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뉴스 속의 한국사] 식사 후 사망한 경종… "영조가 죽였다" 소문 돈 까닭은?
입력 : 2026.10.29 03:30
곶감, 홍시
'호랑이와 곶감'이라는 전래동화가 있습니다. 울고 보채던 아이는 호랑이가 온다는 말에도 울음을 그치지 않지만, 곶감을 준다는 말에 울음을 그칩니다. 그럴 만큼 곶감이 맛있다는 이야기입니다.
달콤한 간식이 흔하지 않던 옛날, 감은 아이들은 물론 어른들도 좋아하는 과일이었습니다. 나무에서 따서 잘 익힌 홍시도, 햇볕과 바람에 말린 곶감도 사람들의 사랑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감은 단지 맛있는 먹거리였던 것만은 아니었습니다. 때로는 나라 사이의 외교 문제가 됐고, 임금의 죽음을 둘러싼 의혹의 중심에 서기도 했습니다.
말리고 소금물에 넣고
과연 이 땅에 언제부터 감이 자라기 시작했을까요? 삼국 시대 이전부터 한반도에 감나무가 자랐을 것이란 추정도 있지만, 확실한 기록은 고려 시대 때부터 찾아볼 수 있습니다. 감을 조금이라도 오래 보관하기 위해 사람들은 열매를 상수리 잎으로 싸 두기도 했습니다. 소금물에 넣거나 통째로 얼려 여름까지 보존하기도 했습니다. 그래도 가장 익숙한 보존 방법은 곶감을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껍질을 벗긴 감을 말려 표면에 흰 당분이 배어 나오게 했고 찹쌀과 곶감 가루를 버무려 찐 곶감떡을 만들기도 했습니다. 그 외에 수정과 같은 음식을 만들 때도 곶감이 사용됐습니다.
고려의 시인 이규보는 늙은 사람에게는 말랑말랑한 홍시가 좋고, 병든 사람에겐 곶감이 좋다고 말했습니다. 조선 중기의 문신 이항복(오성)과 이덕형(한음)에 관한 이야기인 '오성과 한음'에도 감이 등장합니다. 오성은 어릴 때부터 재치 있고 영리하기로 유명했어요. 오성의 집에는 감나무 한 그루가 있었는데, 가지가 담장을 넘어 이웃집까지 뻗어 있었어요. 어느 날 이웃집 주인이 담장 너머에 달린 감은 자기 것이라며 따지 못하게 했어요. 그러자 오성은 이웃집을 찾아가 방문의 구멍으로 주먹을 쑥 내밀고 물었어요. "이 주먹은 누구 것인가요?" 주인이 "당연히 네 것이지"라고 답하자, 오성은 "그렇다면 담장 너머로 뻗은 우리 집 감나무의 감도 우리 것이겠군요"라고 재치 있게 받아쳤답니다. 조선 후기의 추사 김정희는 제주도에서 유배 생활을 하다가 부인에게 맛있는 곶감을 많이 보내달라고 부탁했지요.
달콤한 간식이 흔하지 않던 옛날, 감은 아이들은 물론 어른들도 좋아하는 과일이었습니다. 나무에서 따서 잘 익힌 홍시도, 햇볕과 바람에 말린 곶감도 사람들의 사랑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감은 단지 맛있는 먹거리였던 것만은 아니었습니다. 때로는 나라 사이의 외교 문제가 됐고, 임금의 죽음을 둘러싼 의혹의 중심에 서기도 했습니다.
말리고 소금물에 넣고
과연 이 땅에 언제부터 감이 자라기 시작했을까요? 삼국 시대 이전부터 한반도에 감나무가 자랐을 것이란 추정도 있지만, 확실한 기록은 고려 시대 때부터 찾아볼 수 있습니다. 감을 조금이라도 오래 보관하기 위해 사람들은 열매를 상수리 잎으로 싸 두기도 했습니다. 소금물에 넣거나 통째로 얼려 여름까지 보존하기도 했습니다. 그래도 가장 익숙한 보존 방법은 곶감을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껍질을 벗긴 감을 말려 표면에 흰 당분이 배어 나오게 했고 찹쌀과 곶감 가루를 버무려 찐 곶감떡을 만들기도 했습니다. 그 외에 수정과 같은 음식을 만들 때도 곶감이 사용됐습니다.
고려의 시인 이규보는 늙은 사람에게는 말랑말랑한 홍시가 좋고, 병든 사람에겐 곶감이 좋다고 말했습니다. 조선 중기의 문신 이항복(오성)과 이덕형(한음)에 관한 이야기인 '오성과 한음'에도 감이 등장합니다. 오성은 어릴 때부터 재치 있고 영리하기로 유명했어요. 오성의 집에는 감나무 한 그루가 있었는데, 가지가 담장을 넘어 이웃집까지 뻗어 있었어요. 어느 날 이웃집 주인이 담장 너머에 달린 감은 자기 것이라며 따지 못하게 했어요. 그러자 오성은 이웃집을 찾아가 방문의 구멍으로 주먹을 쑥 내밀고 물었어요. "이 주먹은 누구 것인가요?" 주인이 "당연히 네 것이지"라고 답하자, 오성은 "그렇다면 담장 너머로 뻗은 우리 집 감나무의 감도 우리 것이겠군요"라고 재치 있게 받아쳤답니다. 조선 후기의 추사 김정희는 제주도에서 유배 생활을 하다가 부인에게 맛있는 곶감을 많이 보내달라고 부탁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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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일 인천 남동구의 한 감나무. 새가 감을 쪼아 먹고 있습니다.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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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껍질을 벗기고 말린 감인 곶감은 옛날부터 많은 사람에게 사랑받아 왔습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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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선 중기 문신 이항복의 초상화입니다. 그의 집 감나무 가지가 이웃집으로 넘어가자, 자신의 감이라고 재치 있게 주장했다는 일화가 전해집니다. /국립중앙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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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평소 약했던 조선 임금 경종은 게장과 감을 먹은 뒤 몸이 나빠졌다가 결국 세상을 떠났습니다. 사진은 경종실록입니다. 두 음식을 먹은 경종이 심한 통증을 겪었다는 내용이 적혀 있어요. /조선왕조실록
하지만 감은 때로 그냥 먹거리가 아니라, 역사의 중요한 순간에 등장하기도 했습니다. 병자호란(1636~1637)에서 패배한 조선은 큰 타격을 입었고, 청나라의 수많은 요구를 들어줘야 했는데요. 그중 하나가 홍시였습니다. 청나라의 중심 지역인 만주에서는 추운 날씨 때문에 감나무가 잘 자라기 어려웠습니다. 청나라 사람들에게 조선의 홍시는 귀한 음식이었죠. 청나라는 조선에 홍시 2~4만개를 요구했습니다. 조선 각지에서 홍시를 모았지만 요구한 양보다 적은 1만6000개를 보낼 수 있었습니다. 홍시가 워낙 상하기 쉬워 수고로움은 굉장했습니다. 1639년 이상기후로 평안도의 감이 죄다 물러지게 되자, 조선은 청나라 사신들에게 애써 해명하기도 했습니다. 터진 홍시도 있고, 심지어 흙이나 눈덩이를 뭉쳐 홍시인 척하고 보낸 것마저 있었습니다. 당시 조선이 홍시를 구하기 위해 얼마나 애를 먹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수많은 양을 한 번에 나르기 어려워 청나라 사신 편에 홍시를 함께 보내기도 했습니다. 청나라 대신들은 누가 조선의 홍시 선물을 받았는지를 두고 자기들끼리 싸움을 벌였다고 합니다. 조선은 청나라 관리를 회유하는 데도 홍시를 사용했고, 그렇게 건너간 홍시는 중국 시장에서 거래되기도 했습니다.
게장과 감을 함께 먹으면 죽는다?
조선의 20대 왕 경종은 1724년 35세의 젊은 나이에 자식 없이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런데 경종이 죽기 전에 먹었던 음식이 바로 게장과 감이었지요. 평소 몸이 약했던 경종은 죽기 얼마 전 식사를 제대로 하지 못할 만큼 아팠는데, 이때 연잉군이 게장을 보냈다고 합니다. 연잉군은 경종의 이복동생으로, 19대 왕 숙종의 후궁인 최숙빈의 아들입니다. 다음 왕인 영조가 되는 사람이었지요. 게장을 본 경종은 갑자기 입맛이 돌아 밥을 맛있게 먹었고, 후식으로 생감을 먹었습니다.
하지만 그날로 경종은 배앓이를 하게 됩니다. 다음 날 어의들은 왕을 돌보며 '감과 게는 상극이다'라고 했습니다. 정말 그럴까요? 감에 들어 있는 타닌 성분은 단백질을 응고시켜 소화를 방해할 수 있습니다. 오늘날에도 감과 단백질을 함께 과다 섭취하는 것은 권하지 않기도 합니다. 결국 5일 뒤 경종은 승하하고 맙니다. 새로운 왕이 된 영조에게는 형을 독살했다는 소문이 평생 따라다니게 됩니다. 1755년 역모를 꾸몄다는 혐의를 받은 신하는 심문을 받다가 "나는 경종이 승하한 갑진년부터 게장을 먹지 않았다!"라고 외치기까지 했습니다. 사실 허약했던 경종의 몸에 게장과 감보다도 갑작스러운 과식이 안 좋았을 것 같지만, 이미 사람들에겐 '게장과 감을 함께 먹으면 죽는다'라는 속설이 전해지게 되었습니다.
지금 우리나라 곳곳의 감나무에는 붉은 열매가 주렁주렁 매달려 있습니다. 까치가 쪼아 먹는 감을 바라보며 우리는 계절이 깊어졌음을 느낍니다. 감은 오랫동안 사람들의 입을 즐겁게 해주었고, 때로는 외교의 부담이 되었으며, 한 왕의 죽음을 둘러싼 의혹에까지 얽혔습니다. 우리가 가을마다 무심코 베어 무는 붉은 감 속에는 이처럼 평범한 먹거리를 넘어선 파란만장한 역사가 담겨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