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재밌다, 이 책] 작은 미소, 살며시 움켜쥔 주먹, 내딛는 한 걸음… 사소한 행동도 우리가 낼 수 있는 '용기'랍니다
입력 : 2026.10.29 03:30
내 인생에 용기가 되어준 한마디
힘든 시간을 보내는 친구에게 "이겨내야지"라고 말했다가 오히려 어두워진 표정을 본 적이 있나요? 오늘 하루를 버티기도 벅찬 사람에게 고통을 이겨내라는 말은 또 하나의 무거운 숙제처럼 들리기 쉽습니다. 정호승 시인의 산문집 '내 인생에 용기가 되어준 한마디'는 고통을 이겨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대신 '용기'를 이야기합니다. 시인은 책에서 "고통은 극복하는 것이 아니고 그냥 견디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극복과 용기는 비슷해 보이지만 다릅니다. 극복은 시련을 넘어설 힘이 남아 있어야 가능하지만, 용기는 고통 한가운데 주저앉은 날에도 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시인이 말하는 용기는 어떤 모습일까요. 그는 "용기는 거창하게 시작되지 않습니다"라고 씁니다. 바닥에 쓰러졌다가 다시 일어나 짓는 작은 미소, 살며시 움켜쥔 주먹, 오늘을 위해 내딛는 한 걸음 속에 용기가 있다는 것입니다.
시인의 삶도 늘 순탄하지는 않았습니다. 중학생 때 집안이 기울어 가난을 겪었고, 시를 떠났다 돌아오기를 몇 번이나 반복했지요. 그는 '내 인생이 벼랑 끝에서 위태로울 때, 누군가 내게 이런 이야기를 해주었더라면 좋았을 텐데' 하는 마음으로 펜을 들었다고 합니다. 수록된 76편의 글은 어머니에게 들은 말, 책에서 만난 구절, 성인의 가르침 같은 짧은 문장을 저마다 제목으로 삼고 있습니다. 시인은 그 말을 붙잡아야 했던 날의 이야기를 함께 들려줍니다.
그 이야기들 속에서 용기는 저마다 다른 얼굴을 하고 있습니다. 먼저 한 걸음 물러서는 용기입니다. 우주에서 찍은 사진 속 점 하나 크기에 불과한 지구를 보고 시인은 "가슴이 쿵 내려앉았다"고 고백합니다. 그 작은 별 위에서 무엇을 더 가지려고 매일 전쟁을 치르듯 아옹다옹 살았는지 돌아보게 된 것이지요. 소중한 것을 지키는 용기도 있습니다. 대학 시절 시인은 밥을 포기하고 다방에서 커피 한 잔으로 온종일 시를 썼습니다. 그 기억에서 나온 말이 '꽃 한 송이가 밥 한 그릇보다 더 귀할 수 있다'입니다. 당장의 쓸모만 따지는 세상에서 그런 꽃 한 송이를 붙드는 데도 용기가 필요합니다. 고통을 다르게 바라보는 용기도 있습니다. 가지가 뒤틀렸다고 꽃마저 아름답지 않은 나무는 없듯, '내 인생에 왜 이렇게 고통이 많나'보다 '고통 많은 내 인생에도 이런 기쁨이 있구나'라고 생각하면 삶이 달라진다는 것이지요.
요즘은 공부법부터 성공 공식까지, 인생의 문을 여는 방법을 알려준다는 짧은 영상이 넘쳐납니다. 하지만 이 책은 그런 방법을 알려주지 않습니다. 시인은 젊은 독자들에게 '모든 벽은 문이다'라는 말을 건네면서도, 그 문을 어떻게 열지는 각자의 몫이라고 덧붙였습니다. 사람마다 서 있는 벽이 다르니, 문도 저마다 자기 벽에서 찾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 책이 건네는 것은 열쇠가 아니라, 그 벽 앞에서 주저앉지 않고 문을 더듬어 볼 용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