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나해란의 뇌과학 교실] 자전거 타는 법 잊지 않는 이유?… 뇌 깊숙이 저장하기 때문

입력 : 2018.11.07 10:02

기억

요즘 자전거를 타며 늦가을 풍경을 즐기는 사람이 많지요. 그런데 한참 동안 자전거를 타지 않다가 어른이 되어도 자전거 타는 법은 잊어버리지 않는다고 해요. 학교에서 배운 지루한 것들은 며칠만 지나도 금세 잊어버리는데 어떻게 오랫동안 기억할까요? 이유는 자전거 타는 법은 뇌에서 저장하는 장소가 다르기 때문이에요.

처음 새로운 것을 배울 때 우리 뇌세포들은 자극을 받아요. 전기가 흐르면서 반짝거리고 옆 세포에도 정보를 전달해 준답니다. 그런데 이런 뇌세포 활동은 몇 분 지나지 않아 곧 멈춰요. 그래서 시간이 지나면 점차 기억이 흐려지는 거예요. 생각 불빛이 잠깐 반짝이다가 꺼지면 이후에는 아무리 찾아내려고 해도 떠올릴 수가 없죠. 이런 기억 능력을 '단기 기억'이라고 합니다.

[나해란의 뇌과학 교실] 자전거 타는 법 잊지 않는 이유?… 뇌 깊숙이 저장하기 때문
/게티이미지뱅크
단기 기억을 저장하는 뇌는 용량에 한계가 있어요. 더 오래 기억하려면 평생 동안 많은 일을 저장할 수 있도록 큰 장소로 기억을 이동시켜 보관해야 하죠. '장기 기억' 저장소로 말이에요. 새로 알게 된 정보를 바로바로 입력하는 단기 기억 저장소는 뇌피질 겉 표면에 있는 반면, 장기 기억 저장소는 뇌 깊숙이 있답니다.

그렇다면 뇌세포들은 기억을 어떻게 만들어 갈까요? 세포들끼리 자극을 전달하면서 전기가 흐르는 길을 만들어 준답니다. 다른 정보를 받으면 다른 뇌세포 길이 생겨나죠. 많이 배울수록 뇌세포 길도 많아져요. 한번 길이 생기고 나면 다음번에 똑같은 자극이 왔을 때 자극을 전달할 길을 더 쉽게 찾아요. 처음 배울 때보다 두 번, 세 번 되풀이하면 오래 기억하는 이유죠. 장기 기억 저장소엔 뇌세포 수가 더 많고 주고받는 신호도 더 강하다고 해요.

장기 기억을 맡는 공간은 둘로 나뉘어요. 자전거 타는 것처럼 '어떻게 하는지'에 관한 걸 절차적 기억이라고 해요. 이 기억은 소뇌를 포함한 조가비핵이나 미상핵 같은 곳에 저장돼요. 신발 끈 묶는 법, 젓가락질하는 법, 피아노 치는 법, 수영하는 법처럼 운동과 관련한 기억이 이곳에 저장돼요. 여기에 저장된 기억은 우리가 애써 노력하지 않아도 몸이 먼저 반응하죠.

한편 단어를 통해 머릿속에 사실을 암기하는 걸 서술 기억이라고 해요. 학교에서 시험 볼 때 외우는 것들이죠.'세종대왕이 1443년 훈민정음을 만들었다'처럼 말로 풀어서 외운 뒤 곰곰이 떠올려야 하죠. 이 기억은 해마를 포함한 뇌의 측두엽에 저장해요.

치매나 기억상실증에 걸리면 주로 측두엽이 손상돼요. 그래서 자전거 타는 법이나 익숙한 악기를 연주하는 기술은 그대로라고 해요. 기억상실증에 걸린 천재 바이올리니스트는 절대로 바이올린 켜는 법을 잊지 않는다는 말이죠. 다만 예전에 자신이 천재 바이올리니스트라는 사실(서술 기억)을 기억해내지 못하기 때문에 우연히 바이올린을 접하기 전까지는 그 실력을 알지 못할 거예요.



나해란 여의도성모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기획·구성=유소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