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숨어 있는 세계사] 대혁명 43년 후 이틀간의 봉기, '레미제라블' 배경이죠

입력 : 2019.09.11 03:00

[프랑스 6월봉기]
1789년 일어난 프랑스혁명 후에도 정치는 여전히 왕정, 민중 삶은 피폐
1832년 참정권 요구하며 들고일어나 정부군과 시가전 벌여 800여명 사상
결국 1848년 '2월혁명'서 투표권 쟁취

지난 3월부터 범죄인인도법에 반대하는 홍콩 시위가 이어지고 있죠. 홍콩 시위대는 평화 시위의 한 방식으로 뮤지컬 '레미제라블'에 나오는 '민중의 노래(Do you hear the people sing)'를 불렀어요.

'레미제라블'은 원작 소설과 뮤지컬 모두 유명합니다. 이 작품이 1789년 시작된 '프랑스혁명'을 배경으로 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은데, 주인공 장 발장은 1815년 출소해 1832년 6월 봉기의 현장을 누빈답니다.

대혁명 전으로 돌아가자는 '빈 체제'

'자유·평등·박애'를 기치로 했던 프랑스혁명이 곧바로 프랑스인에게 자유를 주진 못했어요. 오히려 혁명의 혼란 속에 부르봉 왕조의 마지막 왕 루이 16세가 단두대에서 죽고, 권력 공백 속에 전쟁 영웅 나폴레옹이 황제로 등극했지요.

영화 '레미제라블'(2012)에서 1832년 6월 봉기를 묘사한 장면입니다.
영화 '레미제라블'(2012)에서 1832년 6월 봉기를 묘사한 장면입니다. 파리 시민들이 붉은 깃발을 흔들며 '민중의 노래'를 합창하죠. 6월 봉기는 단 이틀 만에 진압됐지만 빅토르 위고가 이를 소설 '레미제라블'로 남기며 다시 알려집니다. /UPI코리아
그렇지만 나폴레옹 황제가 워털루 전투에서 패배해 다시 한 번 프랑스의 정치 체제가 혼란에 빠집니다. 패전국 프랑스와 나머지 유럽 국가 대표들은 오스트리아 빈에 모여 회의를 열고 '프랑스혁명 이전으로 돌아가자'고 결정합니다. 이를 빈 체제라고 하죠. 프랑스에서는 프랑스혁명 때 처형된 루이 16세의 동생 루이 18세가 왕으로 즉위했어요.

또다시 혁명을 부른 왕정복고

그렇지만 프랑스 사람들의 자유에 대한 열망은 커져만 갔어요. 1830년 하원 선거에서 왕정에 반대하는 인사가 많이 당선됐습니다. 당시 국왕은 루이 16세의 막냇동생 샤를 10세였어요. 그는 의회를 해산하고 왕정에 반대하는 의원들을 쫓아냈습니다.

이 조치는 파리 시민의 분노를 일으켰어요. 시민들은 파리 시내에 바리케이드를 설치하고, 정부군과 시가전을 벌였어요. 샤를 10세는 왕위에서 쫓겨나고 맙니다.

그 대신 왕족임에도 프랑스혁명을 지지했던 루이 필리프(1773~1850)가 새로운 왕으로 추대됩니다. 의회 해산부터 루이 필리프 즉위까지 모두 7월에 이뤄졌어요. 그래서 샤를 10세를 몰아낸 사건을 '7월혁명'이라고 불러요.

민중이 다시 한 번 일어나다

하지만 막상 왕위에 오르자 루이 필리프는 왕정이 계속됐으면 했어요. 프랑스는 왕정을 지지하는 귀족, 입헌군주정을 바라는 부르주아지, 공화정을 원하는 노동자와 하층민의 내부 대립이 계속 깊어졌어요.

당시 프랑스에서는 산업혁명 여파로 빈부 격차가 심해졌어요.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흉작, 식량 부족, 물가 상승으로 경기가 극도로 나빠졌고요. 1832년에는 콜레라까지 창궐해 많은 사람이 숨졌어요.

민중의 삶은 점점 피폐해졌어요. 이런 상황에서 의회 선거권은 거액의 세금을 내는 지주와 자본가에게만 있었죠. 민중은 더 분노했어요.

1832년 6월 1일 대표적인 공화주의 정치인이었던 장 막시밀리안 라마르크 장군이 콜레라로 사망합니다. 공화주의자들은 6월 5일 라마르크 장군의 장례식에서 봉기를 일으킵니다. 일명 '6월 봉기'예요. 뮤지컬과 영화에서 '민중의 노래'를 부르는 대목이 바로 이 장면이죠.

파리 시민은 라마르크 장군의 관 곁으로 모여들어 붉은 깃발을 흔들면서 "자유가 아니면 죽음을"이라고 외쳤어요. 시민과 정부군 사이에서는 총격이 오갔어요. 이틀 동안 이어진 봉기에서 정부군과 시민 측을 합쳐 사상자 800여명이 나왔습니다.

루이 필리프 왕정은 6월 봉기를 잔혹하게 진압했지만 시민들은 1848년 다시 힘을 합쳐 '2월혁명'을 일으킵니다. 이 과정을 거치며 노동자와 하층민도 마침내 시민으로서의 정치적 권리를 인정받지요.


[실패로 끝나 거의 잊힌 사건… 빅토르 위고가 세상에 알렸죠]

1832년의 6월 봉기는 빅토르 위고의 소설 '레미제라블'을 통해서 널리 알려졌어요. 이 봉기는 단 이틀 동안 벌어졌고, 철저한 실패로 끝나 거의 잊힌 사건이었거든요.

위고는 봉기 첫날이던 그해 6월 5일 튈르리 정원에서 글을 쓰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는 갑작스러운 총소리를 듣고 소리가 난 방향을 향해 걸었어요. 그의 눈앞에 정부군과 시민군이 벌이는 시가전이 펼쳐졌지요.

위고는 30년 뒤인 1862년 '레미제라블'을 펴냅니다. 19세기 초반 비참했던 프랑스 민중의 삶과 6월 봉기를 세밀하게 묘사했어요. 3000페이지에 달하는 대작이죠.


윤서원·서울 성남고 역사 교사 기획·구성=양지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