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이명옥의 명작 따라잡기] 공부방 장식했던 물고기… 우주를 상징하기도 했지요

입력 : 2015.11.20 03:14

[물고기]

조상들 복 준다고 여겨 민화 소재로, 로마 화가는 만물 근본으로 표현도
현대 작가들에겐 다양한 영감 줘… 무분별 환경 파괴 땐 사라질 거예요

전 세계에는 무려 2만5000종이 넘는 물고기가 살아요. 이렇게 많은 물고기는 풍부한 식량 자원이 될 뿐만 아니라 세계 종교, 전설 또는 신화 속에서 여러 가지 상징으로도 쓰여요.

작품1 사진
작품1 - 통도사 범종루의 ‘목어’

예를 들어 절에 가면 나무를 깎아 물고기 모양을 만들어 걸어 둔 작품1과 같은 목어(木魚)와, 독경이나 염불을 할 때 두드리는 물건인 물고기 모양의 목탁(木鐸)을 볼 수 있어요. 물고기 모양 물건을 쓰는 것은 항상 눈을 뜨고 있는 물고기처럼 잠시도 한눈팔지 말고 열심히 도를 닦으라는 뜻이지요.

작품2 사진
작품2 - ‘어변성룡도(19세기 후반~20세기 초반)’ 한국민화뮤지엄 소장

그런가 하면 우리 조상은 물고기를 복을 가져다주는 동물로 여기기도 했어요. 작품2는 민화 '어변성룡도'예요. 민화는 조선 시대 유행했던 우리의 옛 그림을 말해요. 주로 집 안을 장식하고 잔치 분위기를 띄우거나 선물하는 등 실용적 목적으로 그렸어요. 그런데 민물에서 사는 잉어가 왜 하늘을 향해 힘차게 뛰어오른 걸까요? 이 잉어는 성공과 출세를 간절히 바랐던 옛사람들을 상징해요. 조선 시대에는 과거시험에 합격하여 높은 자리에 오르는 것을 잉어가 용이 되는 것에 비유하는 풍속이 있었어요. 중국 황하 상류 협곡 '용문(龍門)'의 거센 물살을 헤치고 뛰어오른 잉어는 용이 되어 하늘로 올라간다는 전설에서 생겨났지요. 오늘날에도 등용문(登龍門)이라는 단어는 출세의 문을 통과했다는 의미로 쓰고 있어요. 조선 사람들은 열심히 공부해서 과거시험에 합격하면 부귀영화를 누릴 수 있다고 믿었어요. 그런 소망을 이루기 위해 잉어를 그린 민화로 공부방을 장식하고, 잉어를 새긴 벼루나 연적을 즐겨 썼답니다.

작품3, 4 사진
작품3 - 아르침볼도 ‘물(1566)’, 작품4 - 정광호 ‘The Fish(2009)’
16세기 신성로마제국의 궁정 화가인 주세페 아르침볼도는 세상 만물의 근본 원리를 물고기에 비유한 그림을 그렸어요. 작품3은 다양한 바다 생물을 합성해 만든 초상화예요. 가까이 다가가면 물고기가 보이지만 멀리서는 신기하게도 진주 귀걸이와 목걸이를 한 여자의 옆모습으로 바뀝니다. 아르침볼도는 왜 물고기로 이루어진 여자의 얼굴을 그렸을까요?우주의 기본 요소라고 믿었던 4원소를 그림에 표현하기 위해서예요. 4원소는 공기, 물, 불, 흙을 말하는데 이 그림은 물을 표현한 겁니다. 물고기이면서 여자도 되는 기발한 초상화는 현대인들이 보아도 놀랄 만큼 창의적이에요. 보통 사람들은 물고기가 모여 사람 얼굴이 될 수 있다는 것은 상상조차 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아르침볼도의 그림은 서로 다른 여러 생각을 결합해 창의성을 키우는 융·복합 시대인 오늘날 더욱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답니다.

우리나라의 조각가 정광호는 실처럼 가는 구리선을 한 줄 한 줄 자른 다음 용접해 물고기 조각을 만들었네요. 작품4는 조각은 무겁고 입체적이라는 생각을 깨뜨립니다. 구리선을 망처럼 엮어 만들었기 때문에 무척 가벼운 데다 안이 훤히 들여다보이거든요. 작품에 조명을 비추면 전시장 벽면에 물고기 조각과 모양이 똑같은 그림자가 생깁니다. 마치 물고기 모양을 선으로 그린 것과 같은 효과가 나타나요. 조각이면서 그림도 되는 재밌는 작품이지요. 하필 구리선을 엮어 안이 투명하게 비치는 조각을 만든 이유는 무엇일까요? 전통적 조각에서는 담아내기 어려운 안을 표현하기 위해서예요. 정광호 작가는 예술가는 겉모습뿐만 아니라 눈으로 볼 수 없는 내면도 표현해야 한다는 믿음을 갖고 있어요. 사람도 겉모습만 보고는 마음속에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없잖아요. 겉이면서 안이 되는 이 물고기 조각은 겉과 안을 구분 짓는 경계선을 없애고 하나로 통합하고 싶은 예술가의 꿈이 담겨 있답니다.

작품5 사진
작품5 - 파울 클레 ‘황금물고기(1925)’

독일 출신의 스위스 화가 파울 클레에게 물고기는 색채 효과를 실험하는 도구였어요. 작품5를 보면 깊은 바닷속에 사는 물고기들이 해초 사이로 자유롭게 헤엄치고 있네요. 한가운데 보이는 물고기는 모습이 매우 아름답고 특이하네요. 몸과 비늘은 황금빛으로 찬란하게 빛나는 데다 꼬리와 눈, 지느러미는 빨갛거든요. 물고기를 이렇게 표현한 것은 보색 대비 효과를 강조하기 위해서예요. 배경인 바다는 차가운 색인 짙은 푸른색을 칠했고 황금 물고기는 따뜻한 색인 노랑과 빨강으로 표현했어요. 서로 반대되는 색을 칠하면 각자 색이 더 강렬하고 선명하게 돋보이게 하는 효과가 나타나거든요. 또 황금 물고기는 움직이지 않지만 주변의 작은 물고기들은 방사선 방향으로 헤엄치는 모습으로 그려졌어요. 정지 상태와 움직임이 아름다운 조화와 균형을 이루도록 하기 위해서죠. 이 그림은 색채만으로도 조화와 균형, 음악적 리듬감을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답니다.

미국의 작가 마크 쿨란스키는 '물고기가 사라진 세상'이라는 책에서 지금처럼 물고기를 무분별하게 많이 잡고, 바다를 오염시키는 일이 계속되면 얼마 후에는 물고기가 사라지게 될 거라고 경고했어요. 물고기를 소재로 한 작품을 감상하면서 생태계를 보전하고 물고기와 더불어 살아갈 방법을 생각해봐요.

이명옥·사비나 미술관 관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