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노벨 평화상] 전쟁·인권·환경 두루 다루지만… 논란도 많은 상이래요

입력 : 2026.10.28 03:30

[2026 노벨상] <6> 평화상

2026년 노벨 평화상은 남아프리카공화국 출신 인권법 전문가 나비 필라이(85)에게 돌아갔어요. 필라이는 인종차별에 맞선 변호사로 출발해 국제 재판소 재판관과 유엔의 인권 정책을 총괄하는 유엔 인권최고대표 등을 지냈어요. 노르웨이 노벨위원회는 필라이를 수상자로 발표하면서 "우리 시대 국제법의 대표적 수호자"라고 평가했습니다. 이어 "전쟁 범죄와 반인도적 범죄, 집단 학살이 처벌받도록 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선정 이유를 밝혔어요. 필라이는 어떤 삶을 살았는지, 노벨 평화상은 어떤 상인지 함께 살펴볼까요?

2026년 노벨 평화상 수상자인 나비 필라이.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태어난 인도계 여성 법률가로, 유엔 인권최고대표 등을 지냈습니다. 인종차별 문제뿐 아니라 일본군 위안부 문제, 북한 인권 문제 등도 다뤘습니다. /로이터 연합뉴스
▲ 2026년 노벨 평화상 수상자인 나비 필라이.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태어난 인도계 여성 법률가로, 유엔 인권최고대표 등을 지냈습니다. 인종차별 문제뿐 아니라 일본군 위안부 문제, 북한 인권 문제 등도 다뤘습니다. /로이터 연합뉴스
인권 문제에 헌신한 법조인

1941년 남아공 더반에서 태어난 필라이는 인도계 가정 출신으로 인종차별을 겪으며 자랐어요. 당시 남아공에는 인종에 따라 사는 곳과 누릴 수 있는 권리를 차별하는 '아파르트헤이트' 정책(1948~1994)이 시행 중이었습니다. 성인이 된 그는 1967년 법률사무소를 열어 인종차별 정책에 저항한 활동가들을 변호했지요. 넬슨 만델라(1918~2013) 등이 수감된 로벤섬의 정치범들이 기본권을 누리도록 힘썼어요. 1994년 만델라가 대통령에 취임하며 아파르트헤이트는 막을 내렸고, 필라이는 이듬해 남아공 고등법원 판사가 됐습니다. 유색인 여성으로는 처음이었죠.

국제 무대에서도 활발히 활동했어요. 르완다 국제형사재판소(ICTR)는 르완다에서 벌어진 대규모 학살 등의 책임자를 재판하기 위해 만든 법정인데요. 필라이는 이곳에서 재판관과 재판소장을 맡아 '성폭력도 집단 학살의 수단이 될 수 있다'는 판단을 확립하는 데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이어 전쟁 범죄 등의 책임자를 처벌하는 국제형사재판소(ICC) 재판관을 지냈고, 2008~2014년에는 유엔 인권최고대표로 일했어요.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일본 정부에 촉구하고 북한 인권 문제도 다뤘죠.

2021년부터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에 관한 유엔 조사위원회를 이끌었어요. 위원회는 2025년 이스라엘이 가자지구에서 집단 학살을 저질렀다는 보고서를 냈지만, 이스라엘 정부는 이를 부인하기도 했죠. 현재 필라이는 미얀마의 로힝야족 집단 학살 혐의를 심리하는 국제사법재판소(ICJ) 사건에 임시 재판관으로 참여하고 있어요. 필라이는 이번 수상의 영광을 국제 범죄 피해 생존자들과 국제 정의를 위해 일하는 사람들에게 바친다고 밝혔어요.

1964년 노벨 평화상을 받은 미국 목사 마틴 루서 킹 주니어입니다. 인종차별에 맞선 비폭력 인권 운동 공로로 상을 받았어요. 그의 수상은 평화의 의미가 전쟁 방지를 넘어 차별과 억압을 없애는 일로 넓어졌음을 보여줬습니다. /위키미디어 커먼스
▲ 1964년 노벨 평화상을 받은 미국 목사 마틴 루서 킹 주니어입니다. 인종차별에 맞선 비폭력 인권 운동 공로로 상을 받았어요. 그의 수상은 평화의 의미가 전쟁 방지를 넘어 차별과 억압을 없애는 일로 넓어졌음을 보여줬습니다. /위키미디어 커먼스
그간 주요 수상자는?

노벨상은 물리학상, 화학상, 생리의학상, 문학상, 평화상, 경제학상 등 총 여섯 분야인데요. 1969년 첫 수상자를 정한 경제학상을 제외한 나머지 다섯 분야는 1901년 시작됐어요. 평화상은 국가 간 우호 증진과 군비 축소 등 평화에 기여한 사람에게 주도록 했죠.

1901년 첫 수상자는 스위스의 앙리 뒤낭(1828~1910)과 프랑스의 프레데리크 파시(1822~1912)였어요. 뒤낭은 전쟁터의 부상병을 구호하는 적십자 운동을 만드는 데 기여했고, 파시는 나라 사이의 다툼을 전쟁 대신 대화와 중재로 풀자고 주장했어요. 이후 매년 수상자가 나온 건 아니었습니다. 두 차례 세계대전 중에는 수상자를 발표하지 않은 해도 있었습니다.

1964년에는 미국의 마틴 루서 킹 주니어(1929~1968)가 인종차별에 맞선 비폭력 인권 운동 공로로 수상했어요. 평화의 의미가 전쟁 방지를 넘어 차별과 억압을 없애는 일로 넓어졌음을 보여줬죠. 1993년에는 남아공의 넬슨 만델라와 프레데리크 빌럼 데 클레르크(1936~2021)가 아파르트헤이트 종식에 기여해 공동 수상했어요. 2000년에는 김대중 전 대통령이 민주주의와 인권 증진, 남북 화해에 힘쓴 공로로 한국인 최초로 받았고요. 2007년에는 앨 고어(78) 전 미국 부통령과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가 기후 문제 해결에 노력한 공로로, 2010년에는 류샤오보(1955~2017)가 중국 인권 신장을 위해 노력한 공로로 수상했습니다. 이처럼 그간의 수상자를 살피면 전쟁을 막기 위한 협력, 인권, 환경 등 인류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평화'의 의미 변화를 알 수 있어요.

지난 1월 베네수엘라 정치인 마리아 코리나 마차도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게 자신의 노벨 평화상 메달을 건넸습니다. 미국이 베네수엘라에 군사적으로 개입해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을 체포한 뒤 트럼프에게 감사의 뜻으로 메달을 준 건데, 이를 두고 논란이 일기도 했습니다. /백악관
▲ 지난 1월 베네수엘라 정치인 마리아 코리나 마차도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게 자신의 노벨 평화상 메달을 건넸습니다. 미국이 베네수엘라에 군사적으로 개입해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을 체포한 뒤 트럼프에게 감사의 뜻으로 메달을 준 건데, 이를 두고 논란이 일기도 했습니다. /백악관
평화상을 둘러싼 논란

다만 평화상은 노벨상 중 논란이 가장 많은 상으로 꼽힙니다. 정치인이 수상하면 비판이 나오기도 하고, 공로에 대한 의문도 있죠. 1973년 미국의 헨리 키신저(1923~2023)와 북베트남의 레득토(1911~1990)는 베트남전쟁을 멈추기 위한 파리 평화 협정에 기여해 공동 수상자로 선정됐는데요. 그러나 레득토는 전쟁이 끝나지 않았다며 수상을 거부했어요. 또 키신저는 미국의 캄보디아 폭격 등 전쟁 정책에 관여한 책임으로 비판받았죠. 수상자가 결정된 후 노벨위원회 위원 2명이 항의의 의미로 사퇴하기도 했습니다.

2009년에는 버락 오바마(65) 당시 미국 대통령이 국제 외교와 협력을 강화하려는 노력을 인정받아 수상했어요. 하지만 대통령 취임 후 1년도 되지 않은 시점이어서 구체적인 성과가 충분한지를 놓고 의견이 갈렸어요.

올해 평화상을 두고도 다양한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나는 8개의 전쟁을 해결했다"며 자기가 평화상을 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는데요. 필라이가 수상자로 결정된 뒤엔 노벨위원회와 필라이를 비난하기도 했어요. 또 필라이가 몸담았던 ICC(국제형사재판소)에 대한 고강도 제재에 나섰습니다. 미국 관할 지역에 있는 ICC의 모든 자산이 동결된다는 내용이 담겼어요. 트럼프 행정부는 전에도 ICC가 미군에 대한 의혹을 조사하려 하자 ICC 검사와 판사의 입국을 막은 바 있습니다.

작년 수상자인 베네수엘라 야권 지도자 마리아 코리나 마차도는 자신의 평화상 메달을 트럼프에게 전달하기도 했어요. 미국이 베네수엘라에 군사적으로 개입해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을 체포하자 마차도는 감사의 뜻으로 메달을 전한 건데, 외국의 군사 개입을 지지하거나 상을 정치적으로 이용했다는 비판이 나왔습니다.
정세정 옥길새길중 역사 교사 기획·구성=김민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