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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밌다, 이 책] 왕위 계승 문제로 감옥 된 궁궐… 그 속에 갇힌 이들의 심리극

입력 : 2026.09.17 03:30

계축일기

[재밌다, 이 책] 왕위 계승 문제로 감옥 된 궁궐… 그 속에 갇힌 이들의 심리극
작자 미상|김성해 엮음|지식의숲|7000원

광해군이 조선의 임금이었던 시절, 그의 어린 이복동생 영창대군은 죽임을 당하고, 계모인 인목왕후는 궁궐에 갇혔습니다. '폐모살제'로 불리는 사건입니다. '한중록', '인현왕후전'과 함께 조선의 대표적인 궁중 문학으로 꼽히는 '계축일기'는 이 사건을 겪은 인목왕후와 주변 사람들이 이 비극을 어떻게 견뎠는지 기록한 작품입니다.

비극의 씨앗은 왕위 계승 문제였습니다. 선조에게는 후궁이 낳은 아들 광해군이 이미 세자로 있었지만, 두 번째 왕비 인목왕후가 뒤늦게 영창대군을 낳았습니다. 왕비가 낳은 영창대군의 존재는 광해군과 주변 세력에 정치적 부담이 됐어요. 선조가 죽고 광해군이 왕위에 오른 뒤에도 긴장은 이어졌습니다.

이런 와중에 1613년 '계축옥사'가 벌어집니다. 여러 사람이 연루된 강도 사건이 왕을 몰아내려는 역모로 비화하면서, 인목왕후의 아버지 김제남은 영창대군을 왕으로 세우려 했다는 혐의로 처형됐습니다. 강화도로 쫓겨난 영창대군도 이듬해 어린 나이에 목숨을 잃었지요. 인목왕후는 왕실 어른으로서의 지위를 빼앗기고 서궁(오늘날 덕수궁)에 갇혔다가 1623년 광해군이 왕위에서 쫓겨난 뒤에야 풀려났습니다.

'계축일기'의 묘미는 그다음부터 시작됩니다. "인목왕후가 서궁에 유폐됐다" 한 줄로 정리돼 있는 사건이지만 안에 갇힌 사람들에게 이는 몇 년간의 생활이었습니다. 조선에서 가장 화려해야 할 궁궐이 어느 순간 빠져나갈 수 없는 감옥으로 바뀐 겁니다.

바깥소식은 들어오지 않고, 먹을거리와 필요한 물건을 구하는 일조차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더 무서운 것은 사람입니다. 누가 끝까지 인목왕후 곁을 지킬지, 누가 바깥의 권력과 손을 잡을지 알 수 없습니다. 궁녀들의 작은 말 한마디와 행동 하나가 의심을 낳습니다. 그래서 '계축일기'는 왕위 다툼을 다룬 정치극이면서도 폐쇄된 공간에서 버텨야 하는 심리극이기도 한 것이지요.

그런데 흥미롭게도 이토록 자세한 이야기를 누가 썼는지는 지금까지도 확실하지 않습니다. 인목왕후를 모신 궁녀가 썼다는 설이 널리 알려졌지만, 인목왕후 자신이나 딸 정명공주가 썼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왕과 대신들의 대화까지 자세히 등장하기에 저자에 대한 여러 추측이 이어지는 것입니다.

작품은 인목왕후의 편에 서서 광해군과 주변 인물들을 부정적으로 그립니다. 그러나 한쪽의 시선이라고 해서 가치가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바로 그 자리에 있었기에 궁녀들의 말과 감정, 갇힌 궁궐의 분위기와 권력에서 밀려난 사람들이 느낀 두려움을 자세히 담을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거대한 역사적 사건이 궁중 안 사람들의 하루를 어떻게 바꾸는지 생생하게 전한다는 것. 이것이 '계축일기'가 지금까지 읽히는 힘입니다. 
이진혁 출판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