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클래식 따라잡기] 우리가 몰랐던 리코더의 세계… 3m짜리도 있대요
입력 : 2026.10.12 03:30
리코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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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난 2일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네덜란드의 르네상스 리코더 전문 연주 단체 '로열윈드뮤직앙상블'이 공연하고 있습니다. 연주자들은 소프라니노(가장 왼쪽), 소프라노(왼쪽에서 둘째) 등 작은 리코더부터 서브콘트라베이스(가장 오른쪽) 등 다양한 크기의 리코더를 연주했어요. /제이에스바흐
국민 관악기... 사실 굉장히 다양해요
‘리코더(Recorder)’는 세로로 부는 나무 관악기입니다. 오리 부리를 닮은 취구(입김을 넣는 구멍)와 앞면에 일곱 개, 뒷면에 한 개, 모두 여덟 개의 구멍(지공)을 손가락으로 막거나 떼면서 연주해요. 한국인에게 리코더는 무척 친숙하죠. 초등학교 수업 시간에 연주법을 배워서 친구들과 불던 추억을 가지고 있으니까요. 전국 가정 보급률 1위 악기인 동시에 다룰 줄 아는 악기가 하나쯤 있다는 자부심의 근원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이러한 친숙함 때문에 리코더의 예술성이 과소평가되는 면도 있죠.
우리가 초등학교 때 배우는 리코더는 약 32㎝인 소프라노 리코더입니다. 선율 연주에 적합해서 가장 널리 쓰여요. 리코더에는 음역에 따라 여덟 가지가 넘는 다양한 악기가 존재합니다. 악기가 작을수록 고음, 클수록 저음이 나요. 예를 들어 길이 15㎝ 안팎의 가장 작은 ‘클라이네 소프라니노’는 날카롭고 맑은 새소리를 내죠. 반면 길이 2m가 넘는 ‘콘트라베이스 리코더’나 3m에 이르는 ‘서브콘트라베이스 리코더’는 오르간처럼 낮고 푸근한 울림을 들려줍니다. 이런 대형 저음 리코더는 무게가 상당해서 바닥에 금속 지지 핀을 대거나 도넛 형태의 받침대에 받치고 연주합니다. 고음과 저음 사이에는 감미로운 중저음을 자랑하는 알토 리코더와 테너 리코더가 있죠. 이렇게 음역이 달라지면 손가락을 쓰는 방법인 운지법과 호흡이 달라지기도 합니다.
사라졌다가 부활한 악기
음악사에서 리코더가 처음 등장한 건 14세기 중세 시대로, 그 역사가 대단히 깁니다. 들판에서 양을 치는 목동의 노래와 바람 소리를 닮은 맑고 자연스러운 소리로 오래 사랑받았죠. 리코더는 르네상스 시대를 거쳐 바로크 시대(17~18세기)에 이르러 전성기를 누렸습니다. 당시 악보에 ‘플루트(Flauto)’라고 적혀 있다면, 그건 지금 우리가 흔히 아는 가로로 부는 플루트가 아니라 리코더를 가리키는 거였을 정도니까요. 나라마다 이름이 달랐는데, 이탈리아에서는 ‘부드러운 음색의 피리’란 뜻의 ‘플라우토 돌체(Flauto dolce)’, 독일에서는 ‘마개가 달린 피리’라는 뜻의 ‘블록플뢰테(Blockflöte)’로 불렸습니다. 그러나 19세기로 접어들며 오케스트라의 규모와 공연장이 커지자, 상대적으로 음량이 작은 리코더는 점차 무대에서 밀려나 자취를 감췄죠.
그렇게 100년이 넘게 잊혔던 리코더는 20세기 초, 영국에서 고음악 운동을 일으킨 음악가 아널드 돌메치에 의해 화려하게 되살아났습니다. 리코더는 운지가 쉽고 소리 내기가 편해 교육용 악기로 주목받으면서, 우리나라와 일본, 그리고 네덜란드 등 유럽 여러 나라에서는 리코더로 어린 학생들의 음악 교육을 시작했어요.
500년에 걸친 연주곡목
긴 역사만큼 리코더는 방대한 연주곡목을 자랑합니다. 16세기 르네상스 시대에는 인기 유행가의 선율로 만든 기악곡이나 미사곡, 다채로운 춤곡을 여러 음역의 리코더가 함께 연주하는 ‘콘소트(consort)’ 형태가 유행했어요. 전성기였던 바로크 시대에는 텔레만과 비발디가 독주 리코더를 위해 쓴 소나타와 협주곡이 사랑받았죠. 특히 화려한 고음과 속주를 뽐내는 비발디의 ‘리코더 협주곡 C장조 RV 443’ 같은 작품은 리코더의 매력을 잘 드러내는 대표작으로 꼽힙니다.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 역시 리코더를 적극 활용했는데, 불후의 명작인 ‘브란덴부르크 협주곡’ 2번과 4번에서 리코더를 독주 악기로 편성해 독보적인 존재감을 보여줬어요. 이후 잠시 잊혔던 리코더는 20세기에 들어와 다시 비상했습니다. 파울 힌데미트, 루치아노 베리오, 윤이상 같은 현대 작곡가들의 실험적인 작품과, 프란스 브뤼헌, 미칼라 페트리 같은 뛰어난 연주자들의 활약 덕분이었죠.
‘바로크식’과 ‘독일식’ 리코더 구분하기
초등학생들은 저렴한 플라스틱 리코더를 주로 쓰지만, 전문 연주자들은 맑고 청아한 울림을 지닌 고가의 나무 리코더로 연주합니다. 단풍나무, 올리브나무 등으로 제작되는데, 습기와 직사광선에 약하고 온도 변화에도 매우 민감해요. 혹시 한겨울에 공연을 앞둔 연주자가 리코더를 품에 안고 있는 모습을 본다면, 이는 관을 체온으로 덥혀서 정확한 음정을 내기 위함이죠. 또한 목재의 균열을 막기 위해 부드러운 천으로 감싸 전용 케이스에 보관하며, 정기적으로 아몬드 오일을 발라 관리합니다. 세심한 손길이 필요한 악기예요.
요즘은 초등학교 준비물 안내문에 ‘독일식’과 ‘바로크식’을 지정해 주는 경우가 많습니다. 리코더 뒷면에 알파벳 ‘B’가 적혀 있다면 바로크식, ‘G’가 적혀 있다면 독일식입니다. 두 방식의 차이점은 계이름 ‘파’를 내는 운지법입니다. 바로크식이 원조인데, 앞면 지공을 위에서부터 4개를 막은 뒤 구멍 하나는 건너뛰고, 그 아래 구멍 두 개도 함께 막습니다. ‘포크 운지’라고 하는데, 이렇게 내는 ‘파’는 음정이 정확해요. 그런데 아이들에게 좀 어렵죠. 그래서 20세기 초반 독일에서 개량한 것이 독일식 리코더입니다. 그냥 앞면 위에서부터 지공 4개를 막기만 하면 ‘파’ 소리가 납니다. 배우기는 쉽지만 음정의 정확도는 떨어진다는 단점이 있어서 전문 연주자들은 거의 사용하지 않아요. 여러분의 리코더, 바로크식이었나요? 독일식이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