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뉴스 속의 한국사] 2000년 전 신라 '길쌈' 대회가 '삼국 통일 축제'로 확대됐죠
입력 : 2023.09.21 03:30
추석
- ▲ 어린이들이 강강술래를 하고 있어요. 강강술래는 마한의 농촌 풍습에 기원이 있다고 해요. /김영근 기자
2000년 전, 신라 여성들의 길쌈 대회
'삼국사기' 신라본기에는 지금부터 약 2000년 전 신라에서 추석 명절이 유래했다는 이야기가 있어요. 신라 3대 임금 유리왕(유리이사금·재위 24~57년) 때인 서기 32년 일이었다고 해요. 서라벌(지금의 경북 경주) 도성의 부녀자를 두 편으로 나누고 큰 행사를 벌였습니다. 임금의 딸인 두 공주가 각 편을 이끌고 길쌈 대회를 연 것이죠. 길쌈이란 실을 내어 옷감을 짜는 일을 말합니다.
대회 시작은 음력 7월 16일이었습니다. 날마다 이른 아침부터 마당에 모여 밤 10시까지 옷감을 짰고, 보름달이 환하게 뜨는 8월 15일에 한 달 동안 과연 얼마나 짰는지 양쪽을 심사해서 진 편이 이긴 편에 술과 음식을 내는 방식이었어요. 이 자리에서 모두들 노래와 춤을 즐겼답니다.
이때 진 편에서 한 여인이 일어나 "회소 회소"라고 노래했는데, 그 노랫소리가 슬프고 아름다워 뒷날 어떤 사람이 이 곡조에 노래를 지어 '회소곡'이라 했다 합니다. 이 '회소'란 오늘날의 '아서라, 말아라'와 비슷한 뜻으로 보입니다. 하긴, 한 달 동안 경쟁하며 시합에 몰두했는데 지고 말았다면 얼마나 속상했겠어요.
이 잔치를 가배(嘉俳)라고 했는데, 이 말이 변해서 '한가위'의 '가위'가 됐다고 합니다. 조선 초인 15세기에 나온 지리서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이 길쌈놀이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고 적혀 있어요.
'삼국 통일 기념 국가 경축일'로 격상
그런데 추석의 유래에 대한 또 다른 기록이 있습니다. 이 기록에 따르면 추석이 생겨난 나라는 역시 신라지만, 그 시기는 서기 7세기로 한참 뒤입니다. 일본 헤이안 시대에 엔닌(圓仁·794~864)이란 승려가 있었어요. 엔닌은 당나라를 여행한 뒤 '입당 구법 순례행기'라는 기행문을 썼습니다. 우리가 이 기록에 특히 관심을 갖는 것은, 엔닌이 중국 산둥(山東)의 신라방에서 신라인이자 동아시아 무역의 실력자였던 장보고의 도움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서기 839년, 엔닌은 장보고가 세운 신라 사찰 적산법화원을 방문했습니다. 이곳은 당나라에 거주하는 신라인의 거점인 동시에 신라 본국과 연락하는 기관 노릇도 맡았던 곳이었습니다. 엔닌은 이 절에 있다가 신라인들의 '8월 보름 명절'을 경험합니다. "이 명절이 어디서 유래한 것인가요?"라고 노승들에게 묻자 그들은 이렇게 대답했다고 합니다.
"신라가 옛날 발해와 전쟁할 때 이날 승리했습니다. 그래서 명절로 전하고 음악과 춤을 즐기던 것이 오래도록 이어져 끊이지 않은 것이죠."
신라가 발해와 싸워 승리한 날? 이건 뭔가 이상합니다. '남북국 시대'의 형세를 이뤘던 남쪽의 (통일)신라와 북쪽의 발해가 무력 충돌했다는 기록은 딱 한 번 있습니다. 신라 성덕왕 32년, 발해 무왕 15년인 서기 733년 일인데, 아무리 봐도 신라의 승리로 보기는 어렵습니다. 이때 신라는 당나라 요청으로 발해 남쪽 땅을 공격했으나, 춥고 큰 눈이 쌓여 군사 절반이 얼어 죽은 끝에 별 성과 없이 회군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엔닌의 기록은 발해를 이렇게 소개합니다. '발해가 신라의 토벌을 당했을 때 겨우 1000명이 북쪽으로 도망갔다가 돌아와 옛날대로 한 나라를 세웠는데, 오늘날 발해라고 하는 나라다.' 이도학 한국전통문화대 명예교수는 이렇게 해석합니다. 문장 앞 '신라의 토벌을 당한 발해'는 엔닌이 살았던 시대의 발해가 아니라 발해의 전신(前身)인 고구려로 봐야 하고, '오늘날 발해'란 엔닌이 살았던 시대에 존재한 발해가 맞는다는 것입니다. 엔닌은 이미 존재하지 않는 나라인 고구려라는 나라 이름 대신 고구려의 후신(後身)인 발해로 기록했다는 것이죠.
그렇다면 '발해에 이겨서 추석 명절로 삼았다'는 것은 고구려의 평양성이 나당 연합군에 함락된 서기 668년 상황이며, 유리왕 때 길쌈 시합에서 전해 내려오던 농경 축제가 이후 '삼국 통일 기념 국가 경축일'로 의미가 확대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추수감사절과 달리 추수 전에 치르는 명절
그런 유래를 가진 추석은 왜 우리나라의 가장 큰 명절이 됐을까요? 우리는 외국인에게 추석을 설명할 때 '한국식 추수감사절'이라고 말하기도 하지만, 사실은 중요한 차이가 있습니다. 미국의 추수감사절이 이미 끝난 추수를 감사하는 날인 반면, 한국의 추석은 추수를 하기에 앞서 가뭄과 장마 등 농사의 고비를 넘긴 상황에서 풍년을 기원하는 날이죠.
추석 때 대표적 풍속으로는 송편 만들기, 달맞이, 강강술래 등이 있습니다. 반달이나 모시조개 모양으로 빚는 떡인 송편은 추석을 상징하는 대표적 한국 음식으로, 예전에는 일찍 익은 벼로 만들었기 때문에 오려송편(올벼송편)이라고도 했습니다. 고려 시대부터 전국 여러 곳에서 만들기 시작했다고 전해집니다.
달맞이는 추석 저녁에 산이나 들에 나가 달이 뜨기를 기다려 소원을 빌거나 1년 농사를 점치는 일입니다. 가을 하늘 가운데 뜬 보름달은 다른 계절에 비해 유난히 뚜렷하게 보일뿐더러, 보름달 모습이 알맹이가 꽉 찬 햇곡식이나 햇과일 같아 보여 풍요의 상징이 됐다고도 합니다.
추석 보름달 아래서 사람들이 손을 잡고 원형을 이뤄 노래와 함께 빙빙 도는 놀이가 강강술래입니다. 오래도록 이순신 장군이 적군을 위협하려고 부녀자를 동원한 데서 유래했다고 알려졌지만, 최근엔 훨씬 오래전 마한의 농촌 풍습에서 그 기원을 찾을 수 있다고 봅니다.
지금껏 살펴본 추석 명절은 우리나라 사람들이 오랫동안 농경 문화 속에서 살았음을 새삼 깨닫게 해 줍니다. 지금은 대도시에서 사는 사람이 많다고 해도, 결국 우리 대부분은 농민의 후손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 ▲ 송편을 빚는 모습. /연합뉴스
- ▲ 지난 19일 경북 경주시 탑동 오릉(五陵)에서 고분을 벌초하고 있어요. 오릉은 혁거세왕과 유리왕 등 신라 초기 다섯 임금의 무덤이라고 전해집니다. /연합뉴스
- ▲ 추석을 앞둔 17일 인천 부평구 인천가족공원에서 시민들이 성묘하는 모습. /뉴스1
- ▲ 달맞이 모습을 그린 풍속화. /국립민속박물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