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이주은의 미술관에 갔어요] 파리 시내를 물들인 포스터, 순정만화의 시초 되다

입력 : 2017.03.04 03:08

['알폰스 무하―모던 그래픽디자인의 선구자' 展]

아르누보의 대가 알폰스 무하
원과 곡선으로 화려함 강조… 포스터·장식 등으로 큰 인기 누려

당시 평론가들은 예술성 낮게 평가
뒤늦게 뛰어난 걸작으로 인정받아… 그래픽 디자인·순정만화에 큰 영향

알폰스 무하(1860~1939)는 광고 포스터와 패션 용품, 무대 디자인 등 여러 방면에서 재능을 펼쳤던 체코 출신 미술가입니다. 1900년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대규모 만국박람회를 가득 채운 것도 무하의 디자인이었지요. 꽃과 여인을 소재로 한 무하의 포스터는 파리 전 지역을 벽지처럼 도배할 만큼 인기가 대단했습니다.

작품3 - 고야성, ‘반지의 제왕’ 中 갈라드리엘, 2013(왼쪽 사진). 작품4 - 이즈부치 유타카, ‘로도스도 전기: 청렴’, 월간 ‘드래곤 매거진’ 1991년 8월호(오른쪽 사진).
작품3 - 고야성, ‘반지의 제왕’ 中 갈라드리엘, 2013(왼쪽 사진). 작품4 - 이즈부치 유타카, ‘로도스도 전기: 청렴’, 월간 ‘드래곤 매거진’ 1991년 8월호(오른쪽 사진).

오늘날 무하는 순정만화나 환상만화 작가 사이에서 신화 같은 인물로 여겨져요. 오는 5일까지 서울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열리는 무하의 전시회에서 우리나라나 일본에서 활동하는 만화가들의 그림(작품3, 작품4)과 무하가 디자인한 아름다운 포스터를 비교해보면 무하가 순정만화와 환상만화에 얼마나 큰 영향을 주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심리학을 배운 아르누보의 대가

주변에서 가장 쉽게 볼 수 있으면서 기억에도 잘 남는 이미지는 아마도 광고일 거예요. 매장 앞에 붙은 커다란 포스터부터 잡지나 인터넷, TV 등 우리는 늘 쉽게 광고 이미지를 접하니까요. 오늘날과 같은 광고 문화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때가 바로 무하가 활약하던 '아르누보(Art Nouveau·프랑스어로 새로운 미술)'의 시대랍니다. 19세기 말 인쇄술이 발전하고 상업이 발달하면서 상품이나 가게를 홍보하는 포스터 수요가 늘어났고, 덩달아 포스터 미술도 전성기를 누렸어요.

작품1 - 알폰스 무하, ‘백일몽’, 1898.
작품1 - 알폰스 무하, ‘백일몽’, 1898.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알폰스 무하 - 모던 그래픽디자인의 선구자’展

작품1과 같은 무하의 그림은 아르누보 스타일을 가장 대표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입체적인 양감 표현 없이 선으로 그려진 그림 속 여인은 마치 만화 속 등장인물 같아요. 머리 장식부터 여인의 몸 전체를 둥글게 감싸고 있는 장식은 모두 꽃입니다. 구불구불한 머리카락이나 흘러내리는 치맛자락, 꽃의 덩굴 등에서 원과 나선, 곡선이 많이 사용된 것을 볼 수 있어요. 이런 곡선 스타일은 100여 년 전 멋쟁이로 불린 파리 사람들의 마음을 설레게 했답니다. 그의 곡선 스타일에 사람들을 설레게 하는 비밀이 있었기 때문이었죠.

무하는 광고 포스터가 사람들의 눈길을 끌고 마음을 사로잡으려면 무엇보다 먼저 사람의 심리를 잘 이해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무하는 심리학 공부를 열심히 했고, 그렇게 얻은 지식을 디자인에 적극적으로 활용했습니다.

작품2 - 알폰스 무하, ‘모나코-몬테카를로’, P.L.M. 철도 서비스 포스터, 1897.
작품2 - 알폰스 무하, ‘모나코-몬테카를로’, P.L.M. 철도 서비스 포스터, 1897.
모나코에서 몬테카를로까지 가는 철도서비스를 홍보한 포스터를 보세요(작품2). 무하가 그린 이 포스터는 인물 뒤에 후광같은 커다란 원이 신비로운 느낌을 자아냅니다. 이것이 바로 무하의 디자인 전략이에요. 빙글빙글 돌아가는 선들을 커다란 포스터에 그려 넣으면 사람들이 그림을 볼 때 눈동자를 어디 한 곳에 멈추는 대신, 곡선을 따라 크게 움직이게 되지요. 이때 사람들은 휘둥그레 놀라운 것을 본 듯 그림이 멋지다고 느끼는 것은 물론, 유쾌한 기분까지 들기도 합니다.

◇예술로 인정받지 못한 무하의 포스터

당시 무하의 작품은 엄청난 인기를 누렸지만 예술적으로 높은 평가를 받지는 못했어요. 그 시절 평론가들은 화가가 세상에 오직 하나만 있는 작품을 그려야 그 예술성을 인정했기 때문이에요. 예술 작품은 순수하게 감상을 위한 것이며 다른 목적으로 사용되어선 안 된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많았고요. 이런 이유로 평론가들은 포스터로 제작되어 상업적으로 널리 이용되는 무하의 그림을 예술로 인정하지 않았어요.

하지만 무하는 포스터를 만들 때도 다른 예술가 못지 않은 열정과 성의를 담았습니다. 당시 포스터를 만들 때는 대부분 인쇄에 대한 지식이 없는 화가들이 밑그림을 그리고, 그림을 잘 모르는 인쇄소 직원이 밑그림에 색을 입혔어요. 이렇게 여러 과정을 거친 포스터는 화가가 그린 원본과는 완전히 다른 느낌이 났답니다. 하지만 무하는 인쇄에 대한 지식을 바탕으로 그림을 그려 자신이 의도한 대로 포스터가 제작될 수 있게 했어요.

예술에 대한 사람들의 생각이 바뀌면서, 무하의 작품들은 오늘날 뛰어난 예술성을 인정받고 있어요. 아름다우면서도 환상적인 느낌을 주는 그의 그림과 스타일은 만화뿐 아니라 여러 그래픽 디자인 등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답니다.


 

이주은 건국대 교수(문화콘텐츠학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