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뉴스 속 신화] 불화의 여신 '에리스' 등장한 뒤, 명왕성 행성 지위 잃었죠

입력 : 2026.10.19 03:30

신의 이름을 딴 행성

최근 캐나다 시인 앤 카슨이 2026년 노벨 문학상을 받았어요. 매년 노벨 문학상 결과가 발표되면 수상 작가의 작품이 서점에서 큰 인기를 끌곤 하죠. 그런데 카슨의 많은 작품이 주로 그리스 신화를 소재로 만들어졌다는 사실, 알고 계셨나요? 가령 '녹스'라는 책 제목은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밤의 여신인 '닉스'의 로마식 이름입니다.

그리스 신화는 로마로 유입되면서 내용은 그대로인 채 신이나 주인공 이름만 달라졌어요. 또한 그리스 신의 로마식 이름에서 영어식 이름이 나왔으니 그리스 신의 이름은 두 개가 더 있는 셈이에요. 오늘은 신들의 이름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태양계 행성과 주요 왜행성의 이름.
▲ 태양계 행성과 주요 왜행성의 이름.
밝고 아름다운 금성은 비너스

신들의 왕 제우스의 로마와 영어식 이름은 각각 유피테르와 주피터고, 바다의 신 포세이돈은 넵투누스와 넵튠이에요. 결혼과 가정의 여신 헤라는 유노와 주노이고, 곡물의 여신 데메테르는 케레스와 시어리즈예요. 전령의 신 헤르메스는 메르쿠리우스와 머큐리이고,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는 베누스와 비너스예요.

특히 그리스 신들의 영어식 이름은 태양계 행성 이름으로 쓰여요. 가령 수성은 태양 주위를 가장 빠르게 돌기 때문에 날개 달린 전령의 신인 머큐리의 이름을 땄고, 금성은 밤하늘에서 가장 밝고 아름답게 빛나기 때문에 미의 여신 비너스입니다. 지구를 상징하는 말로는 대지의 여신 가이아가 있죠. 화성은 표면의 산화철로 붉은색을 띠어 피로 물든 전쟁터를 연상시키기 때문에 전쟁의 신 마르스, 행성 중 가장 큰 목성은 신들의 왕 주피터, 토성은 흙의 기운이 강한 것으로 알려졌기 때문에 농업의 신 새턴이에요. 또한 천왕성은 토성인 새턴 위쪽에 있어 그의 아버지인 하늘의 신 유러너스, 해왕성은 바닷물 색깔처럼 푸른빛을 띠기 때문에 바다의 신 넵튠입니다. 명왕성은 태양에서 멀고 음침한 곳에 있기 때문에 지하 세계의 신 하데스의 영어식 이름인 플루토예요.

1997년 미국의 화성(마르스) 무인 탐사선 '마르스 패스파인더'가 착륙한 곳은 '아레스의 협곡'으로 불렸어요. 아레스가 마르스의 그리스식 이름입니다. 화성은 또한 각각 '근심'과 '공포'를 뜻하는 '데이모스'와 '포보스'라는 두 위성을 갖고 있는데, 그들은 아프로디테가 아레스와의 사이에서 낳은 아들이에요. '공포증'이라는 뜻의 영어 '포비아(phobia)'는 바로 포보스에서 유래했어요. 가령 고소공포증은 영어로 '아크로포비아(acrophobia)'라고 해요.

제우스가 아내 메티스를 삼킨 뒤 제우스의 쪼개진 머리에서 지혜와 전쟁의 여신 아테나가 태어나는 장면을 담은 그림입니다. 프랑스 화가 르네 앙투안 우아스(1645~1710)가 그렸어요. 현재 목성은 주피터(제우스)라고 부르고, 메티스는 목성의 한 위성 이름입니다.
▲ 제우스가 아내 메티스를 삼킨 뒤 제우스의 쪼개진 머리에서 지혜와 전쟁의 여신 아테나가 태어나는 장면을 담은 그림입니다. 프랑스 화가 르네 앙투안 우아스(1645~1710)가 그렸어요. 현재 목성은 주피터(제우스)라고 부르고, 메티스는 목성의 한 위성 이름입니다.
목성의 위성, 제우스 주변 인물 이름

목성(주피터)은 여러 위성을 갖고 있어요. 모두 주피터(제우스)와 밀접한 관계가 있는 신이나 인물의 이름을 땄어요. 메티스, 칼리스토, 유로파 등입니다. 메티스는 지혜의 여신으로 제우스에게 아버지 크로노스의 뱃속에 갇혀 있던 형제자매들을 게워 내는 약을 만들어줬어요. 제우스는 그에 대한 보답으로 그녀를 왕비로 삼으려 했어요. 하지만 메티스와의 사이에서 태어나는 아이가 첫째는 딸이라서 괜찮지만, 둘째인 아들이 나중에 아버지의 권력을 찬탈할 거라는 예언을 듣고 메티스를 조그맣게 만들어서 집어삼켜 버려요.

그런데 열 달 후 제우스는 갑자기 머리가 깨질 듯 아파요. 결국 고통을 참다 못해 제우스는 아들 헤파이스토스에게 대장간에서 도끼를 가져와 머리를 치라고 명령해요. 그러자 그의 쪼개진 머리에서 지혜와 전쟁의 여신 아테나가 태어나요.

칼리스토는 숲의 요정으로 제우스의 연인인데 질투의 화신 헤라가 곰으로 변신시켜 버려요. 유로파는 제우스가 황소로 변신해 크레타섬으로 납치한 페니키아의 아름다운 공주로 그리스식 이름은 에우로페예요.

기원전 제작된 한 술잔에 그려진 불화의 여신 에리스. 명왕성 너머 왜행성이 발견된 뒤 에리스라는 이름이 붙었습니다. /위키미디어 커먼스
▲ 기원전 제작된 한 술잔에 그려진 불화의 여신 에리스. 명왕성 너머 왜행성이 발견된 뒤 에리스라는 이름이 붙었습니다. /위키미디어 커먼스
불화의 여신 '에리스'

에리스는 트로이 전쟁의 불씨를 지핀 불화의 여신이에요. 하루는 신들이 모인 성대한 결혼식이 열렸는데, 에리스 혼자 초청을 받지 못했어요. 화가 잔뜩 난 에리스는 '가장 아름다운 여신에게'라는 글귀가 적힌 황금 사과를 결혼식장에 던졌습니다. 그러자 헤라, 아테나, 아프로디테 세 여신이 서로 사과를 갖겠다며 다퉜습니다. 누가 아름다운지 결정하는 일은 트로이의 왕자 파리스에게 맡겨졌고, 파리스는 아름다운 아내를 주겠다고 약속한 아프로디테를 선택했죠. 그런데 그 아름다운 여인이 스파르타 왕의 아내였던 헬레네였고, 파리스가 헬레네를 트로이로 데려간 일이 계기가 되어 트로이 전쟁이 벌어지게 됩니다.

지구를 기준으로 명왕성 뒤에 있고 크기가 비슷한 것이 에리스입니다. 에리스는 원래 다른 이름으로 불렸다가 그것을 발견한 마이클 브라운 미국 캘리포니아 공대 교수의 제안으로 이름이 바뀌었어요. 에리스는 이름에 걸맞게 천문학계에 유례없이 격렬한 행성 논쟁을 불러일으켰는데요. '명왕성이 행성이라면 에리스도 행성이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 거예요. 결국 2006년 명왕성이 76년 동안 누려온 행성의 지위를 잃고 '왜(矮)행성'으로 분류됐어요. 여기서 '왜(矮)'는 '난쟁이'라는 뜻이에요. 브라운 교수는 에리스를 두고 "명왕성이 행성이냐 아니냐를 놓고 천문학자들 간에 불화가 빚어진 지금 상황에 딱 어울리는 이름"이라고 주장했어요.

토성 위성에 생명체?

행성 중 토성(새턴)이 가장 많은 위성을 갖고 있습니다. 현재까지 알려진 것만 총 293개예요. 그중 큰 위성은 대부분 그리스 신화에서 따왔어요. 새턴(크로노스)은 티탄 신족의 왕인데, 토성의 가장 큰 위성이 티탄의 영어식 이름인 '타이탄'이에요.

2023년에는 토성의 위성 엔셀라두스에서 약 1만㎞까지 뻗어 나간 거대한 수증기 기둥이 관측됐다는 연구 결과가 발표됐어요. 엔셀라두스는 그리스 신화의 기간테스 거인족 24명 중 하나인 엥켈라도스의 영어식 이름이에요. 물 성분을 분석해 엔셀라두스에 생명체가 존재할 가능성이 있다는 내용을 다룬 논문이 나오기도 했죠. 유럽우주국은 2040년대에 엔셀라두스로 탐사선을 발사할 계획입니다.

김원익 전 홍익대 문과대학 교수·사단법인 세계신화연구소장 기획·구성=김민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