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숨어있는 세계사] 코끼리로 기독교·이슬람 화합, 판다로 이념 벽 넘었죠

입력 : 2026.10.07 03:30

동물 외교

최근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이 미국을 방문한 직후, 자이언트 판다 1쌍이 미국 애틀랜타에 도착했어요. 이를 중국의 '판다 외교'라고 부릅니다. 1941년 중국 국민당 지도자 장제스의 부인 쑹메이링이 미국에 판다를 선물했고, 1972년 닉슨 미국 대통령의 방중 이후엔 워싱턴 국립동물원에 판다 1쌍이 보내졌습니다. 특히 1972년 판다 외교는 자유국가 진영과 공산국가 진영 간 냉전 상황에서 이념 대립을 완화하고 중국이 새로운 교류를 시작한 미국과 우호 관계를 강화하고자 택한 외교 방식이었답니다.

1980년대부터 중국은 무상 증여 대신 장기 대여 방식으로 전환해 판다를 보내고 있어요. 그런데 양국 관계가 악화할 경우, 보낸 판다와 그 국가에서 태어난 새끼를 계약 연장 없이 귀환시키기도 해요. 실제로 미국과 중국의 갈등이 고조되던 2023년 워싱턴 국립동물원의 판다 가족이 중국으로 돌아갔고, 이듬해 애틀랜타 동물원에 살던 판다 4마리도 25년간 이어졌던 대여 계약이 종료되며 미국을 떠났어요. 이번에 애틀랜타에 판다가 돌아온 건 달라진 미중 관계의 분위기를 보여주는 상징으로 읽히고 있어요. 세계 역사에서는 판다 이외에도 외교 목적으로 활용된 동물이 여럿 있었습니다. 오늘은 그 사례에 대해 알아보도록 할게요.

미국 애틀랜타 동물원에 있던 판다입니다. 대여 계약 종료로 미국을 떠났다가, 최근 판다 1쌍이 다시 애틀랜타에 도착했대요.
▲ 미국 애틀랜타 동물원에 있던 판다입니다. 대여 계약 종료로 미국을 떠났다가, 최근 판다 1쌍이 다시 애틀랜타에 도착했대요.
기독교·이슬람이 손잡은 '코끼리 외교'

첫 번째 주인공은 코끼리예요. 서기 800년, 서유럽 프랑크 왕국의 왕 샤를마뉴 대제(카를 대제)는 교황 레오 3세에게 황제의 관을 받으며 서로마 제국의 정통성을 부활시켰어요. 기독교를 널리 알리는 데 앞장섰죠. 같은 시기 이슬람 세계에서는 아바스 왕조의 칼리프(지도자) 하룬 알라시드가 바그다드를 다스리고 있었죠. 기독교와 이슬람교 두 종교는 적대 관계에 있었지만, 두 지배자에게는 공통의 고충이 있었습니다. 샤를마뉴는 자신을 위협하는 비잔티움(동로마) 제국이 신경 쓰였고, 하룬 알라시드 역시 비잔티움 제국과 이베리아반도의 후우마이야 왕조를 견제할 우군이 필요했어요. 아바스 왕조는 우마이야 왕조를 몰아내고 정통 이슬람을 내세우고 있었는데, 축출된 옛 왕조의 잔당이 세운 왕조가 후우마이야였거든요. '적의 적은 나의 친구'라는 말이 있듯, 이런 상황에서 샤를마뉴와 하룬 알라시드는 서로 손을 잡았답니다.

샤를마뉴는 사절단을 바그다드로 보냈고 하룬은 그 답례로 샤를마뉴에게 희귀한 선물을 보냈어요. 바로 인도에서 왔다고 전해지는 거대한 코끼리 '아불 아바스'였습니다. 코끼리는 801년 10월 이탈리아 북서부에 상륙해 겨울을 나고 알프스산맥을 넘어 802년 7월, 샤를마뉴의 궁정이 있는 아헨에 도착했어요. 코끼리는 샤를마뉴의 궁정에서 극진한 대접을 받으며 황제의 권위를 상징하는 존재가 됐습니다. 샤를마뉴는 이 코끼리를 아끼며 주요 전투와 국가 행사에 동행시켰다고도 전해져요. '코끼리 외교'는 기독교와 이슬람이라는 거대한 종교가 벽을 넘어 국익과 평화를 위해 손을 잡은 사례라고 볼 수 있어요.

15세기 중국 명나라의 환관 정화의 함대가 태우고 온 기린을 그린 그림입니다.
▲ 15세기 중국 명나라의 환관 정화의 함대가 태우고 온 기린을 그린 그림입니다.
기린, 황제 정통성 확립의 도구

다음 주인공은 기린이에요. 15세기 초, 명나라의 3대 황제 영락제는 조카였던 건문제를 몰아내고 황제 자리에 올랐어요. 정통성이 약점이던 그는 자신의 즉위가 하늘의 뜻임을 내세울 명분이 필요했어요. 이를 위해 추진한 대규모 사업 중 하나가 환관 정화가 이끈 대원정이었죠. 정화 일행은 1405년부터 1433년까지 일곱 차례 함대를 이끌고 동남아시아, 인도, 페르시아만, 동아프리카까지 항해했어요. 항해의 목적은 정복이 아니라 명나라의 위세를 알리고 여러 나라와 조공 관계를 맺는 것이었습니다. 정화의 함대는 콜럼버스의 함대보다 규모가 압도적으로 컸다고 해요. 웅장한 정화 함대에 여러 나라가 선물을 건넸는데, 그중에는 아프리카산 기린도 있었습니다. 정화의 함대가 기린을 태우고 명나라 수도에 도착하자 조정은 완전히 흥분 상태가 됐어요. 중국의 신화 속에는 성군이 나타나 세상이 태평성대를 이룰 때만 출현한다는 신성한 영물이 있었는데 신비로운 외형과 명칭의 유사성이 신화 속 기린을 연상시킨 것이죠. 영락제는 기린을 궁궐 마당에 세워두고 모든 신하에게 절을 올리게 했어요. 신하들은 앞다퉈 축하 글을 올렸고, 궁정 화가 심도는 기린을 그린 그림을 남기기도 했죠. 동물이 황제의 정치적 정통성을 확립하는 도구로 활용된 사례랍니다.

2014년 오바마 당시 미국 대통령이 호주에서 열린 G20 정상회의에서 코알라를 안으며 웃고 있습니다. /위키미디어 커먼스·백악관
▲ 2014년 오바마 당시 미국 대통령이 호주에서 열린 G20 정상회의에서 코알라를 안으며 웃고 있습니다. /위키미디어 커먼스·백악관
우호의 상징, 코알라

현대 국제 정치 무대에서 동물 외교는 무력이나 권력을 과시하는 수단에서 벗어나 상대방의 마음을 사로잡는 '소프트 파워'로 주목받고 있어요. 다음으로 살펴볼 동물은 호주의 마스코트인 코알라예요. 호주 정부는 코알라를 우호 관계를 맺은 나라의 동물원에 '대여' 형태로 보내요. 1984년 호주가 일본에 코알라를 보냈는데 당시 동물원에 코알라를 보려고 인파가 몰리는 등 일본 내에서 코알라 신드롬이 일어났어요. 또 2014년 호주 브리즈번에서 열린 G20 정상회의에서 호주 정부는 회담장 한쪽에 코알라 체험 공간을 마련하고 세계 각국 정상들의 품에 코알라를 안겨주는 행사를 진행했어요. 당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크림반도 강제 합병 등으로 세계 정세는 얼어붙어 있었는데, 각국 정상들이 코알라를 안아 들고 사진을 찍을 때만큼은 굳어 있는 표정을 풀고 환하게 미소 지었죠.

그런데 한편에서는 코알라를 외교 도구로 삼는 걸 문제로 보기도 해요. 코알라는 스트레스에 취약해서 호주 일부 주에서는 관광객이 코알라를 안는 것을 제한하거나 금지하고 있기도 하거든요. 동물의 귀여운 이미지를 외교에 활용하더라도 동물 복지 문제를 간과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서민영 경기 군서고 역사 교사 기획·구성=김민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