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2026 노벨상] 용돈 오른다 하면 지갑 열듯, '기대'가 선택에 영향 줘요

입력 : 2026.10.26 03:30

[4] 경제학상

로버트 홀 미국 스탠퍼드대 교수(왼쪽)와 마이클 우드퍼드 미국 컬럼비아대 교수. 두 교수는 미래에 대한 수많은 사람의 기대와 선택이 모여 나라 경제 전체의 흐름을 만들어낸다는 취지의 연구로 올해 노벨 경제학상을 공동 수상했습니다.  /노벨상
▲ 로버트 홀 미국 스탠퍼드대 교수(왼쪽)와 마이클 우드퍼드 미국 컬럼비아대 교수. 두 교수는 미래에 대한 수많은 사람의 기대와 선택이 모여 나라 경제 전체의 흐름을 만들어낸다는 취지의 연구로 올해 노벨 경제학상을 공동 수상했습니다. /노벨상
가게에 갔더니 사장님이 "조만간 과자 가격을 올릴 예정"이라고 합니다. 과자 재료인 밀가루 값이 많이 오를 것 같아서라고 하네요. 좋아하는 과자 가격이 오른다니 몇 봉지 더 사놓고 싶어집니다.

수많은 가계와 기업은 이처럼 미래를 예상하고 경제 활동을 합니다. 소비자는 과자가 더 비싸지기 전에 미리 사놓고, 가게 주인은 재료 값이 더 오른다고 예상해 가격을 인상합니다. 올해 노벨 경제학상은 미래에 대한 수많은 사람의 기대와 선택이 모여 나라 경제 전체의 흐름을 만들어낸다는 점에 주목한 연구자들에게 돌아갔습니다. 수상자는 로버트 홀(83) 미국 스탠퍼드대 교수, 마이클 우드퍼드(71) 미국 컬럼비아대 교수 두 명입니다.



한계에 맞닥뜨린 기존 공식

과거 경제학자들은 경제를 손님이나 가게 같은 작은 단위가 아니라 '큰 덩어리' 기준으로 주로 분석했습니다. 사람들이 사려는 물건과 생산할 수 있는 물건의 큰 흐름을 기준으로 물가, 소비, 일자리 등의 관계를 설명하려고 했지요. 사려는 물량이 생산량보다 많을 때는 소비·일자리가 늘면서 물가가 오르고, 반대이면 소비·일자리가 줄면서 물가는 내려간다는 식이었습니다.

정부와 중앙은행은 이 '공식'에 따라 조치를 취했습니다. 예를 들어 소비·일자리가 줄어들 때는 정부가 지출을 늘리고 중앙은행은 금리를 내려서 돈이 더 돌게 합니다. 그 결과 소비·일자리는 살아났는데 물가가 너무 올라 문제가 되면 반대의 조치를 취해서 물가를 진정시키고요. 이런 방식은 꽤 잘 작동하는 듯했습니다.

그러다 1970년대 석유 파동이라는 충격이 닥쳤습니다. 유가가 치솟자 기업은 비용이 늘어 힘들어졌습니다. 기업들이 직원을 해고하면서 실업자는 늘어나고 소비가 쪼그라들었습니다. 미국 정부와 중앙은행은 원래의 '공식'대로 경기를 살리는 처방에 나섰지만 상황은 점점 나빠졌습니다. 실업자는 줄지 않고 소비도 살아나지 않는데 물가는 자꾸 올라가는 최악의 상황이 오래 이어집니다.

무엇이 문제였을까요. 기름값이 치솟자 기업들은 '재료비가 더 오르겠네. 다른 기업도 가격을 올리겠지'라고 예상해 물건값을 인상했습니다. 실업자가 많고 소비자가 지갑을 닫은 판에 가격까지 비싸지니 물건은 더 안 팔립니다. 정부가 보조금을 준다고 해서 사람들이 소비를 늘리지도 않습니다. 보아하니 실업 상태가 오래 지속될 것 같고, 그렇다면 돈을 당장 쓰지 않고 저축해 놓는 편이 합리적일 테니까요.



기대를 통해 바뀌는 현재의 경제 활동

이처럼 각각의 가계와 기업이 미래를 어떻게 예상하고 행동하는지, 즉 '기대'가 경제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면 정부와 중앙은행의 정책은 실패할 수 있습니다. 이 문제를 풀어낸 연구가 올해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들의 성과로 평가됩니다. 홀 교수가 가계 쪽 기초를 놓고, 우드퍼드 교수가 여기에 기업의 가격 결정과 중앙은행의 금리 정책을 결합해 경제 전체를 분석하는 틀로 체계화했습니다.

먼저 홀 교수의 연구부터 보겠습니다. '기대'라는 변수는 드러나지 않으니 측정하기가 어렵습니다. 홀 교수는 이렇게 발상을 뒤집었습니다. '미래에 대한 기대는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그 기대가 반영된 소비 행동은 볼 수 있다.'

지금 예상한 대로 미래에 행동하지 않는 경우는 많습니다. 예를 들어 1년 뒤 새 가방을 사려고 돈을 모았다가 그 사이 가방을 선물받으면 가방을 살 필요가 없어지니 저축을 늘릴 수 있습니다. 반면 미래에 대한 기대는 현재의 행동에 거의 반드시 영향을 줍니다. 예상치 못한 보너스 소식처럼, 새로운 정보가 생기면 소비 계획은 달라지지요. 과자를 사 먹을까 말까 갈등하다가 다음 주부터 용돈을 올려주겠다고 하면 구매를 확정하는 식입니다. 미래에 대한 기대가 소비에 어떻게 반영되는지를 실제 자료로 확인할 방법을 제시했다는 것이 홀 교수의 성과입니다.

다음은 우드퍼드 교수입니다. 그는 홀 교수의 이론을 기업의 결정과 중앙은행의 정책에 연결했습니다. 기업도 미래를 예상해 행동합니다. 하지만 파는 물건의 가격은 즉시 바꾸기 어려운 경우가 많습니다. 가격표 교체에 비용이 드는 데다 가격을 올리면 손님이 떠날 수도 있다고 예상하기 때문입니다. 가격을 못 바꾸면 대신 고용과 생산량을 조정하는 방식으로 미래에 대처합니다.

예를 들어 중앙은행이 금리를 내려서, 대출받아 자동차를 사려는 사람이 늘어난다고 해보겠습니다. 앞서 설명한 이유로 자동차 회사는 바로 가격을 올리지 않는 대신 늘어난 주문을 최대한 소화하려 직원을 더 고용하고 공장을 더 돌려 생산을 늘립니다. 중앙은행의 금리 인하 효과가 결과적으로 고용과 생산까지 이어진 셈입니다. 이 경로를 밝혀낸 것이 우드퍼드 교수의 성과 중 하나입니다.

우드퍼드 교수는 이런 관계를 이용해 중앙은행이 금리 결정에 활용할 수 있는 새로운 '공식'을 만들었습니다. 여기엔 '가계와 기업의 결정엔 미래에 대한 기대가 영향을 준다'는 점이 반영돼 있습니다. 한국은행을 포함한 대부분의 중앙은행은 우드퍼드 교수의 이 공식을 지금도 쓰고 있습니다.



"중앙은행의 위기 대처 방식 바꿔"

노벨위원회는 특히 우드퍼드 교수의 연구 결과가 중앙은행이 소통하는 방식까지 바꿨다고 평가합니다. 지금의 많은 중앙은행은 가계와 기업의 '기대'를 어떻게 바꾸는지가 중요하다고 보고 금리 결정 그 자체만큼 미래에 대한 메시지를 제대로 내기 위해 노력합니다. 중앙은행의 이런 활동을 영어로는 '포워드 가이던스(forward guidance)', 즉 '사전 예고'라고 부릅니다. 지난 22일 신현송 한국은행 총재는 기준금리를 동결하면서도 "물가가 잡힐 때까지 긴축(금리 인상) 기조를 유지하겠다"고 했지요. 금리를 머잖아 또 올리겠다고 예고한, 중앙은행의 '포워드 가이던스' 사례입니다.

두 수상자의 연구는 중앙은행의 위기 대처 방식에 변화를 불러왔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2008년 금융 위기와 2020년 코로나 팬데믹 같은 위기에 중앙은행은 과거 석유 파동 때와 다르게 가계·기업의 기대를 염두에 두고 대처했습니다. 노벨위원회는 덕분에 경기 침체가 더욱 깊고 길어질 위험을 줄이는 데 기여했다고 평가했습니다. 미국 중앙은행이 금융 위기와 코로나 팬데믹 때 "무제한으로 돈을 풀겠다"고 발표해 시장을 진정시켰다든지, 2012년 유럽 재정 위기 당시 유럽중앙은행이 "필요한 것은 무엇이든 하겠다"고 선언한 것이 대표적입니다. 다만 최근엔 중앙은행의 과도한 사전 예고가 시장의 건강한 '셀프 조정' 기능을 해친다는 회의론도 일고 있습니다.


김신영 기자 도움말=이윤수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