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노벨 생리의학상] 0.01㎜ 녹조류 속 단백질… 뇌 조종하고 시력 되살렸대요

입력 : 2026.10.22 03:30

[2026 노벨상] <3> 생리의학상
광유전학

올해 노벨 생리의학상은 과학자 세 명에게 돌아갔습니다. 칼 다이서로스(55) 미국 스탠퍼드대 교수, 페터 헤게만(72) 독일 훔볼트대 교수, 게오르크 나겔(73) 독일 뷔르츠부르크대 교수입니다. 생리의학상 수상자를 정하는 스웨덴 카롤린스카 연구소 노벨위원회는 '광유전학에 관한 발견'을 이들의 공로로 꼽았습니다.

광유전학(optogenetics)은 유전자를 다루는 학문인 '유전학' 앞에 '빛 광(光)' 자가 붙은 말입니다. 우리 몸을 이루는 수많은 세포 가운데 원하는 세포만 골라 빛으로 조절하는 기술입니다. 전등 스위치를 켜고 끄는 것과 비슷합니다. 그런데 이 놀라운 기술의 출발점은 사람이 아니라 연못에 사는 작은 녹조류(녹색을 띠는 하등 식물)였다고 하는데요. 어떻게 된 일인지 세 과학자의 이야기를 따라가 보겠습니다.

그래픽= 유재일
▲ 그래픽= 유재일
빛을 쬐면 문이 열리는 단백질

클라미도모나스라는 녹조류는 크기가 0.01㎜ 정도입니다. 현미경으로 봐야 보이는 단세포 생물이죠. 이 녹조류는 꼬리처럼 생긴 편모 두 개를 휘저어 헤엄치는데, 햇빛으로 양분을 만드는 광합성을 하려고 빛이 있는 쪽으로 움직입니다. 그런데 이 녹조류엔 눈이 없습니다. 어떻게 빛을 알아차리는 걸까요?

비밀은 이 녹조류의 세포막에 박혀 있는 '채널로돕신'이라는 단백질에 있습니다. 이 단백질은 평소에는 닫혀 있다가 파란빛을 받으면 문처럼 열립니다. 문이 열리면 세포 바깥에서 나트륨 같은 이온, 즉 전기를 띤 작은 입자가 안으로 쏟아져 들어오는데, 녹조류는 이를 신호로 빛이 어느 쪽에서 오는지 알 수 있답니다.

헤게만 교수와 나겔 교수는 2002~2003년 이 단백질이 빛을 받으면 1000분의 1초도 안 되는 짧은 시간에 열리는 '빛 스위치'라는 사실을 밝혀냈어요. 이 단백질의 유전자를 개구리 알이나 사람의 세포에 넣어도 똑같이 빛 스위치로 작동한다는 것도 확인했지요. 그러자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우리 몸의 신경세포는 전기 신호로 서로 이야기를 주고받는데요. 세포 안으로 이온이 들어오면 전기 신호를 내며 켜지는 식입니다. 녹조류의 빛 스위치가 하는 일과 똑같지요. 그렇다면 이 단백질을 신경세포에 넣어 주면, 빛만 비춰서 신경세포를 켤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신경세포에 빛 스위치를 달다

2005년 정신과 의사이자 뇌 과학자인 다이서로스 교수 연구팀이 나겔 교수와 힘을 합쳐 이 생각을 실제로 해냈습니다. 채널로돕신 유전자를 쥐의 신경세포에 넣었더니, 파란빛을 비출 때마다 신경세포가 1000분의 1초 단위로 정확하게 전기 신호를 냈습니다. 빛을 끄면 신호도 바로 멈췄지요. 전등 스위치를 올리고 내리듯 신경세포도 켜고 끌 수 있게 된 것입니다. 다이서로스 교수는 이 기술에 '광유전학'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살아 움직이는 동물의 뇌에서도 쓸 수 있도록 방법을 다듬었습니다. 해롭지 않게 만든 바이러스에 실어 유전자를 전달하는데, 이때 특정 종류의 세포에서만 단백질이 만들어지도록 설계할 수 있습니다. 여기에 머리카락보다 가는 광섬유로 빛을 보내면, 수많은 세포 중 원하는 세포만 콕 집어 조절할 수 있는 겁니다.

이 기술이 왜 대단할까요? 예전에는 전극으로 전기를 흘려 신경세포를 자극했지만 전기는 주변 세포까지 한꺼번에 자극해 버려서 어떤 세포가 어떤 역할을 하는지 가려내기 어려웠습니다. 하지만 광유전학은 원하는 세포만 원하는 순간에 켜고 끌 수 있습니다. 실제로 쥐의 운동을 담당하는 뇌 부위에 파란빛을 비추면 쥐가 한쪽으로 빙글빙글 돌기 시작하고, 빛을 끄면 멈춥니다. 마치 리모컨으로 조종하는 것처럼 보이지요. 뇌라는 거대한 기계의 부품을 하나씩 켜 보며 무슨 일을 하는지 알아내는 셈입니다.

기억을 만들고 시력을 회복하고

광유전학은 전 세계 수천 개 연구실로 퍼져 뇌 과학의 비밀을 풀 수 있는 필수 도구가 됐습니다. 우리나라 연구자들도 이 기술로 기억과 감정의 비밀을 밝히는 연구에 활발히 참여하고 있어요. 과학자들은 쥐의 기억 세포에 빛을 비춰 겪지 않은 일을 기억하게 만드는 실험에 성공했고, 배고픔이나 두려움, 잠들고 깨는 것을 조절하는 신경세포가 어디에 있는지도 하나씩 밝혀냈습니다. 파킨슨병처럼 몸이 떨리는 병, 발작을 일으키는 뇌전증, 수면 장애가 어떤 신경 회로의 문제인지 밝히고, 새로 개발한 약이 어떤 세포에 작용하는지 확인하는 데도 쓰입니다.

사람을 치료한 사례도 나왔습니다. 2021년 프랑스 연구팀은 40년 전 망막색소변성증이라는 눈병 진단을 받고 시력을 잃은 환자의 눈에 빛 감지 단백질 유전자를 넣었습니다. 빛을 쏘아 주는 특수 안경을 쓰고 훈련하자, 환자는 책상 위에 놓인 공책과 컵을 찾아 집고 건널목의 흰 줄무늬를 셀 수 있게 됐습니다. 녹조류의 단백질이 사람의 눈을 다시 뜨게 한 셈입니다.

빛 스위치는 신경세포에만 쓰이는 것이 아닙니다. 생쥐의 심장 세포에 넣으면 빛으로 심장이 뛰는 박자를 조절할 수 있어요. 이를 바탕으로 미래의 '빛 심장 박동기' 연구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또 언젠가는 우울증이나 치매, 만성 통증 같은 병을 뇌의 특정 회로만 골라 조절해 치료하는 날이 올지도 모릅니다.

김준기 서울아산병원 융합의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