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뉴스 속의 한국사] 고려 사람들은 순무를 소금에 절여 '김치' 만들었대요

입력 : 2018.12.26 03:00

[김장의 역사]
고려 문인 이규보의 '가포육영'에 겨울철 김장 풍습 실려 있어요
고추·배추는 조선시대에 들어와 19세기부터 배추김치가 대중화됐죠

날씨가 추워지는 겨울이 시작되면 집 안은 물론이고 동네 곳곳마다 벌어지는 풍경이 있어요. 바로 한꺼번에 수십 포기 넘게 김치를 담그는 김장이죠. 김장은 늦가을부터 이듬해 햇채소가 나오기까지 겨우내 먹을 김치를 한꺼번에 담그는 것을 말해요. 연말을 맞아 김치를 담그고 나누는 '사랑의 김장 나눔 행사'도 곳곳에서 진행되고 있어요.

김치는 2013년에 '김장, 김치를 담그고 나누는 문화'라는 제목으로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에 오르기도 했어요. 김장 문화가 한민족의 고유한 특성을 담고 있는 문화유산임을 널리 인정받은 거죠. 우리 조상은 김치를 언제부터 담가 먹었으며 김장을 하는 풍습은 언제부터 시작되었을까요?

◇우리 역사 속 김치

중국의 역사책 '삼국지'의 '위지동이전'에 보면 '고구려인은 술 빚기, 장 담그기, 젓갈 등 발효 음식을 매우 잘한다'는 기록이 있어요. 또 고려 학자 김부식이 편찬한 '삼국사기'에는 신라 신문왕이 683년에 왕비를 맞이하며 내린 품목 중에 해(醢)라는 것이 등장하는데 이를 젓갈이나 김치 같은 발효 식품으로 짐작해요. 이런 기록들을 통해 역사학자들은 이미 삼국 시대부터 김치를 만들어 먹었다고 짐작하지요. 물론 당시에는 고춧가루가 없어 지금의 새빨간 김치와는 맛도 모습도 달랐겠죠. 그러나 채소를 소금에 절여 먹었다는 기록은 확실해요.

[뉴스 속의 한국사] 고려 사람들은 순무를 소금에 절여 '김치' 만들었대요
/그림=안병현
7세기 중엽 세워진 백제 유적 익산 미륵사지에서는 높이가 1m 넘는 토기가 나왔어요. 이 토기가 겨우살이를 대비한 김장독이 아닐까 하는 짐작도 있지요. 신라 시대 세워진 속리산 법주사에는 8세기 초에 만들어진 커다란 돌항아리가 있는데 이 항아리가 법주사의 승려 3000명이 먹던 김치독이라는 말이 전하기도 하지요.

◇"소금에 절여 겨울에 대비하네"


김장 풍습에 대한 최초의 역사 기록은 김치보다 조금 늦게 나와요. 고려 시대 중엽인 13세기 이규보라는 인물이 쓴 시 '가포육영(家圃六詠)'에 나오죠. 오이·가지·순무·파·아욱·박 등 텃밭에서 가꾸는 6가지 채소에 대해 읊은 시인데 그중에 '순무를 장에 넣으면 한여름에 먹기 좋고/소금에 절여 겨울에 대비하네/땅속의 뿌리 커지고/서리 맞은 무 칼로 베어 먹으니 배 맛이라네'라는 내용이 있어요. 제철 무를 장에 넣고(장아찌) 소금에 절여서(김치) 여름과 겨울에 먹었다는 풍속을 얘기하고 있지요. 이를 통해 장아찌와 김치라는 두 가지 저장 음식이 있었다는 것과 겨울철에 대비하는 김장 풍습이 있었음을 추리해볼 수 있어요.

조선 시대에는 19세기 나온 '동국세시기'에 '봄의 장 담그기와 겨울의 김장 담그기는 가정의 중요한 한 해 계획'이라는 말이 실려요. 이보다 조금 뒤에 나온 '농가월령가' 시월령에도 김장 담그기가 나오죠. 이로 미뤄볼 때 19세기에는 김장이 매우 보편화된 상태였다고 볼 수 있어요.

김치는 삼국 시대부터 담갔다고 하지만 이 김치는 우리가 지금 먹는 고춧가루에 통배추로 담근 배추김치와는 많이 달랐을 거예요. 배추김치 주재료인 고추는 16세기 임진왜란 무렵 일본을 통해 전해져요. 속이 꽉 찬 통배추 역시 18세기 중엽 중국을 통해 전래됐어요. 19세기 들어 통배추를 우리 땅 곳곳에 키우기 시작하면서 배추김치가 일반 대중에게 퍼져 나갔어요.

◇이규보와 '동국이상국집'

지금까지 전해지는 김장에 대한 최고(最古)의 글은 '가포육영'이에요. 이규보가 남긴 '동국이상국집(東國李相國集)'에 기록돼 있어요. '동국이상국집'은 동국(東國), 즉 고려의 이씨 재상[相國]의 문집이라는 뜻이에요. 고려의 이씨 재상은 바로 이규보를 말하지요.

이규보는 어떤 사람일까요. 그는 고려 의종 때인 1168년에 태어났어요. 이규보는 아홉 살 때 시를 지어 신동이라 불릴 정도로 어려서부터 문학적인 재능이 뛰어났어요.

그가 벼슬길에 오른 것은 32세 무렵으로 늦은 편이었어요. 그는 고려 무신 정권 최고 권력자였던 최충헌을 칭송하는 시를 지어 눈에 들면서 벼슬을 얻었죠. 이후 1233년에 재상이 됐어요.

그가 남긴 동국이상국집은 그 당시 한반도 역사와 문물을 지금 엿볼 수 있는 좋은 자료예요. 그가 세상을 떠난 해인 1241년에 책으로 엮여 나왔어요. 팔만대장경이라 부르는 '고려대장경'을 새기게 된 동기와 역사, 1377년에 간행된 '직지심체요절'보다 약 140년 앞선 1234~1241년에 금속활자로 '상정예문'이라는 책을 인쇄했다는 이야기도 실려 있지요. 김장뿐 아니라 다른 역사적 사건들도 '동국이상국집'을 통해 전해진 거예요.



지호진 어린이 역사 저술가 기획·구성=양지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