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숨어 있는 세계사] 사진기, 튜브 물감의 등장… '빛의 회화' 탄생시켰죠

입력 : 2020.04.08 03:00

[인상파의 출현]
산업혁명으로 사진기 발달하자
화가들, 사실주의 기법 탈피하고 순간의 색채와 질감·빛에 초점

튜브 물감과 증기 기관차도 발명돼 원하는 장소 가서 자유롭게 작업
모네·마네·고흐 등이 대표적 화가

지난달 30일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의 싱어 라렌 박물관에서 빈센트 반 고흐(1853~1890)의 작품 한 점이 사라졌습니다. 도둑들은 코로나로 박물관이 휴관 중인 틈을 타 '1884년 봄 뉘넨의 목사관 정원'이란 작품을 훔쳐갔어요. 후기 인상파의 거장이며 대중적으로도 잘 알려진 반 고흐의 도난당한 작품 가치는 무려 80억원대라고 합니다. 인상주의는 19세기 후반에서 20세기 초반 사이에 프랑스를 중심으로 일어난 근대 예술운동이에요.

사진 발달로 전통 회화의 수요 감소

산업혁명은 18세기 중엽부터 영국에서 시작된 기술혁신과 함께 일어난 사회·경제 등의 구조 변혁을 의미합니다. 산업화는 모든 분야에 새로운 변화를 가져왔는데, 예술도 예외는 아니었어요. 1839년 프랑스의 화가 다게르가 발명한 은판사진술이 공개된 이후로 사진술은 꾸준히 발전해갔어요. 1888년에는 기존의 사진 기구보다 훨씬 가벼운 롤필름을 사용한 코닥 카메라가 출시되었어요. 사진기의 발명은 기존과는 다른 느낌의 현대미술이 태동하는 계기가 됩니다. 이때까지 예술은 실제 모습을 그대로 표현하는 것이었어요. 그런데 사진기는 그림보다 더 정확한 모습을 표현할 수 있었어요. 초상화에 대한 수요가 줄어들 수밖에 없었죠. 예술가들은 사실적인 묘사를 포함한 전통적인 회화 기법에서 벗어나 색채, 질감, 빛 자체에 초점을 맞추면서 눈에 보이는 장면들을 더 자유롭게 표현했어요.

'인상주의'라는 말을 탄생시킨 클로드 모네의 작품 '인상, 해돋이'.
'인상주의'라는 말을 탄생시킨 클로드 모네의 작품 '인상, 해돋이'. 아침 안개가 낀 프랑스 북부 르아브르 항구의 풍경을 담았어요. 인상파 화가들은 사실적인 묘사를 포함한 전통적인 회화 기법에서 벗어나 색채, 질감, 빛 자체에 초점을 맞추면서 눈에 보이는 장면들을 더 자유롭게 표현했습니다. /위키피디아
튜브 물감 덕에 야외 작업 쉬워져

야외에서 자연물을 자유롭게 관찰하며 그림을 그리려면 미술 도구들을 자유롭게 운반할 수 있어야겠죠? 오늘날 우리에게 익숙한 튜브 물감이 19세기 중반에 발명되면서 화가들은 작업실 밖으로 나올 수 있게 됐어요. 튜브 물감은 1841년 미국의 화가 존 랜드가 발명했고, 1850년대부터는 상용화되었어요.

튜브 물감이 발명되기 전에는 화가들이 직접 돼지 방광에 유화 물감을 넣어서 운반했어요. 그러나 돼지 방광 물감은 부피가 크고 운반이 불편했어요. 주석으로 제작되고 마개로 밀봉된 튜브 물감은 저장 수명이 길고 누출되지도 않으며 지속적으로 사용할 수 있었어요. 튜브 물감의 발명으로 화가들은 야외 작업에 대한 부담이 사라졌어요. 이는 순간적인 빛과 대기의 움직임을 포착해야 했던 인상파 화가들에게는 더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인상파 중 한 명인 르누아르는 "튜브 물감이 없었다면 인상주의는 없었을 것이다"라는 말을 남겼어요.

화가들이 자유롭게 마을을 떠나 여행할 수 있게 된 데에는 이동 수단의 영향도 있습니다. 영국에서 19세기 초에 증기기관차가 발명된 후 1830년경에는 승객들을 태운 증기기관차가 세계 최초로 운행됐어요. 인상파를 교외로 이끄는 수단이 되었죠.

19세기 후반 '인상주의' 용어 등장

당시 서양 예술계는 보통 엄격한 형식과 균형, 구도 등을 중요하게 여기는 신고전주의와 생활상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는 사실주의·자연주의로 나누어졌어요. 1874년 봄 당시 미술계의 이단아들인 모네, 피사로, 시슬레, 드가, 르누아르 등의 화가들이 모여 전시회를 열었어요. 고전적인 아름다움과 거리가 먼, 거친 필치로 평범한 풍경을 담아낸 작품들을 본 사람들은 충격을 받았어요. 신문기자인 루이 르루아가 모네의 작품 '인상, 해돋이'(1872)를 보고 '인상파의 전시'라고 풍자하면서 '인상주의'라는 용어가 사용되기 시작했어요.


[모네의 '인상, 해돋이' 그려진 시각 1872년 11월 13일 아침 7시 35분?]

인상파 화가들은 특히 빛의 변화에 주목했는데, 같은 장소도 그림을 그릴 때의 날씨나 시간대에 따라 색채가 달라진다는 것을 포착하고자 했죠. 이를 기반으로 모네의 '인상, 해돋이'가 언제, 어디서 그려졌는지 과학적으로 밝혀낸 흥미로운 연구가 있습니다. 이 작품은 아침 안개가 깔린 프랑스 북부 르아브르 항구의 풍경을 그린 것입니다. 지난 2014년 미국 텍사스주립대 도널드 올슨 천문학 교수는 그림 속에 떠 있는 태양의 각도 등 천문학적 지식과, 르아브르 항구의 과거 배치도 등 그림과 관련해 알려진 사실 등을 갖고 분석했습니다. 그 결과 이 그림이 1872년 11월 13일 아침 7시 35분의 항구 모습을 담은 것이며, 모네는 인근 라미라우테 호텔에서 항구를 바라보며 그렸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윤서원 서울 단대부고 역사 교사 기획·구성=양승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