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클래식 따라잡기] 스페인 못 가본 작곡가, 상상으로 '그라나다' 담아냈대요

입력 : 2026.09.14 03:30

스페인 음악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가 지난달 7일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에서 정기연주회 '파야, 삼각모자 모음곡'을 개최했습니다. 올해로 탄생 150주년을 맞은 스페인 대표 작곡가 마누엘 데 파야(1876~1946)의 명곡들이 연주됐습니다. 또한 국적은 프랑스지만 작품에 스페인의 색채를 담은 작곡가 에마뉘엘 샤브리에(1841~1894)와 에두아르 랄로(1823~1892)의 음악도 울려 퍼졌습니다. 오늘은 스페인 음악의 매력은 무엇인지, 스페인은 어떤 거장들을 키워냈는지 함께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프랑스 작곡가 클로드 드뷔시입니다. 그는 스페인 도시 그라나다를 가보지 않고 상상만으로 그라나다에 대한 곡을 썼어요. 그 곡을 들으면 그라나다 거리를 직접 거니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고 합니다.
프랑스 작곡가 클로드 드뷔시입니다. 그는 스페인 도시 그라나다를 가보지 않고 상상만으로 그라나다에 대한 곡을 썼어요. 그 곡을 들으면 그라나다 거리를 직접 거니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고 합니다.
19세기 유럽 최고의 바이올리니스트였던 파블로 데 사라사테입니다. 프랑스 작곡가 에두아르 랄로의 대표작 '스페인 교향곡'이 그에게 헌정됐습니다.
19세기 유럽 최고의 바이올리니스트였던 파블로 데 사라사테입니다. 프랑스 작곡가 에두아르 랄로의 대표작 '스페인 교향곡'이 그에게 헌정됐습니다.
프랑스·러시아 작곡가의 스페인 사랑

프랑스의 에마뉘엘 샤브리에, 클로드 드뷔시(1862~1918)는 스페인을 소재로 한 작품을 남겼습니다. 공무원이었던 샤브리에는 전업 작곡가가 된 뒤 세비야, 그라나다, 발렌시아, 바르셀로나 등 스페인 여러 도시를 방문했습니다. 거기서 접한 민속음악, 춤의 선율과 리듬을 기록해뒀다가 관현악곡 '스페인 랩소디'를 만들었지요. 샤브리에의 대표작입니다.

드뷔시는 스페인 그라나다 땅을 밟아본 적이 없었어요. 하지만 그는 "여행을 떠날 돈이 없다면 상상력으로 대신해야 한다"라며 아라비아풍 음계와 신비로운 화성, 민요풍 선율을 엮어 그라나다의 풍경을 그려냈습니다. 그렇게 작곡된 그의 피아노 모음곡 '판화' 중 제2곡 '그라나다의 밤'을 듣고 있으면 황혼이 깃든 그라나다 거리를 직접 거니는 것 같은 기분이 듭니다.

프랑스 작곡가 모리스 라벨(1875~1937)은 프랑스와 스페인에 걸친 바스크 지방 출신인 어머니로부터 스페인 민요와 옛이야기를 자주 들으며 자랐습니다. 그런 경험을 담아 관현악 작품 '스페인 랩소디'를 남겼습니다. 이 곡에는 스페인 민속춤의 흥겨운 리듬과 선율이 담겨 있습니다.

에두아르 랄로도 프랑스인이지만 대표작이 '스페인 교향곡'이에요. 당대 최고의 바이올리니스트 파블로 데 사라사테(1844~1908)에게 헌정되었으며, 그의 연주로 초연되었습니다. 독주 바이올린의 현란한 기교가 돋보이는 곡입니다.

'러시아 음악의 아버지'라 불리는 미하일 글린카(1804~1857)도 두 편의 '스페인 서곡'을 남겼습니다. 스페인에서 2년간 머무르는 동안 얻은 영감을 바탕으로 쓴 관현악곡이에요. 두 곡은 각각 '아라곤의 호타', '마드리드 여름밤의 추억'이라는 부제가 붙었습니다. 그만큼 스페인의 이국적인 정취가 물씬 풍기는 작품입니다. 러시아 작곡가 니콜라이 림스키코르사코프(1844~1908)는 '스페인 기상곡'을 썼어요. '아침의 노래'를 뜻하는 제1곡 '알보라다'로 시작해 빠른 춤곡이 흐르는 제5곡 '아스투리아스의 판당고'까지, 스페인 감성이 충만한 곡이에요.

프랑스와 러시아 작곡가들이 남긴 스페인 음악에는 집시나 지방 소도시가 소재로 등장하고, 흥겨운 민속춤의 리듬과 선율이 활용됐다는 공통점이 있어요. 당시 유럽에서 스페인풍 음악은 큰 사랑을 받았답니다.

스페인 작곡가 마누엘 데 파야가 쓴 발레 음악 '삼각모자'의 무대 의상을 그린 그림입니다. 화가 피카소가 디자인했어요.
스페인 작곡가 마누엘 데 파야가 쓴 발레 음악 '삼각모자'의 무대 의상을 그린 그림입니다. 화가 피카소가 디자인했어요.
스페인 전통을 담아낸 음악들

19세기 유럽 국가들은 기존의 독일·이탈리아·프랑스 중심 음악에서 벗어나 각자 민족적인 색채를 담은 음악을 만들어야 한다는 고민이 깊어졌습니다. 스페인 국민악파 작곡가들도 '진정한 스페인 음악이란 무엇인가?'를 치열하게 고민했어요. 그런 고민 속에 탄생한 것이 신동 피아니스트 출신 스페인 작곡가 이사크 알베니스(1860~1909)의 피아노 연주곡 '이베리아 모음곡'입니다. 고도의 기교와 화려함을 요하는 이 작품은 스페인의 모습을 담아낸 음악적 풍경화입니다. 항구 도시를 그린 '알메리아', 종교 축제의 열기를 그린 '세비야의 성체 축일', 전통 민속춤 리듬을 살린 '말라가' 같은 곡들로 스페인 각지를 그려냈지요. 알베니스와 같은 시기 활동한 엔리케 그라나도스(1867~1916)는 화가 프란시스코 고야의 회화에서 영감을 얻은 피아노 모음곡 '고예스카스'와 기타 음악을 피아노로 구현한 '12개의 스페인 춤곡'을 통해 스페인 건반 음악의 기틀을 확립했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그리고 피아니스트이자 작곡가 마누엘 데 파야는 스페인 국민악파를 대표하는 위대한 거장으로 꼽힙니다. 마드리드 왕립 음악원에서 민족 음악에 눈을 떴고, 프랑스 유학에서 귀국한 뒤에는 스페인 각 지방의 민요를 채집하고 편곡해 널리 알리는 일에 앞장섰죠. 스페인 남부 안달루시아 지방에서 유래한 춤인 '플라멩코'를 녹여낸 오페라 '허무한 인생', 스페인 화가 피카소가 무대와 의상을 디자인한 발레 '삼각모자'는 그의 독창성과 민족적 색이 절정에 달한 명작입니다. 특히 삼각모자에는 활력 넘치는 3박자 춤 '호타', 기타와 캐스터네츠 반주에 맞춰 남녀가 짝을 이뤄 추는 '세기디야', 안달루시아 고유의 열정적인 춤 '판당고' 등 스페인의 유서 깊은 민속춤이 담겼습니다.

스페인의 유서 깊은 음악 학교인 마드리드 왕립 음악원입니다.
스페인의 유서 깊은 음악 학교인 마드리드 왕립 음악원입니다.
마드리드 왕립 음악원에서 공부한 첼리스트 파블로 카잘스. 그는 20세기 첼로의 역사를 새로 썼다는 평가를 받아요. /위키미디어 커먼스
마드리드 왕립 음악원에서 공부한 첼리스트 파블로 카잘스. 그는 20세기 첼로의 역사를 새로 썼다는 평가를 받아요. /위키미디어 커먼스
스페인 음악의 산실, 마드리드 왕립 음악원

스페인에서 가장 유서 깊은 음악 학교인 마드리드 왕립 음악원은 소문난 음악 애호가였던 국왕 페르난도 7세의 왕비 마리아 크리스티나의 후원으로 1830년에 문을 열었습니다. 이곳은 스페인 근대 음악 거장들의 요람이 됐는데요. 앞서 살펴본 이사크 알베니스, 마누엘 데 파야를 비롯해 피아니스트이자 작곡가였던 호아킨 투리나(1882~1949)도 이곳 출신입니다. 20세기 첼로의 역사를 새로 쓴 첼리스트 파블로 카잘스(1876~1973) 역시 여기서 공부했고, '근대 기타의 아버지'라 불리며 클래식 기타의 부흥을 이끈 프란시스코 타레가(1852~1909)도 바로 이 음악원에서 성장했습니다.
김지현 작가·'클래식을 읽는 시간' 저자 기획·구성=김민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