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디자인·건축 이야기] 순교의 역사 품은 천주교 성지… '세계적 건축가' 페터 춤토어 작품 들어선대요

입력 : 2026.09.22 03:30

남양성모성지

전국에는 천주교 성지(聖地)가 총 188곳 있다고 해요. 성지는 신앙을 위해 목숨을 바쳐 순교한 지역이나 종교에서 신성시하는 장소를 말하는데요. 한국 최초의 사제인 김대건 신부가 태어난 충남 당진시 솔뫼성지, 대규모 천주교 박해 사건인 병인박해(1866~1871)로 수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은 서울 마포구 절두산 등이 특히 유명하죠.

천주교 성지 중에서는 건축계에서도 주목하는 곳이 여럿 있습니다. 신자들이 성지를 찾아 신앙을 다잡듯, 건축학도들도 성지를 방문해 건물과 주변을 보며 건축학적 가치를 생각하곤 한답니다.

대표적인 곳이 경기 화성시 남양읍의 남양성모성지입니다. 이곳은 병인박해 당시 무명 신자들의 순교지입니다. 야트막한 산으로 둘러싸여 있고 나무와 조경물이 정성껏 조성돼 있어요.

높이 솟은 두 탑이 인상적인 남양성모성지 대성당입니다. /남양성모성지 홈페이지 캡처
높이 솟은 두 탑이 인상적인 남양성모성지 대성당입니다. /남양성모성지 홈페이지 캡처
이곳에 가면 거대한 굴뚝이 서 있는 듯한 대성당을 만나게 됩니다. 2020년 완공된 이 대성당은 '벽돌의 마술사'라고도 불리는 세계적 권위의 건축가 마리오 보타가 설계했어요. 미국 샌프란시스코 현대미술관과 국내 강남 교보타워, 리움미술관 등이 그의 대표작입니다.

붉은 벽돌 수십만 장으로 지은 남양성모성지 대성당을 마주하면 50m 높이로 솟은 두 탑에 시선이 쏠립니다. 마치 두 탑이 성지 전체의 구심점처럼 느껴집니다. 탑 아래 건물 본체는 반 이상 땅속에 묻혀 있는데요. 이런 건물의 모습은 골짜기에 있는 성지 전체 풍경과 조화를 이루고 있습니다. 안에 들어가면 탑 사이의 기다란 창에서 들어오는 빛, 거북이 등처럼 거대한 내부 천장의 틈으로 들어오는 빛 등 자연광이 전체 공간을 은은히 비춥니다. 해의 움직임에 따라 빛이 들어오는 각도가 달라져 마치 살아 있는 빛을 마주하는 느낌이 듭니다.

내년 8월 한국에서 열리는 천주교 세계청년대회는 해외 참석자만 약 40만명으로 예상되는데요. 이들의 방문에 맞춰 두 곳이 완공을 서두르고 있습니다. 하나는 엔드리스 성요셉 예술원입니다. 휴식을 위한 등나무 그늘막이 있던 장소에 세워지는 이곳은 카페, 전시장, 그리고 무대와 객석을 자유롭게 바꿀 수 있는 극장 등을 포함한 복합 예술 공간이에요. '젊은 건축가상'을 받은 건축가 이동준이 설계했죠. 다른 하나는 건축가 승효상의 '순교자의 언덕'입니다. 천주교 순교자를 기리는 200m 길이의 터널식 공간이에요. 죽음을 성찰하고 순교의 의미를 되새기는 곳으로 조성 중입니다.

남양성모성지의 건물, 조경물을 총괄하는 기획자는 이곳의 이상각 신부인데요. 그는 자신이 은퇴하는 2028년 완공을 목표로 또 다른 건축물을 추진하고 있어요. 바로 차를 마시는 공간인 '티 채플'입니다. '건축계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프리츠커상을 받은 페터 춤토어가 설계했어요. 84개의 수직 나무 기둥과 그 위를 가로지르는 수평 목재로 이뤄지는 작은 건축물로, 도시 생활에 지친 현대인들이 안정을 얻을 수 있도록 전기, 인공 조명, 기계 장치가 전혀 없는 공간으로 추진 중이래요. 티 채플 작업 논의는 오래전부터 있었지만 자금 문제로 미뤄지고 있었는데요. 올해 초 KCC정보통신 이주용 명예회장 부부가 건립비 100억원을 기부하며 속도를 내기 시작했습니다. 완공되면 아시아에 존재하는 춤토어의 유일한 작업이 될 예정입니다.

전종현 디자인·건축 저널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