. 역사적으로 어떤 일이 있었는지 한번 알아볼까요?

베트남의 '중국화'와 저항

중국 한(漢)은 기원전 111년 북부 베트남 '남비엣'을 점령하고 일곱 군(郡)을 설치했어요. 약 1000년에 걸친 중국의 베트남 지배가 시작된 거죠. 이후 당(唐)의 영향을 가장 크게 받았는데, 당이 이 지역을 '안남도호부'로 승격하면서 중국은 베트남을 '안남'이라고 부르기 시작했어요.

당시 안남 사회는 주로 중국 관리가 세운 학교 교육을 통해 중국 문화를 수용했어요. 또 안남에 중국 승려가 늘어나면서 자연스럽게 불교가 발전했어요. 이후 언어(한자와 한문), 종교(불교·도교·유교) 등 중국 문화는 베트남 발전에 큰 영향을 줬어요. 하지만 베트남은 중국 문화를 그대로 수용하지 않고 선택적으로 변용해 토착 문화와 결합한 것으로 보여요.

중국 지배 기간 베트남은 크고 작은 저항을 이어가며 '외세에 대한 투쟁 역사'라는 민족의 정체성을 만들어갔어요. 특히 베트남 독립운동의 선구자라고 하는 쯩 자매는 중국에 대한 최초의 대규모 저항 운동을 벌여 성공해 짧은 독립을 이루기도 했어요. 중국의 지배에서 벗어나려는 움직임은 쯩 자매(1세기)를 시작으로 찌에우 여사(3세기), 리비(6세기), 마이 학 데와 풍 흥(8세기) 등 계속해서 이어졌어요.

베트남 리 왕조와 쩐 왕조의 발전

당나라 말 중국 정세가 혼란에 빠지며 베트남은 독립할 기회를 얻었어요. 응오 꾸엔 장군의 활약으로 중국 지배에서 벗어나 939년 응오(吳) 왕조를 수립했어요. 그러나 내란으로 응오 왕조, 딘(丁) 왕조, 띠엔레(前黎) 왕조, 세 왕조가 수립과 멸망을 이어갔죠. 1009년 띠엔레 마지막 왕이 세상을 떠나자, 리 꽁우언(李公蘊)이 왕이 돼 베트남 최초 장기 왕조인 리(李) 왕조(1009~1225)가 시작됐어요.

리 왕조는 수도를 오늘날 하노이로 정해 '탕롱(乘龍)'이라 불렀어요. 국호를 '다이비엣(大越)'으로 정하고, 왕 스스로 황제라 칭했죠. 리 왕조는 불교를 국교로 정해 전국 사찰을 정비하는 한편, 중국에서 유교적 제도와 문물을 도입했어요. 리 왕조 때 베트남 영토가 남쪽으로 확대되기 시작했는데, 이는 베트남 역사에 매우 중요한 지점이라고 볼 수 있어요.

리 왕조가 쇠퇴한 후 쩐 왕조(1225~1400)가 들어섰어요. 이 시기 편찬한 역사서 '대월사기(大越史記)'는 쩐 왕조가 중국과 구분되는 독립된 베트남과 남비엣을 계승했다는 정통성을 강조했어요. 또 이 시기 '쯔놈(字�n)'이 자리 잡기 시작했는데, 한자의 소리와 뜻을 조합해 베트남어를 표기하는 방식이에요. 이는 베트남이 중국 문화를 창조적으로 변용한 사례로 손꼽혀요. 쩐 왕조는 3차에 걸친 막강한 몽골군의 공격도 물리쳤지만, 내부 분열이 싹트기 시작했어요.

독자적 법 만든 베트남 레 왕조

원 이후 들어선 명(明)은 베트남을 제국 일부로 삼고자 했어요. 영락제는 베트남에 명의 지방 제도를 실시하고, 두발이나 복식을 중국식으로 강요했어요. 이러한 명의 지배에 끈질기게 저항한 레 러이(黎利)는 1418년 결국 베트남을 독립시켰어요. 그는 탕롱을 다시 수도로 삼고, 나라 이름도 다이비엣으로 되돌렸어요.

레 왕조 황제 타인 똥(聖宗·재위 1460~ 1497)은 베트남 역사상 가장 안정적이고 번영한 시대를 만들었어요. 정치·경제·문화 등 분야에서 국가 제도를 완성했고, 과거제를 시행했어요. 토지 대장과 호적 대장을 만들고, 베트남 영토 경계를 나타낸 지도를 제작하기도 했어요. 당나라 법을 근간으로 하면서 베트남 전통도 반영한 법전을 만들었는데, 아내의 독립적 재산권, 딸의 제사 상속권, 여성의 이혼 청구권 등 여성 지위와 권한을 법으로 규정한 점이 중국과 달랐어요.

베트남 통일한 응우옌 왕조

그러나 타인 똥 이후 레 왕조는 쇠락하기 시작했어요. 레 왕조 다이비엣은 북부 '찐'과 남부 '응우옌' 세력으로 나뉘었습니다. 두 가문이 대립하면서 농민 착취가 심해졌고, 1771년 남부 베트남 떠이썬(西山)에서 반란이 일어났어요. 베트남 최초 농민 반란으로 응우옌 3형제를 중심으로 일어났는데, 북부 찐 가문과 남부 응우옌 가문을 무너뜨리고 떠이썬 왕조를 세웠어요. 그러나 오래가지 못했고, 1802년 베트남 최초 통일 왕조인 응우옌(阮) 왕조(1802~1945)가 수립됐어요. 국호를 '남비엣(南越)'으로 하고자 했으나, 중국 청나라가 제시한 '비엣남(越南·베트남)'으로 정했어요.

초기 응우옌 왕조는 지역 갈등을 고려해 왕국을 세 지역으로 나눠 통치했어요. 중부는 황제 직할령으로, 남부와 북부는 각각 개국 공신 무장 세력에 자치권을 줘 다스리도록 했죠. 응우옌 왕조는 비교적 안정적으로 국정을 운영했지만, 여러 문제가 발생하기 시작했어요. 캄보디아를 합병하면서 전쟁이 장기화돼 베트남 농민들의 어려움이 커졌어요. 또 소수민족에게 베트남 복장과 언어를 강요하는 동화 정책을 추진해 반발을 불렀죠. 특히 기독교를 박해해 프랑스가 침략하는 빌미가 됐어요.

베트남인들은 여러 불리한 상황에서 강하게 저항했으나, 응우옌 왕조는 결국 프랑스 제국주의에 굴복했어요. 프랑스와 1862년 사이공 조약, 1884년 파트노트르 조약을 체결하면서 베트남은 프랑스 식민지로 전락하고 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