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세계 미술관 산책] 유럽 합스부르크 왕가의 수집품… 거대한 '보물창고'예요

입력 : 2026.11.02 03:30

빈 미술사박물관

황제가 수백 년 동안 모은 보물들을 한자리에서 볼 수 있다면 어떨까요? 값비싼 보석과 황금 공예품부터 세계적인 거장들의 명화까지, 오스트리아 빈에는 마치 거대한 보물 창고를 떠올리게 하는 미술관이 있어요. 바로 '빈 미술사박물관'입니다. 이곳은 오랫동안 유럽을 지배한 합스부르크 왕가의 방대한 예술 수집품을 바탕으로 세워진 세계적인 미술관이에요.

합스부르크 왕가는 13세기부터 600년이 넘는 기간 동안 유럽의 정치와 문화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했어요. 왕가 사람들은 미술품 수집에도 애정이 깊었는데, 이는 예술에 대한 사랑과 열의뿐 아니라 가문의 부와 권력을 과시하는 수단이기도 했어요. 특히 신성로마제국 황제 루돌프 2세와 네덜란드 총독이었던 레오폴트 빌헬름 대공은 미술품 수집에 대단한 열정을 보였어요. 이들이 모은 거장들의 작품이 오늘날 빈 미술사박물관을 대표하는 핵심 소장품이 되었지요.

원래 황실의 수집품은 궁전과 여러 건물에 흩어져 있었어요. 19세기 중반, 프란츠 요제프 1세 황제는 이를 한곳에 모아 전시할 대규모 미술관을 건립하기로 했어요. 당시 빈에서는 낡은 성벽을 철거하고 그 자리에 '링슈트라세'라는 화려한 순환도로를 건설하는 대대적인 도시 개조 사업이 한창 진행 중이었어요. 황제는 이 거리에 제국의 위엄을 입증하고 황실의 보물을 담아낼 전용 미술관을 세우고자 한 것이죠.

1871년 시작된 공사는 독일 건축가 고트프리트 젬퍼와 오스트리아 건축가 카를 폰 하제나우어의 설계 아래 무려 20년간 이어졌어요. 마침내 1891년 미술관이 문을 열면서 수 세기 동안 베일에 싸여 있던 황제의 소장품을 일반 시민도 감상할 수 있는 새로운 시대가 열린 것이죠.

빈 미술사박물관 전경. 황금 공예품부터 세계적 거장의 명화까지 두루 품은 박물관이에요.
▲ 빈 미술사박물관 전경. 황금 공예품부터 세계적 거장의 명화까지 두루 품은 박물관이에요.
피터르 브뤼헐의 ‘바벨탑’입니다. 성경 이야기를 소재로 인간의 끝없는 욕망과 오만함을 보여주는 작품입니다.
▲ 피터르 브뤼헐의 ‘바벨탑’입니다. 성경 이야기를 소재로 인간의 끝없는 욕망과 오만함을 보여주는 작품입니다.
합스부르크 왕가의 사치와 예술가의 장인 정신을 동시에 보여주는 ‘황금 소금통’입니다. /빈 미술사박물관·이은화 미술평론가
▲ 합스부르크 왕가의 사치와 예술가의 장인 정신을 동시에 보여주는 ‘황금 소금통’입니다. /빈 미술사박물관·이은화 미술평론가
건물도 예술, 그림도 보물

빈 미술사박물관에 가면 먼저 건축의 웅장함에 압도당해요. 마리아 테레지아 광장을 사이에 두고 거의 똑같이 생긴 두 건물이 마주 보고 있는데, 한쪽은 미술사박물관, 다른 한쪽은 자연사박물관이에요. 두 건물 모두 거대한 돔을 얹은 네오 르네상스 양식으로 설계되었는데, 이는 당시 합스부르크 황실이 예술과 과학을 대등하게 중시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풍경입니다.

미술관 안으로 들어서면 화려한 대리석 계단과 높은 천장, 황금빛 장식이 방문객을 맞이해요. 계단 중앙에는 이탈리아 조각가 안토니오 카노바의 대리석 조각 '켄타우로스를 물리치는 테세우스'가 놓여 있어요. 고개를 들어 계단 홀 상부의 아치 벽면을 살펴보면 더욱 놀라운 보물을 발견할 수 있어요. 바로 오스트리아의 국민 화가 구스타프 클림트가 젊은 시절 그린 장식화가 숨어 있거든요. 클림트는 동생 에른스트, 동료 프란츠 마치와 함께 계단 홀 장식 작업에 참여했어요. 미술관 건물 자체가 하나의 거대한 예술 작품인 셈이지요.

그렇다면 이곳에서 꼭 봐야 할 대표작은 무엇일까요? 단연 으뜸은 플랑드르(현 벨기에 북부 지역) 대표 화가 피터르 브뤼헐의 그림들이에요. 빈 미술사박물관은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브뤼헐 컬렉션을 보유한 곳으로 유명하답니다. 대표작 '바벨탑'에는 하늘에 닿을 듯 거대한 탑을 쌓는 인간들의 모습이 담겨 있어요. 성경 속 이야기를 소재로 인간의 끝없는 욕망과 오만함을 보여주는 작품이지요. '눈 속의 사냥꾼'에서는 하얀 눈으로 뒤덮인 겨울 풍경 속에 사냥꾼과 농민들의 소박한 일상이 펼쳐져요.

17세기 거장들의 명화도 가득합니다. 네덜란드 거장 요하네스 베르메르의 '회화의 기술'은 화가가 모델을 그리는 순간을 빛과 공간의 섬세한 조화로 담아낸 대표적 걸작이에요. 또한, 빛의 화가 렘브란트가 자신의 파란만장한 삶과 세월의 흔적을 깊이 있게 담아낸 '자화상'들 역시 이곳 회화관의 빼놓을 수 없는 하이라이트입니다.

그림뿐만 아니라 공예와 조각 분야에서도 세계 최고의 보물이 기다리고 있어요. 이탈리아의 금 세공가 벤베누토 첼리니가 만든 황금 소금통 '살리에라'는 왕실 사치의 극치와 예술가의 뛰어난 장인 정신을 동시에 보여주는 걸작이에요. 고대 이집트 유물과 그리스·로마 조각, 진귀한 왕실 공예품까지 한자리에서 만날 수 있으니, 박물관 전체가 거대한 세계사 교과서라고 할 수 있어요.

135년 된 미술관의 새로운 꿈

이 미술관은 영화의 아름다운 무대가 되기도 했어요. 바로 젬 코언 감독의 영화 '뮤지엄 아워스'(2012)예요. 영화는 빈 미술사박물관의 경비원 요한과 캐나다에서 온 여성 앤의 우연한 만남과 우정을 그립니다. 두 사람은 전시실에서 그림을 감상하고 도시를 거닐며 삶과 예술에 관한 깊은 대화를 나눠요. 특히 브뤼헐의 그림 속에 담긴 평범한 민중들의 일상은 두 사람의 삶을 반영하는 중요한 매개체가 되지요. 한때 황제의 권위를 드러내기 위해 모인 명화들이, 오늘날 고단한 시대를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들의 삶을 위로하고 되돌아보게 만드는 매개가 된다는 사실이 흥미롭지 않나요.

올해는 빈 미술사박물관이 개관한 지 135주년 되는 해예요. 미술관은 이를 계기로 새로운 변화를 준비하고 있어요. '리마스터링 KHM'이라는 이름의 대규모 건축 재정비 사업인데, 총 4230만유로를 투입해 역사적 건축물을 보존하면서 출입구와 관람 편의 시설을 획기적으로 개선할 계획이지요. 특히 휠체어 이용자나 이동 약자도 제약 없이 방문할 수 있도록 출입구를 바꾸고 엘리베이터도 설치할 예정이랍니다. 매표소와 화장실, 동선 체계도 현대적으로 재정비할 예정이에요. 미술관 측 발표에 따르면 2027년에 착공해 2028년 하반기에 1단계 공사를 마치는 것이 목표예요.

이번 사업의 핵심은 '누구나 차별 없이 예술을 누릴 수 있는 미술관'을 완성하는 데 있어요. 아무리 훌륭한 작품이 있어도 누구나 편리하게 들어가 감상할 수 없다면 진정한 공공 미술관이라고 할 수 없겠지요. 과거 황제의 부와 권력을 상징하던 비밀스러운 보물 창고는 이제 문턱을 낮추고 모든 시민을 품는 열린 공간으로 진화하고 있습니다. 
이은화 미술평론가 기획·구성=김민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