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무대 위 인문학] "얼쑤!" 탈 쓰고 놀이 한마당… 양반 사회 모순 풍자했대요
탈춤
- ▲ 탈춤에는 다양한 인물이 그에 맞는 탈을 쓰고 등장해요. 그중 말뚝이는 말을 부리는 양반의 하인이고, 덜머리집은 영감의 첩이에요. 목중은 먹중, 묵승으로도 불리는데, ‘검은 색깔의 승려’라는 뜻으로 파계승 역할이죠. 왜장녀는 원래 ‘몸집이 크고 염치없는 짓을 서슴없이 잘하는 여자’를 뜻하는데, 탈춤에선 술집 여주인 역할이에요. 비뚜르미는 눈·코·입이 모두 비뚤어진 데서 붙은 이름이에요. /국립민속박물관·부산광역시립박물관
지난 13~15일 서울남산국악당에선 탈춤 한마당인 '가장무도: 추는 사람' 공연이 펼쳐졌습니다.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된 13개 탈춤을 공연하는 자리였죠.
얼굴에 탈(가면)을 쓰고 추는 '탈춤'은 무용·음악·연극 요소가 어우러지는 '종합예술'이에요. 판소리와 함께 조선 후기에 성행한 대표적인 민중 예술이기도 합니다. 특히 탈춤은 내용과 형식이 자유롭기 때문에 현대의 다양한 공연 예술 창작에도 끊임없이 영감을 주고 있기도 해요. 탈춤에선 관객들이 가만히 공연을 보고 있는 게 아니라 "얼쑤!" "좋구나!"라며 놀이의 흥을 돋우고, 직접 놀이에 등장하기도 하면서 참여하죠. 정부는 지난해 우리의 전통문화인 탈춤을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 목록으로 등재 신청해 발표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오늘은 '탈춤'에 대해 알아보도록 해요.
궁중에서 시작됐어요
높은 태평소 소리가 경쾌하게 울리며 흥취를 돋우면 곧이어 꽹과리, 장구, 북 소리가 어우러져 마을에 풍물패가 도착했음을 알립니다. 풍물패는 마을 곳곳을 돌며 흥겨운 연주를 하는데, 이를 '길놀이'라고 해요. 풍물패 소리를 듣고 집에 있던 아이들, 아낙네들이 우르르 몰려나와 어느새 공터에 사람들이 가득해지면 드디어 탈춤 한마당이 펼쳐집니다.
탈춤은 언제, 누가 추기 시작했을까요? 탈을 쓰고 하는 놀이는 농경 사회 초기 시작된 것으로 알려져 있어요. 신에게 풍년을 기원하는 제사를 지내거나 굿을 할 때 가면을 쓰고 춤을 췄죠. 이때 탈은 신들을 즐겁게 할 뿐 아니라, 나쁜 운을 막는 액막이 역할을 했다고 합니다. 삼국 시대엔 궁중 연회나 불교 행사 때 탈춤이 펼쳐졌어요. 조선 시대에는 탈춤 행사 전반을 관리하는 관청인 '나례도감'이나 '산대도감'까지 생겨났어요. 탈춤을 추는 광대들은 궁중에 큰 행사가 있을 때 흥을 돋우는 공연을 도맡아 했어요. 하지만 이 관청은 조선 중기에 해체됐고 광대들은 뿔뿔이 흩어질 수밖에 없었어요. 이들은 먹고살기 위해 민간으로 흘러 들어가 마을에 굿이나 큰 장이 열리면 사람들을 모아 공연을 했는데, 이것이 민중 예술인 탈춤으로 변하게 된 것입니다.
지역별로 다양한 탈춤 전해져요
지역별로 다양한 탈춤이 전해 내려오고 있는데 이북·경기·경남·경북·강원 등 13개 탈춤이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돼 보존되고 있어요.
이 가운데 가장 많이 알려진 것은 경북 안동의 하회 탈춤이에요. 정식 명칭은 '하회 별신굿 탈놀이'랍니다. 별신굿은 마을의 수호신인 성황(서낭)님에게 마을의 평화와 농사의 풍년을 기원하는 굿이에요. 문화재청에 따르면, 경북 안동 하회마을에선 약 500년 전부터 성황님에게 별신굿을 했고 이때 성황님을 즐겁게 하기 위해 탈놀이를 했대요.
함경남도의 '북청사자놀음'도 유명해요. 이 탈춤에는 사자가 주인공으로 등장해요. 그런데 당시 한반도에선 볼 수 없었던 사자가 어떻게 탈춤에 등장한 걸까요? 사자춤은 불교의 전래에 따라 서역에서 중국으로, 다시 우리나라로 전해진 것으로 알려져 있어요. 중국에는 한나라 때부터 2000년 넘게 지내온 원소절이란 전통 명절이 있는데, 매년 음력 정월 15일이에요. 우리의 정월대보름처럼, 휘영청 뜬 보름달을 보며 풍년과 소원을 빌고 온 가족이 한데 모여 명절 음식을 나눠 먹었죠. 이날 열린 다양한 축제 중 대표적인 것이 사자 탈춤이에요. 이 사자 탈춤이 조선 시대 궁중에 전해져 우리의 탈춤에도 등장하게 됐다고 합니다.
이 밖에도 고성오광대, 가산오광대, 봉산탈춤, 양주별산대놀이, 동래야류, 강릉단오제 관노가면극, 송파산대놀이, 통영오광대, 강령탈춤, 은율탈춤, 수영야류 등이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돼 있습니다.
상민·천민 숨통 틔워주는 역할도
궁중에서 시작된 탈춤은 민간으로 이어지면서 양반 사회의 계급과 도덕적인 모순을 유쾌하게 풍자하고 그 부조리함을 드러내는 내용들을 담기 시작해요. 지역마다 탈의 모양이나 등장인물은 조금씩 다르지만, 그 내용은 매우 비슷해요. 양반을 능멸하거나, 여자에게 빠져 파계(破戒·계율을 어기거나 불교계를 떠남)한 승려를 놀리고, 첩을 둘러싼 부부간 갈등에 대한 내용이 대부분 들어가죠. 탈춤에서 양반을 모욕하는 것은 민중의 속을 시원하게 했는데요, 엄격한 신분제 사회였던 조선에서 양반을 마음대로 비웃을 수 있도록 허락된 유일한 놀이가 탈춤이었기 때문이에요. 그런 식으로 탈춤은 상민이나 천민이 받던 억압의 숨통을 틔우는 역할을 했답니다. 또 이런 부조리와 갈등을 풍자하는 데 그치지 않고, 양반과 천민의 탈을 쓴 놀이꾼들이 함께 춤추고 관객 모두가 어우러지는 화해의 장으로 마무리되는 것이 특징이에요. 조화로운 사회를 꿈꾼 조상들의 생각을 엿볼 수 있습니다.
탈춤에는 다양한 인물이 등장해요. 양반의 종, 승려, 신발 장수, 무당, 떠돌이 한량(일정한 직업 없이 놀고먹던 말단 양반), 문둥이(한센인), 백정(소나 돼지 등을 잡는 사람), 무동(舞童) 등 사회적으로 소외된 인물들이 주인공으로 등장하고, 원숭이나 사자 등 동물까지 의인화해 연기하죠. 단 하루 민중이 마음껏 당당하게 자기 의견을 이야기할 수 있었던 신나는 놀이 한마당이었던 탈춤은 음악과 춤, 재담과 능청스러운 연기가 어우러지는 민중 예술로 지금까지 사랑받고 있습니다.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유네스코는 산업화·국제화 시대에 소멸 위기에 처한 문화 유산을 보호하기 위해 가치 있는 문화유산을 지정하고 있어요.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에 등재된 한국의 유산은 총 21개예요. 2001년 종묘제례·종묘제례악이 가장 먼저 등재됐고, 지난해 연등회가 등재됐죠. 이 밖에도 농악, 김장, 씨름, 처용무, 제주해녀문화, 택견, 남사당 놀이, 영산재, 가곡, 대목장, 매사냥, 줄타기, 아리랑, 줄다리기, 한산 모시 짜기, 판소리, 강릉단오제, 강강술래, 제주 칠머리당 영등굿 등이 등재돼 있어요.
- ▲ 동래야류 중 양반춤. /서울남산국악당 제공
- ▲ 강령탈춤 중 말뚝이춤. /서울남산국악당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