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숨어있는 세계사] '파리서 가장 아름다운 별장'… 佛 역사 굴곡 함께했어요
입력 : 2026.09.23 03:30
엘리제궁
최근 프랑스를 국빈 방문한 이재명 대통령이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가졌습니다. 두 정상은 인공지능(AI)과 우주 등 첨단 분야에서 협력을 확대하기로 했습니다. 한국과 프랑스가 외교 관계를 맺은 지 140주년이 되는 해에 열린 회담이라는 점에서도 의미가 컸답니다.
회담이 열린 곳은 파리의 '엘리제궁'이었어요. 이곳은 프랑스 대통령이 업무를 보는 공간입니다. 우리나라의 청와대나 미국의 백악관에 해당하지요. 하지만 처음부터 대통령궁으로 지어진 건물은 아닙니다. 귀족의 호화로운 저택으로 출발해 시민들의 유원지가 되기도 했어요. 이곳은 프랑스 역사의 흐름을 바꾼 수많은 중요한 정치적 사건의 현장이기도 했답니다. 오늘은 엘리제궁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루이15세 연인 퐁파두르 후작 부인의 저택
엘리제궁의 역사는 1718년 귀족이자 군인인 에브뢰 백작이 파리 서쪽의 땅을 사들이면서 시작됐어요. 지금은 파리 중심부이지만 당시에는 숲과 오두막집이 드문드문 자리한 교외였습니다. 에브뢰 백작은 건축가 아르망클로드 몰레에게 자신의 신분을 과시할 만한 저택을 지어 달라고 했습니다. 공사는 1722년 마무리됐습니다. 당시 백과사전에는 이 건물을 '파리 주변에서 가장 아름다운 별장'이라고 기록했습니다.
백작이 세상을 떠난 1753년, 이 저택을 사들인 사람은 루이 15세의 연인이었던 퐁파두르 후작 부인이었어요. 그는 아름다운 외모뿐 아니라 뛰어난 교양과 정치적 영향력으로 유명했습니다. 학자, 예술가들을 후원했고 건축, 실내 장식의 유행에도 큰 영향을 미쳤어요. 퐁파두르 후작 부인은 저택 내부를 더욱 화려하게 꾸미고 샹젤리제 거리 방향으로 정원을 확장했습니다. 오늘날 엘리제궁에 '퐁파두르 살롱'이라는 이름의 방이 남아 있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퐁파두르 부인이 세상을 떠난 뒤 저택은 왕실 소유가 됐다가 여러 사람에게 넘어갔습니다. 1787년에는 루이 16세의 친척인 부르봉 공작 부인이 저택을 사들였는데, '엘리제 부르봉'이라고 불리기 시작했어요. 저택 가까이에 샹젤리제(Champs-Élysées) 거리가 있었기 때문이에요. '엘리제'는 그리스 신화에서 영웅과 선한 사람들이 죽은 뒤 머문다는 낙원, '엘리시온'에서 유래한 이름입니다. 샹젤리제는 '엘리시온의 들판'이라는 뜻이고요.
그러나 1789년 프랑스 혁명이 일어나자 왕족인 부르봉 공작 부인의 재산은 국가에 몰수됐습니다. 건물은 혁명 과정에서 압수한 가구를 보관하는 창고, 법령을 인쇄하는 시설 등으로 이용됐습니다. 1797년 저택을 돌려받은 공작 부인은 생활비가 부족해지자 정원을 임대했고, 이 정원은 곧 시민들에게 개방됐습니다. 사람들은 입장료를 내고 동굴과 폭포, 분수와 미로를 구경했으며 연회와 춤을 즐겼습니다. 귀족만을 위해 만든 폐쇄적인 저택이 혁명을 거치며 시민들의 오락 공간으로 바뀐 것이죠.
회담이 열린 곳은 파리의 '엘리제궁'이었어요. 이곳은 프랑스 대통령이 업무를 보는 공간입니다. 우리나라의 청와대나 미국의 백악관에 해당하지요. 하지만 처음부터 대통령궁으로 지어진 건물은 아닙니다. 귀족의 호화로운 저택으로 출발해 시민들의 유원지가 되기도 했어요. 이곳은 프랑스 역사의 흐름을 바꾼 수많은 중요한 정치적 사건의 현장이기도 했답니다. 오늘은 엘리제궁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루이15세 연인 퐁파두르 후작 부인의 저택
엘리제궁의 역사는 1718년 귀족이자 군인인 에브뢰 백작이 파리 서쪽의 땅을 사들이면서 시작됐어요. 지금은 파리 중심부이지만 당시에는 숲과 오두막집이 드문드문 자리한 교외였습니다. 에브뢰 백작은 건축가 아르망클로드 몰레에게 자신의 신분을 과시할 만한 저택을 지어 달라고 했습니다. 공사는 1722년 마무리됐습니다. 당시 백과사전에는 이 건물을 '파리 주변에서 가장 아름다운 별장'이라고 기록했습니다.
백작이 세상을 떠난 1753년, 이 저택을 사들인 사람은 루이 15세의 연인이었던 퐁파두르 후작 부인이었어요. 그는 아름다운 외모뿐 아니라 뛰어난 교양과 정치적 영향력으로 유명했습니다. 학자, 예술가들을 후원했고 건축, 실내 장식의 유행에도 큰 영향을 미쳤어요. 퐁파두르 후작 부인은 저택 내부를 더욱 화려하게 꾸미고 샹젤리제 거리 방향으로 정원을 확장했습니다. 오늘날 엘리제궁에 '퐁파두르 살롱'이라는 이름의 방이 남아 있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퐁파두르 부인이 세상을 떠난 뒤 저택은 왕실 소유가 됐다가 여러 사람에게 넘어갔습니다. 1787년에는 루이 16세의 친척인 부르봉 공작 부인이 저택을 사들였는데, '엘리제 부르봉'이라고 불리기 시작했어요. 저택 가까이에 샹젤리제(Champs-Élysées) 거리가 있었기 때문이에요. '엘리제'는 그리스 신화에서 영웅과 선한 사람들이 죽은 뒤 머문다는 낙원, '엘리시온'에서 유래한 이름입니다. 샹젤리제는 '엘리시온의 들판'이라는 뜻이고요.
그러나 1789년 프랑스 혁명이 일어나자 왕족인 부르봉 공작 부인의 재산은 국가에 몰수됐습니다. 건물은 혁명 과정에서 압수한 가구를 보관하는 창고, 법령을 인쇄하는 시설 등으로 이용됐습니다. 1797년 저택을 돌려받은 공작 부인은 생활비가 부족해지자 정원을 임대했고, 이 정원은 곧 시민들에게 개방됐습니다. 사람들은 입장료를 내고 동굴과 폭포, 분수와 미로를 구경했으며 연회와 춤을 즐겼습니다. 귀족만을 위해 만든 폐쇄적인 저택이 혁명을 거치며 시민들의 오락 공간으로 바뀐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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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일(현지 시각) 프랑스 파리 엘리제궁에서 열린 국빈 만찬에서 이재명 대통령과 김혜경 여사가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브리지트 마크롱 여사와 대화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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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외부에서 엘리제궁을 정면으로 바라본 모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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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루이 15세의 연인이었던 퐁파두르 후작 부인의 초상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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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63년 엘리제궁에서 프랑스와 독일이 양국 협력을 강화하는 조약을 체결하고 있습니다. /뉴시스·위키미디어 커먼스
1805년 나폴레옹의 여동생 카롤린 뮈라와 매제인 조아킴 뮈라가 이 저택을 구입했어요. 부부는 건물을 대대적으로 수리하고 웅장한 계단과 호화로운 방을 만들었습니다. 카롤린이 꾸민 방 중 하나는 은빛 장식 때문에 '은의 방'으로 불렸어요. 뮈라 부부는 1808년 나폴리의 왕과 왕비가 되자 프랑스에 있던 재산을 나폴레옹에게 넘겼습니다. 저택의 이름도 '엘리제 나폴레옹'으로 바뀌었지요.
이곳은 나폴레옹의 마지막 권력과 몰락을 함께 지켜봤습니다. 나폴레옹은 1814년 유럽 연합군에 패해 엘바섬으로 추방됐다가, 이듬해 탈출해 파리로 돌아와 다시 황제 자리에 올랐습니다. 이때부터 그가 다시 몰락할 때까지의 기간을 '백일천하'라고 부릅니다. 영국과 프로이센 등 유럽 국가들은 나폴레옹의 복귀를 인정하지 않았고, 다시 전쟁이 시작됩니다. 나폴레옹은 1815년 지금의 벨기에에서 벌어진 워털루 전투에서 연합군에 패했습니다. 결국 그는 엘리제궁의 은의 방에 놓인 작은 책상에서 두 번째 퇴위 문서에 서명했어요. 나폴레옹은 대서양의 외딴섬인 세인트헬레나로 유배돼 그곳에서 생을 마쳤습니다.
프랑스와 독일의 화해
엘리제궁은 오랫동안 전쟁을 벌였던 국가들이 화해와 협력을 약속한 역사적인 무대이기도 합니다. 프랑스와 독일은 유럽의 주도권과 국경 지대를 놓고 끊임없이 충돌했습니다. 프로이센·프랑스 전쟁(1870~1871)에서 프랑스가 패한 뒤 알자스·로렌을 독일에 빼앗겼습니다. 두 나라는 제1차 세계대전과 제2차 세계대전에서도 적으로 싸웠지요. 전쟁이 반복되는 동안 수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고 유럽 전역이 폐허가 됐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두 나라는 새로운 길을 선택했습니다. 1950년 프랑스 외무장관 로베르 쉬망은 전쟁에 필요한 석탄과 철강 생산을 프랑스, 독일(당시엔 서독) 등 유럽 국가들이 공동으로 관리하자고 제안했습니다. 이를 바탕으로 유럽석탄철강공동체가 만들어졌고 훗날 유럽연합으로 발전했습니다. 1962년에는 프랑스 대통령 샤를 드골과 서독 총리 콘라트 아데나워가 랭스 대성당에서 함께 미사에 참석했습니다. 랭스는 제1차 세계대전 독일군의 포격으로 크게 파괴됐던 곳입니다. 두 지도자가 그곳에 나란히 선 모습 자체가 화해의 상징이었답니다.
이러한 화해의 흐름 속에서 이듬해인 1963년 1월 22일 두 사람은 엘리제궁에서 '독일·프랑스 화해·협력 조약', 이른바 '엘리제 조약'에 서명했습니다. 조약에 따라 양국 정상과 외교·국방·교육 분야의 책임자들은 정기적으로 만나 정책을 협의하게 됐습니다. 청소년들이 상대국의 언어와 문화를 직접 경험하도록 청소년 교류 재단도 설립했습니다. 2019년 양국은 독일 서부 아헨에서 엘리제 조약의 정신을 다시 확인하고 협력을 강화하는 조약을 체결했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