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뉴스 속의 한국사] 어린이 인권 존중 선언 유엔보다 먼저 했어요

입력 : 2021.08.12 03:30

소년 운동가 방정환

/그래픽=안병현
/그래픽=안병현

최근 유엔(UN·국제연합)은 코로나 바이러스 확산으로 아동 정신건강 문제가 커지고 있다고 발표했어요. 감염 우려에 학교가 문을 닫으면서 또래 친구들을 만날 기회가 없어진 데다 각종 학대에 노출될 위험도 커졌기 때문이에요.

그동안 많은 사람이 '아동 인권'을 위해 힘써왔는데요. 소파 방정환은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아동 인권의 중요성을 역설한 인물입니다. 그는 천도교 소년회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이자 소년운동가였어요. 올해는 우리나라 소년운동의 새로운 장을 연 천도교 소년회가 창립된 지 100주년이 되는 해이기도 합니다. 오늘은 지금으로부터 100년 전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던 아동 인권을 강조했던 방정환에 대해 알아볼게요.

"어린이는 어른보다 더 새로운 사람입니다"

"어린이를 재래의 윤리적 압박으로부터 해방하여 그들에 대한 완전한 인격적 예우를 허(許)하라." "어린이를 재래의 경제적 압박으로부터 해방하여 무상 또는 유상의 노동을 폐하라." "어린이에게 배우고 즐거이 놀 만한 각양(여러 가지 모양)의 가정 또는 사회적 시설을 행하라."

1923년 5월 1일, 이 같은 내용을 적은 전단 12만장이 서울 곳곳에 뿌려졌습니다. 우리나라 최초로 '어린이날'을 알리는 이 전단은 어른에게 이런 당부도 했습니다. "어린이는 어른보다 더 새로운 사람입니다. 어린이를 어른보다 더 높게 대접하십시오. 결코 윽박지르지 마십시오. 어린이의 생활을 항상 즐겁게 해 주십시오. 항상 칭찬해가며 기르십시오."

방정환을 중심으로 발족한 어린이문화 운동단체 색동회 등이 뿌린 '어린이날의 약속'이었습니다. 이 선언은 유엔의 아동권리선언보다 앞선 것이에요. 유엔의 전신인 국제연맹이 1924년 스위스 제네바에서 아동의 권리에 관해 선언했고, 이를 바탕으로 유엔이 1959년 아동권리선언을 발표했지요.

방정환이 '어린이날의 약속'을 만들던 당시 어린이는 독립된 인격을 지닌 주체로 인정받지 못하는 존재였어요. 어린 나이에도 힘든 노동에 내몰리거나, 웃어른을 존중하는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부당하게 멸시나 구박을 받는 일도 많았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방정환이 "우리의 미래는 어른보다 새로운 어린이에게 있으니, 이들의 권리를 존중하자"고 한 것이에요.

독립운동가이자 '어린이' 창간한 아동문학가

신식 학교를 다닌 방정환은 열아홉 살 되던 1918년 결혼했어요. 그의 장인은 1919년 3·1 운동 때 민족 대표 33인의 대표 인물인 손병희(1861~1922)였습니다. 방정환 역시 3·1 운동에 참여했는데, 독립선언서를 인쇄하던 중 일본 경찰이 들이닥치자 인쇄기를 우물에 던져 위기를 모면했다고 합니다. 이후 위험 인물로 분류돼 경찰의 감시를 받았죠.

방정환은 아동문학가이기도 했습니다. 그는 일본 유학 중 아동문학과 아동심리학을 공부했는데요. 1921년 외국 동화를 번역한 '사랑의 선물'을 냈고, 이후 동요 '형제별'과 모험소설 '칠칠단의 비밀'을 썼습니다. 또한 1923년 어린이 잡지 '어린이'를 창간해 아동문학의 터전을 만들었습니다. 이원수 '고향의 봄', 윤극영 '반달', 최순애 '오빠생각' 등 숱한 동요는 '어린이'를 통해 세상에 나올 수 있었답니다.

실감 나는 동화 구연으로 감동과 위로 줬어요

방정환은 입으로 실감나게 들려주는 '구연동화'의 원조라고 할 수 있어요. 전국을 순회하며 매년 70회, 통산 1000회 이상 구연을 했는데요. '신데렐라' 구연을 할 땐 주인공이 계모에게 얻어맞는 대목에서 청중이 모두 손으로 얼굴을 감싼 채 큰 소리로 상갓집처럼 흐느껴 울었다고 합니다. 방정환을 감시하던 일본 경찰조차 눈물을 감추지 못했대요.

재미있는 건 방정환이 단 음식을 무척 좋아했다는 겁니다. 그는 '빙수'란 수필에서 빙수의 맛을 예찬했습니다. 당시 한 잡지는 "방정환씨는 빙수 같은 건 대여섯 그릇은 순식간에 해치우고, 냉면엔 설탕 한 봉을 넣어 먹는다"고 쓰기도 했습니다.

열정적인 활동이 불러일으킨 과로로 건강을 해친 방정환은 1931년 7월 32세의 젊은 나이로 별세했습니다. 숨을 거두기 직전 이런 말을 했다고 해요. "밖에 검정 말이 모는 검은 마차가 와서 검은 옷을 입은 마부가 나를 기다리고 있어요. 어린이들을 부탁합니다." 그의 묘비에는 '동심여선(童心如仙)'이란 네 글자가 쓰여 있는데 '어린이의 마음은 신선처럼 맑다'는 뜻이랍니다.

[어린이날은 원래 5월1일이었대요]

1921년 방정환·김기전 등이 조직한 천도교 소년회는 이듬해인 1922년 '5월 1일'을 어린이날(소년일)로 정했습니다. '새싹이 돋아난다'는 의미로 5월의 첫날을 어린이날로 삼았다고 합니다.

5월 1일이 노동절과 겹쳤기 때문에 1927년부터는 '5월 첫째 일요일'로 바꿨습니다. 하지만 일제의 탄압으로 1937년 소년단체들이 해산됐고, 1939년부터 어린이날은 중단됐습니다. 광복 이후 어린이날은 되살아나 1946년 5월 첫째 일요일인 '5월 5일'에 기념식이 열렸습니다. 이후 5월 5일이 어린이날이 됐죠.

그런데 일본 달력을 본 사람은 고개를 갸웃거립니다. 일본도 5월 5일이 어린이날이거든요. 일본에선 전통적으로 음력 5월 5일 단옷날에 남자 어린이의 건강을 기원하는 풍습이 있었는데, 1948년 양력 5월 5일을 어린이날로 삼았다고 합니다.

기획·구성=최원국 기자 유석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