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숨어있는 세계사] 고고학자 집념이 찾아낸 오디세이아 세계 속 '고대 문명'

입력 : 2026.09.16 03:30

신화와 고고학

크리스토퍼 놀런 감독의 영화 '오디세이'가 국내 관객 1000만명을 돌파했어요. 영화의 인기는 원작인 호메로스의 서사시 '오디세이아'와 그리스 신화 관련 도서에 대한 관심으로도 이어졌죠.

사실 호메로스가 들려준 트로이 전쟁과 영웅들의 모험은 오랫동안 신화와 전승이 뒤섞인 허구의 이야기로만 여겨졌답니다. 하지만 고고학자들이 땅속에 묻힌 고대 도시들을 발굴하면서 이야기의 배경이 된 고대 지중해 문명이 실제 모습을 드러냈는데요. 오늘은 고고학을 통해 트로이와 미케네, 크레타 문명의 실체가 어떻게 발견됐는지 알아볼게요.

튀르키예 북서부 히사를리크 언덕에 남아 있는 트로이 유적이에요. 이곳에는 청동기 시대부터 그리스·로마 시대까지 여러 시기의 흔적이 남아 있지요.
튀르키예 북서부 히사를리크 언덕에 남아 있는 트로이 유적이에요. 이곳에는 청동기 시대부터 그리스·로마 시대까지 여러 시기의 흔적이 남아 있지요.
전설의 트로이를 찾아 나선 슐리만

먼저 영화에도 등장하는 고대 도시 트로이를 살펴볼게요. 트로이 발굴은 상업으로 부를 축적한 독일 출신의 아마추어 고고학자 하인리히 슐리만의 집념에서 출발했어요. 어린 시절 아버지에게 호메로스의 영웅 이야기를 자주 들었던 슐리만은 트로이 전쟁이 실제로 있었던 사건이라고 굳게 믿었죠. 트로이를 찾던 슐리만은 당시 오스만제국 영토였던 현재 튀르키예 북서부의 히사를리크 언덕에 주목했어요. 호메로스의 시구에 등장하는 지형과 이곳의 모습이 일치한다고 생각하고, 이곳이 전설의 도시 트로이라고 확신한 거예요.

슐리만은 1870년부터 수많은 일꾼을 데리고 언덕을 파헤쳤어요. 그는 가장 오래된 도시가 유적의 가장 깊은 곳에 있을 것으로 판단하고, 수천 년의 세월이 쌓인 언덕 중앙을 깊숙이 파고들기 시작했어요. 하지만 그 과정에서 다른 시대의 건물과 중요한 실마리가 될 성벽까지 무너뜨리고 말았죠. 히사를리크 언덕 아래엔 도시가 하나만 있는 것이 아니었어요. 기원전 3000년 무렵부터 많은 도시가 세워지고 파괴되기를 반복하면서 9개가 넘는 시대의 흔적이 겹겹이 쌓인 유적지였죠.

1873년 슐리만은 아래에서 두 번째인 제2기층에서 화려한 황금 유물을 발견했어요. 그는 이를 트로이의 왕 '프리아모스'의 보물이라고 부르며 제2기층이 호메로스가 묘사한 트로이라고 발표했죠. 그러나 후대 연구 결과 제2기층은 트로이 전쟁의 추정 시기보다 약 1000년 앞선 시대의 유적으로 밝혀졌어요. 슐리만이 시대와 보물의 주인을 잘못 짚은 것이죠.

그럼에도 그의 발굴은 고대사 연구를 뒤흔들었어요. 히사를리크에 여러 시대의 도시가 실제로 존재했다는 사실을 세상에 알렸기 때문이에요. 오늘날 학계에서는 그중 제7기층을 트로이 전쟁 이야기의 유력한 배경으로 추정해요. 트로이는 흑해와 지중해를 잇는 다르다넬스 해협 부근에 자리한 전략적 요충지였는데요. 이런 지리적 조건을 근거로, 헬레네를 둘러싼 신화 속 전쟁이 흑해 무역로의 주도권을 놓고 벌어진 충돌이었다는 해석도 나온답니다.

슐리만이 발견한 기원전 16세기의 황금 가면. 슐리만은 아가멤논의 가면이라고 생각했지만, 실제로는 트로이 전쟁이 일어났을 것으로 추정되는 시기보다 수백 년 앞선 유물이었어요.
슐리만이 발견한 기원전 16세기의 황금 가면. 슐리만은 아가멤논의 가면이라고 생각했지만, 실제로는 트로이 전쟁이 일어났을 것으로 추정되는 시기보다 수백 년 앞선 유물이었어요.
황금 가면과 함께 깨어난 미케네

세계적 명성을 얻은 슐리만의 관심은 곧 그리스 본토로 향했어요. 그리스 연합군의 총사령관인 아가멤논의 도시로 전해지는 미케네를 발굴하기 위해서였죠.

호메로스는 서사시에서 미케네를 '황금이 풍부한' 도시라고 묘사했어요. 1876년 슐리만은 펠로폰네소스반도 북동부에 있는 미케네 성채 유적을 파헤치기 시작했어요. 슐리만은 성벽 안쪽을 파고든 끝에 원형 돌담으로 둘러싸인 왕족들의 묘역을 발견했죠. 무덤에서는 왕족들의 유골과 함께 순금으로 만든 왕관과 황금 가면, 동물 모양의 잔, 보석으로 장식한 청동검 등 화려한 매장품이 쏟아져 나왔어요.

슐리만은 그중 가장 정교하게 만든 황금 가면을 아가멤논의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후대 연구 결과 이 가면은 트로이 전쟁의 추정 시기보다 약 300~400년 앞선 기원전 16세기 제작된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아가멤논의 가면은 아니었지만, '황금이 풍부한 미케네'라는 호메로스의 묘사가 과장만은 아니었다는 점을 보여준 것이죠. 이후 발굴에서는 화덕을 갖춘 왕궁과 깊은 물탱크, 창고, 성채 밖 가옥 등이 확인됐어요. 이를 통해 학자들은 기원전 1600~1100년 무렵 그리스 본토에서 번성했던 미케네 문명의 모습을 파악할 수 있게 됐습니다.

그리스 크레타섬 크노소스 궁전에서 발견된 프레스코화. 젊은 사람들이 황소의 뿔을 잡거나 황소 위를 뛰어넘는 듯한 장면이 묘사돼 있어요.
그리스 크레타섬 크노소스 궁전에서 발견된 프레스코화. 젊은 사람들이 황소의 뿔을 잡거나 황소 위를 뛰어넘는 듯한 장면이 묘사돼 있어요.
크노소스 궁전의 북쪽 입구 전경이에요. 붉은 기둥과 벽화는 아서 에번스 발굴단이 과거 모습을 추정해 복원한 모습이에요. /위키피디아
크노소스 궁전의 북쪽 입구 전경이에요. 붉은 기둥과 벽화는 아서 에번스 발굴단이 과거 모습을 추정해 복원한 모습이에요. /위키피디아
미궁을 닮은 크노소스 궁전

고고학자들은 미케네 문명보다 앞서 번성한 문명의 흔적을 찾아 지중해의 큰 섬 크레타로 눈을 돌렸어요. 그리스 신화에서 크레타는 건축의 천재 다이달로스가 만든 미궁과 그 안에 갇힌 괴물 미노타우로스의 전설이 전해지는 곳이에요. 미노타우로스는 사람의 몸에 소의 머리를 한 반인반수의 괴물이지요.

1900년 영국 고고학자 아서 에번스는 크레타섬 북부에서 미로처럼 얽힌 건물터를 본격적으로 발굴했어요. 바로 크레타의 중심지였던 크노소스 궁전이었죠. 면적은 약 2만㎡로 1000개가 넘는 방과 복도, 계단이 복잡하게 얽혀 있었고 중앙 광장을 중심으로 여러 층의 건물이 솟아 있었어요. 그야말로 신화 속 미궁을 떠올리게 하는 모습이었죠. 학자들은 이처럼 복잡한 구조가 미궁 신화에 영향을 줬을 가능성이 있다고 추측한답니다.

궁전 내부에서 발견된 화려한 프레스코 벽화는 미노타우로스 신화에 또 다른 실마리를 던져줬어요. 벽화에는 젊은이들이 커다란 소의 뿔을 붙잡고 공중제비를 돌며 뛰어넘는 듯한 장면이 생생하게 그려져 있었어요. 당시 크레타인들에게 소는 신성함과 강인함, 풍요를 상징하는 중요한 존재였어요. 소와 관련된 의식과 숭배 문화가 오랜 세월을 거치면서 미노타우로스 신화에 영향을 줬을 가능성도 제기된답니다.

에번스는 신화 속 크레타의 왕 미노스의 이름을 따 이 문명을 '미노아 문명'이라고 불렀어요. 발원지의 이름을 따 '크레타 문명'이라고도 하죠. 에번스는 크노소스 궁전을 복원하는 과정에서 원래 유적을 변형했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지만, 그의 발굴을 통해 크레타 문명이 미케네 문명과 고대 그리스 문화에도 큰 영향을 줬다는 사실이 널리 알려졌지요.
서민영 경기 군서고 역사 교사 기획·구성=윤상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