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재미있는 과학] 에스컬레이터 한 줄 서기, 편마모가 기계 고장 부추겨요

입력 : 2026.11.03 03:30

한쪽에 무게 쏠리면 부품도 빨리 닳고
뛰면 서 있을 때보다 충격 8배 달해요
과거엔 '배려하는 문화'로 여겨졌지만
'안전하게 두 줄 서자'는 의견 늘었어요

빼빼로 과자를 주고받는 날로 널리 알려진 11월 11일. 사실 이날은 '승강기 안전의 날'이기도 합니다. 승강기는 엘리베이터와 에스컬레이터 등 동력을 사용해 사람이나 화물을 위아래로 나르는 장치를 말하는데요. 행정안전부와 한국승강기안전공단은 매년 기념식을 열고, 안전한 승강기 사용에 대한 홍보를 합니다. 또 영상, 포스터 등 공모전을 진행하는데, 에스컬레이터에서 뛰거나 걷지 말자는 내용이 많이 담깁니다.

그런데 과연 우리는 에스컬레이터를 얼마나 안전하게 이용하고 있는 걸까요? 지하철역에서 에스컬레이터를 타다 보면 익숙한 풍경이 눈에 들어와요. 오른쪽에는 사람들이 빽빽하게 서 있고, 왼쪽은 바쁜 사람들을 위해 비워두고 있죠. 이를 '한 줄 서기'라고 해요. 그런데 과연 한 줄로 서고 다른 줄을 비워두는 게 미덕일까요? 아니면 양쪽에 나란히 서는 '두 줄 서기'가 맞는 걸까요? 이 문제는 오랫동안 논쟁거리였답니다. 최근 정부가 '두 줄 서기' 캠페인을 다시 추진하려다가 결국 중단하겠다고 밝히면서 또 한 번 주목받았어요.

에스컬레이터에서 어느 쪽에 서느냐는 단순한 생활 습관처럼 보일지 몰라요. 하지만 그 안에는 무게 중심, 하중, 마찰, 충격력, 금속 피로 같은 과학 원리가 숨어 있답니다.

그래픽= 유재일
▲ 그래픽= 유재일
한쪽에만 서면 편마모 생겨요

지난 2023년, 경기 성남시 수내역에서 에스컬레이터가 역주행해 14명이 다치는 일이 있었습니다. 일상에서도 고장으로 운행을 멈춘 에스컬레이터를 종종 보곤 해요. '한 줄 서기'가 문제라고 지적하는 전문가도 많습니다.

한쪽으로만 무게가 쏠리면 에스컬레이터 부품에도 빨간불이 켜져요. 에스컬레이터 안에는 롤러와 레일처럼 서로 맞닿은 채 쉴 새 없이 움직이는 부품이 많아요. 이 부품들이 서로 부딪히고 비비면서 조금씩 닳게 되는데, 이를 '마모'라고 해요. 그런데 한쪽에만 계속 무거운 힘이 실리면, 그쪽 부품이 반대쪽보다 훨씬 빨리 닳아버리죠. 이런 현상을 '편마모'라고 합니다.

실제 연구 결과를 보면, 에스컬레이터 오른쪽의 체인 휠과 가이드 레일 마모율이 왼쪽보다 무려 95% 이상 높았다고 해요. 부품이 짝짝이로 닳아버리면 기계를 더 자주 점검하고 부품을 통째로 갈아 끼워야 해요. 한 줄 서기를 할 때는 두 줄 서기를 할 때보다 기기를 크게 수리해야 하는 주기가 15~20%나 짧아졌다는 조사 결과도 있답니다.

게다가 사람의 움직임도 에스컬레이터에 큰 부담을 줘요. 걷거나 뛰면서 짧은 순간에 '쿵' 하고 큰 힘이 전해지는 것을 '충격력'이라고 하는데요. 사람이 가만히 서 있을 때와 비교하면, 걸을 때는 약 3배, 뛸 때는 무려 7~8배의 충격이 에스컬레이터 바닥에 전해진대요.

이런 충격이 '쿵쾅쿵쾅' 반복되면 기계 부품에 '금속 피로'가 차곡차곡 쌓이게 돼요. 여기서 금속 피로는 사람이 느끼는 피곤함과 달라요. 쇠 같은 단단한 재료에 작은 충격이 자꾸 반복되면서 재료 자체가 조금씩 약해지는 현상을 말한답니다. 약해진 부품은 결국 기계 고장의 원인이 되지요.

에스컬레이터에 사람이 올라서면 그 무게가 고스란히 기계에 전달되는데요. 이때 기계가 받는 힘을 '하중'이라고 하고, 무게가 한 점에 모여 있다고 생각할 수 있는 지점을 무게 중심이라고 해요. 물체에 무게가 골고루 퍼져 있으면 균형 잡기가 쉽지만, 한쪽으로만 쏠리면 균형이 무너지기 쉽죠. 그래서 기계공학자들은 안전을 생각한다면 양쪽에 고르게 서는 두 줄 서기가 바람직하다고 말합니다.

우리나라의 에스컬레이터 줄 서기 정책은 지난 30년간 큰 변화를 겪었어요. 1998년 정부와 시민단체가 효율적인 이용을 위해 처음으로 한 줄 서기를 권장했어요. 바쁜 이용객은 에스컬레이터에서도 걸어갈 수 있도록 배려하자는 취지였지요. 특히 2002년 한일 월드컵을 앞두고 '손님맞이 에티켓'으로 홍보되면서 널리 확산했습니다.

그러다 '기계의 한쪽에만 힘이 집중되면 안전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면서 정부는 2007년부터 두 줄 서기를 권장하기 시작했어요. 하지만 이미 한 줄 서기가 일상화돼 시민들의 호응을 얻지 못했죠. 결국 이 캠페인은 2015년 공식적으로 중단됩니다. 지난해 정부는 다시 '두 줄 서기' 이용 문화 정착을 추진한다고 밝혔으나, 지난 8월 토론회를 거친 후 일률적인 캠페인과 규제는 추진하지 않기로 했어요. '해외에서도 이동 방식을 규제하는 사례는 거의 없다' 등의 의견이 나왔다고 해요.

"한 줄로 서는 게 오히려 비효율적"

두 줄 서기가 더 많은 사람을 안전하고 빠르게 이동시킨다는 의견도 있어요. 지하철 에스컬레이터를 타는 사람 중 걸어 올라가는 사람은 약 25%밖에 되지 않는다는 연구 결과가 있습니다. 75%의 사람은 오른쪽에 빽빽하게 몰리고, 왼쪽은 텅 비워두는 비효율적인 상태가 되는 거죠.

미국 메릴랜드대의 마이클 푸 교수는 이런 상황을 '병목 현상'에 비유했어요. 한쪽 통로에만 사람이 몰리면 그곳이 꽉 막히면서 전체적인 이동 속도가 뚝 떨어지게 된다는 거예요. 푸 교수의 연구에서는 두 줄로 나란히 서서 이동했을 때 분당 에스컬레이터 탑승 인원이 28%나 증가했다고 해요. 그만큼 한 번에 더 많은 사람이 북적이지 않고 이동할 수 있다는 뜻이죠.

안전을 위해서도 두 줄 서기를 해야 한다는 주장이 있습니다. 걷거나 뛰는 사람에게 길을 비켜주려다가 발을 헛디디는 아찔한 일도 자주 일어난다고 해요. 행정안전부가 이번 국민 토론회 전후로 설문조사를 해봤더니, '빠르게 걷는 것'보다 '안전한 이동'을 선호한다는 응답이 63.4%에서 76.8%로 늘었어요. '두 줄 서기에 찬성한다'는 의견도 31.4%에서 45.9%로 증가했습니다.

반면 전문가 중에는 무조건 한 줄이나 두 줄로 정하기보다, 상황에 맞춰 유연하게 적용하자는 의견도 있어요. 예를 들어 신호등 시스템을 도입해, 출퇴근 시간처럼 사람들이 물밀듯 밀려올 때는 '두 줄 서기'로 많은 사람을 이동시키고, 사람이 한적한 시간대에는 급한 승객이 지나갈 수 있도록 한쪽을 비워주는 방식이죠.
김형자 과학칼럼니스트 기획·구성=김민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