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뉴스 속 신화] 트로이 전쟁 영웅 아킬레우스, 목숨 걸고 친구 복수했대요

입력 : 2026.09.21 03:30

일리아스

크리세스가 아가멤논에게 딸을 돌려달라고 간청하는 장면을 묘사한 4세기쯤 작품입니다. /위키미디어 커먼스
크리세스가 아가멤논에게 딸을 돌려달라고 간청하는 장면을 묘사한 4세기쯤 작품입니다. /위키미디어 커먼스
크리스토퍼 놀런 감독의 영화 '오디세이'가 관객 1100만명을 돌파했습니다. 원작인 호메로스의 서사시 '오디세이아'에 관한 관심도 커지고 있는데요. 역시 호메로스가 쓴 서사시이자 오디세이아의 이전 내용을 담은 '일리아스'를 찾는 사람도 늘고 있습니다. 일리아스는 어떤 이야기일까요?


여인 때문에 시작된 갈등

일리아스는 '일리온의 이야기'라는 뜻이에요. '일리온'은 '일리오스' 혹은 '트로이아'라고도 하는데요. 트로이아에서 유래한 영어식 지명이 '트로이'예요. 즉 일리아스는 '트로이의 이야기' '트로이 전쟁의 이야기'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일리아스는 그리스와 트로이가 대결한 트로이 전쟁의 원인이나 결말은 얘기하지 않고, 전쟁 막바지 50여 일 동안 벌어진 사건만 다루고 있습니다. 그래서 트로이를 함락시킨 것으로 전해지는 '트로이의 목마' 사건은 등장하지 않습니다.

일리아스는 그리스의 영웅 아킬레우스와 총사령관 아가멤논 사이에 생긴 불화에서 시작해요. 전쟁 과정에서 크리세이스라는 여인이 그리스군에 붙잡히고, 아가멤논이 그녀를 차지합니다. 딸이 잡히자 그녀의 아버지 크리세스가 아가멤논을 찾아와 딸을 돌려달라고 간청하지만 아가멤논은 노인의 부탁을 매몰차게 거절해요. 크리세스는 아폴론 신전으로 가 아가멤논에게 복수해 달라고 기도해요. 그러자 아폴론은 그리스군 진영에 역병의 화살을 날리기 시작해요. 이후 날마다 수많은 병사가 죽어 나가요.

그리스군은 역병이 아폴론의 분노 때문이라는 걸 알고 회의를 열어요. 아가멤논은 크리세이스를 돌려보내는 대신 아킬레우스의 몫이었던 브리세이스라는 여인을 대신 갖겠다고 일방적으로 선언해요. 이 말에 분노한 아킬레우스가 아가멤논을 응징하려고 허리춤에 찬 칼에 슬며시 손을 대는 순간, 아테나가 나타나 머리카락을 잡아당기며 칼이 아니라 말로 아가멤논을 꾸짖으라고 충고해요. 아킬레우스는 칼을 도로 꽂고 아가멤논을 신랄하게 비난해요. 앞으로 자신의 군대는 참전하지 않고 고향으로 돌아가겠다고 선언해요.

이후 아킬레우스는 막사에 틀어박힌 채 고향으로 철수할 준비를 해요. 그러자 사기가 떨어진 그리스군은 트로이군에 거듭 패하고, 다급해진 아가멤논은 오디세우스를 대표로 화해 사절단을 아킬레우스에게 보내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해요. 하지만 아킬레우스는 냉정하게 뿌리치고, 그리스군은 점점 더 어려움에 놓이게 됩니다. 아가멤논을 비롯한 많은 장수가 부상을 당하고 급기야 트로이 왕자 헥토르가 이끄는 군대가 그리스군 함선을 불태우는 최악의 사태까지 벌어져요. 그래도 아킬레우스는 막사에서 꿈쩍도 하지 않아요.


친구를 잃은 아킬레우스의 분노

절체절명의 순간 백전노장 네스토르가 묘안을 짜내요. 파트로클로스에게 절친 아킬레우스를 설득해보라고 충고해요. 아킬레우스가 여전히 참전을 거부하자 파트로클로스는 우선 급한 불이라도 끌 수 있게 군대와 무구(武具·전쟁에서 쓰는 여러 도구)를 빌려달라고 부탁해요. 아킬레우스는 못 이기는 체하고 그의 말을 들어주면서, 트로이 성에는 가까이 가지 말고 트로이군을 쫓아낸 즉시 돌아오라고 당부해요.

파트로클로스가 아킬레우스의 무구를 차려입고 나오자 모두 아킬레우스로 착각해요. 그리스군은 안도의 환호성을 지르고 트로이군은 놀라 황급히 도망쳐요. 하지만 파트로클로스는 트로이군을 맹렬히 뒤쫓다가 아킬레우스의 경고를 잊고 적진 깊숙이 들어가고, 결국 트로이 성까지 가서 헥토르에게 허무하게 전사해요.

아킬레우스는 파트로클로스의 시신을 마주하자 치밀어 오르는 분노에 바닷가로 달려가 바다의 여신인 어머니 테티스를 부르며 큰 소리로 울어요. 아들의 통곡 소리를 듣고 여신이 나타나 이유를 묻자 아킬레우스는 사랑하는 파트로클로스를 잃었다며 반드시 복수하겠다고 말해요. 테티스는 아킬레우스에게 헥토르를 죽이면 멀지 않아 그도 죽을 거라며 아들을 만류해요. 하지만 아들의 뜻을 꺾을 수 없음을 직감하고, 대장장이의 신 헤파이스토스에게 부탁해 새 무구를 만들어 건네줍니다. 그의 무구는 파트로클로스가 입고 전사하는 바람에 헥토르의 전리품이 되어버렸기 때문이에요.

새 무구를 걸친 아킬레우스는 아무 조건 없이 아가멤논과 화해하고 트로이군을 거칠게 트로이 성까지 몰아붙이기 시작해요. 트로이의 왕 프리아모스는 도망쳐 오는 아군을 보고 성문을 열었는데요. 헥토르는 부하들을 모두 성안으로 피신시킨 뒤 자신은 성 앞에서 아킬레우스를 기다려요. 아버지 프리아모스가 성안으로 들어오라고 아무리 외쳐도 아랑곳하지 않아요. 결국 헥토르는 아킬레우스의 창을 맞고 쓰러져요.


"최고의 사랑은 죽음을 불사하는 사랑"

아킬레우스는 헥토르의 시신을 전차에 매달고 그리스 진영으로 끌고 가요. 이후 아킬레우스는 새벽녘이면 헥토르의 시신을 전차 뒤에 매달고 절친 파트로클로스의 무덤 주위를 세 번씩 돌며 분을 삭여요.

제우스가 보다 못해 무지개의 여신 이리스를 테티스에게 보내 아들의 분노를 달래주라고 명령해요. 또한 트로이의 왕 프리아모스에게는 수레에 보물을 싣고 아킬레우스의 막사를 찾아가 아들의 시신을 돌려달라고 간청하라고 충고해요. 그래서 프리아모스는 전령의 신 헤르메스의 보호 아래 은밀하게 아킬레우스를 찾아가 무릎을 꿇고 아들의 시신을 돌려달라고 간청해요. 아킬레우스는 프리아모스의 인품과 부성애에 감동하고, 그간 아폴론의 보호로 부패하지 않은 헥토르의 시신을 수습해 프리아모스에게 돌려줍니다. 그리고 장례식이 진행되는 12일 동안 휴전을 보장해요. '일리아스'는 이렇게 헥토르의 장례식으로 끝을 맺습니다. 그다음 이어지는 아킬레우스의 죽음은 다른 기록들을 통해 알 수 있어요. 아킬레우스의 어머니인 바다의 여신 테티스는 아들을 불사신으로 만들기 위해 저승을 흐르는 스틱스 강물에 아기 아킬레우스를 넣었는데요. 이때 손으로 잡고 있던 발뒤꿈치에만 강물이 닿지 않아 몸 전체에서 유일하게 상처를 입을 수 있는 약점으로 남게 되었죠. 아킬레우스는 헥토르의 동생인 파리스가 쏜 독화살에 발뒤꿈치를 맞아 죽게 돼요. 오늘날 발뒤꿈치 힘줄을 '아킬레스건'이라고 부르고, '치명적 약점'을 비유할 때도 아킬레스건이라는 표현을 쓰게 된 이유가 여기에서 유래한 것입니다.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플라톤의 책 '향연'의 부제는 '사랑에 관하여'입니다. 등장인물들은 사랑에 관한 자신의 의견을 말하는데요. 그중 파이드로스는 세상에서 최고의 사랑은 죽음을 불사하는 사랑으로, 파트로클로스에 대한 아킬레우스의 우정이야말로 그런 사랑이었다며 아킬레우스를 한껏 칭송합니다. 헥토르를 죽이면 자신도 죽을 운명이라는 걸 알면서도 목숨을 걸고 복수를 해줬다는 것입니다.


김원익 홍익대 문과대학 교수· 사단법인 세계신화연구소장 기획·구성=김민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