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숨어있는 세계사] '제2 수도' 만들겠다는 日… 남아공 수도가 3개인 까닭은?

입력 : 2026.10.14 03:30

수도

일본 정부가 대규모 재해로 수도 도쿄의 주요 기능이 마비될 경우를 대비해 '부수도(副首都•제2 수도)' 지정을 추진 중이라 해요. 후보로는 삿포로·나고야·오사카·후쿠오카 등이 거론되고 있습니다. 한곳에 집중된 권력은 효율적이지만 수도가 마비되면 국가 전체가 흔들릴 수 있어요. 반대로 수도를 여러 곳에 두거나 정부 기능을 분산하면 지역 간 균형을 도모할 수 있지만 행정의 비효율이라는 대가도 따르지요. 수도는 국가의 권력과 행정·경제가 집중되는 곳이기 때문에 수도 선정은 국가적 중대사이고 그 과정에서 다양한 세력의 충돌이 있기도 합니다. 세계사에선 수도의 위치와 역할을 둘러싼 고민이 여럿 있었습니다. 어떤 일들이 있었을까요?

[숨어있는 세계사] '제2 수도' 만들겠다는 日… 남아공 수도가 3개인 까닭은?
세 개의 수도를 가진 남아공

대표적으로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수도가 어디냐'는 질문이 나오면, 한 도시만 답하기가 어렵습니다. 행정 수도는 프리토리아, 입법 수도는 케이프타운, 사법 수도는 블룸폰테인으로 나뉘어 있기 때문이죠. 대통령과 정부의 주요 행정기관은 프리토리아에 있고 의회는 케이프타운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블룸폰테인에는 대법원 체계의 주요 기관인 항소법원이 있지요.

세 개의 수도가 지정된 배경에는 남아프리카의 복잡한 식민지 역사와 정치적 갈등이 있었습니다. 남부 아프리카에서는 네덜란드계 정착민의 후손인 보어인들이 세운 트란스발 공화국, 오렌지 자유국 등의 공화국들과 영국의 식민 세력이 오랫동안 대립했습니다. 특히 남아프리카 지역의 귀금속 채굴권을 둘러싸고 영국과 보어 공화국들 사이에서 제2차 보어전쟁(1899~1902)이 발발했는데요. 전쟁이 끝난 뒤 영국의 지배 아래 있던 여러 식민지와 공화국을 하나의 정치 체제로 통합하는 과정에서 어느 지역을 수도로 삼을 것인지가 중요한 문제로 떠올랐습니다. 1910년 출범한 남아프리카연방은 이러한 지역적 이해관계를 조정한 결과물이었어요. 케이프, 나탈, 트란스발, 오렌지 자유국이 하나의 연방으로 통합됐지만 새로 형성된 연방은 어느 한 도시나 그와 연관된 정치 세력에 지나치게 많은 권력을 부여하는 대신 정부 기능을 세 지역으로 나누어 각 지역에 몫을 배분하는 타협안을 마련했답니다. 영국의 내륙 진출 거점이었던 케이프타운은 의회를, 트란스발 공화국의 수도였던 프리토리아는 행정부를 맡았으며 오렌지 자유국의 중심 도시였던 블룸폰테인은 사법 기능을 담당하게 됐습니다. 각 지역의 역사와 정치적 위상, 기존 행정기관의 위치 등을 복합적으로 판단한 결과입니다.

[숨어있는 세계사] '제2 수도' 만들겠다는 日… 남아공 수도가 3개인 까닭은?
볼리비아 연방 전쟁(1898~1899)에 참가한 농민군입니다. 이들은 자유파 편에 서서 보수파에 대항했어요. /위키미디어 커먼스
▲ 볼리비아 연방 전쟁(1898~1899)에 참가한 농민군입니다. 이들은 자유파 편에 서서 보수파에 대항했어요. /위키미디어 커먼스
수도를 둘러싸고 전쟁까지

수도를 둘러싼 갈등이 내전으로 번진 경우도 있습니다. 남미 국가인 볼리비아의 경우, 헌법상 수도는 수크레입니다. 그러나 대통령과 정부의 주요 기관이 위치한 실질적인 행정 중심지는 라파스입니다. 왜 헌법상의 수도와 정부 소재지가 다를까요? 볼리비아는 1825년 스페인에서 독립한 뒤에도 지역별 이해관계와 정치 세력의 경쟁을 겪었습니다. 독립 지도자 안토니오 호세 데 수크레의 이름을 딴 남부의 수크레는 독립 초기부터 수도로서의 위상을 지녔는데요. 이 도시는 16세기 중반 스페인 정복자들이 건설했어요. 수크레가 발전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은'이었습니다. 수크레는 남쪽으로 160㎞ 떨어진 포토시 은광을 관리하는 스페인 식민 권력의 중심지였거든요. 그런데 19세기 말 은이 점차 고갈됐고, 대신 안데스 산맥 주변의 주석 채굴이 활발해져요. 이후 라파스가 북부의 중요한 경제·정치 중심지로 성장했습니다. 라파스에 기반을 둔 자유주의자들은 당시 수도였던 수크레와 포토시에서 강세를 보였던 보수주의자들과 대립했습니다. 두 도시의 대립은 단순히 어느 도시가 더 크고 부유한가의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국가의 권력을 누가 행사할 것인지, 중앙집권 체제를 유지할 것인지, 국가 권력을 중앙정부와 지방정부로 동등하게 나누는 연방제에 가까운 체제로 바꿀 것인지가 얽힌 문제였습니다. 보수파는 단일 국가를, 자유파는 연방 국가를 원했어요.

그러던 중 1898년 대통령을 비롯한 행정부의 업무는 수크레에서 진행돼야 한다는 내용의 법이 제정되며 갈등이 격화됐습니다. 라파스의 의원들은 중립적인 도시로 수도를 이전할 것을 제안했으나 정부는 이를 거부했죠. 라파스의 자유당 세력은 이를 자신들을 억누르는 조치로 받아들였고 정부와 대립했습니다. 결국 1898년부터 1899년까지 이른바 연방전쟁이 일어났습니다. 결과는 자유당의 승리였습니다. 다만 추가 갈등을 피하기 위해 수크레의 공식 수도 지위를 없애진 않았습니다. 헌법상의 수도는 그대로 남았지만 대통령과 정부의 중심은 라파스로 옮겨갔습니다.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이중적인 수도 구조가 형성된 것입니다.

[숨어있는 세계사] '제2 수도' 만들겠다는 日… 남아공 수도가 3개인 까닭은?
호주 수도 이름, '유토피아'도 후보였다

'호주의 수도가 어디냐'고 물으면 시드니를 떠올리는 사람이 많습니다. 하지만 호주의 수도는 시드니가 아니라 캔버라랍니다. 그 탄생 배경에는 시드니와 멜버른의 치열한 경쟁이 있었어요. 1901년 호주에서는 여섯 개의 영국 식민지가 연합해 호주 연방이 출범했습니다. 새 수도를 정해야 했는데, 당시 가장 영향력이 컸던 두 도시는 시드니와 멜버른이었습니다. 두 도시 모두 경제와 인구, 역사적 위상을 내세우며 수도가 되기를 원했습니다. 그러나 한쪽을 선택하면 다른 쪽이 반발할 수밖에 없었어요. 결국 호주 연방은 새로운 수도를 건설하는 절충안을 택했습니다. 호주 헌법에는 수도를 시드니가 있는 뉴사우스웨일스주 안에 두되 시드니에서 최소 100마일(약 160㎞) 떨어진 곳에 설치한다는 조건이 담겼습니다. 새 수도가 완성될 때까지 연방의회는 멜버른에서 활동하기로 했고요.

여러 지역이 후보로 거론됐습니다. 1904년 달게티가 수도 예정지로 선정되기도 했지만, 논쟁이 계속되면서 계획은 다시 검토됐습니다. 그리고 1908년 호주 의회는 야스·캔버라 지역을 최종적으로 수도 건설지로 선정했습니다. 정부는 미래 수도의 이름을 대중에게 공모했고 750여 개가 제안됐어요. '유토피아' '부메랑 시티' '새로운 런던' 심지어 캥거루(Kangaroo)와 새 종류인 에뮤(Emu)를 합친 '캉가레무(Kangaremu)' 같은 엉뚱하고 다양한 후보가 나왔습니다. 여러 후보를 제치고 1913년 선정된 이름은 '캔버라'였습니다. 캔버라는 원주민어에서 유래한 단어인데요. '만남의 장소'라는 뜻일 거라 추측됩니다. 이후 1927년, 연방의회가 멜버른을 떠나 캔버라에서 처음 회의를 열었습니다.
윤서원 서울 단대부고 역사 교사 기획·구성=김민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