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재밌다, 이 책] 파랑, 중세 땐 가장 뜨거운 색이었죠

입력 : 2026.09.10 03:30

컬러의 말

[재밌다, 이 책] 파랑, 중세 땐 가장 뜨거운 색이었죠
카시아 세인트 클레어 지음|이용재 옮김|출판사 윌북|가격 1만5800원

'컬러의 말'은 우리가 무심코 지나쳐 온 색들의 숨은 삶을 들여다보는 책입니다. 저자는 영국 옥스퍼드대에서 18세기 여성 패션을 연구하다 오래된 잡지에 등장하는 낯선 색 이름에 매료됐습니다. 이후 색에 관한 칼럼을 연재했고, 그중 특별한 사연을 지닌 75가지를 골라 이 책에 담았습니다. 베이지, 카키처럼 익숙한 색부터 이사벨린, 압생트처럼 낯선 색까지, 저마다 어떻게 생겨나고 사랑받았으며 때로는 꺼려지거나 잊혔는지를 흥미롭게 들려줍니다. 색 이름의 유래도 제각각입니다. 어떤 색은 화가들이 그림을 그릴 때 사용한 안료(색을 내는 분말)에서 이름을 얻었고, 또 어떤 색은 사람들이 오랜 세월 그 빛깔에 특정한 이미지와 의미를 붙이면서 하나의 이름으로 자리 잡았지요.

우리가 색에서 읽어내는 의미는 끊임없이 변해왔습니다. 오늘날 빨강과 노랑은 '따뜻한 색', 파랑은 '차가운 색'으로 여기지만, 이런 구분은 18세기 무렵에야 자리 잡았습니다. 중세에는 오히려 파랑을 가장 뜨거운 색으로 여긴 흔적도 있습니다.

노란색을 살펴볼까요. 1895년 작가 오스카 와일드가 런던에서 체포되자 한 신문은 그가 '노란 책을 팔에 끼고 있었다'는 사실을 제목에 넣었습니다. 당시 프랑스의 선정적인 소설들이 주로 노란 표지를 써 노랑에는 퇴폐와 불온함의 이미지가 따라붙었기 때문입니다. 반면 고흐 같은 예술가에게 노랑은 낡은 시대의 가치에 맞서는 색이었습니다. 같은 색을 누군가는 타락으로, 누군가는 해방으로 읽은 것이지요.

고흐가 특히 사랑한 노랑은 '크롬 옐로'였습니다. 19세기 등장한 이 강렬한 안료 덕분에 화가들은 이전보다 훨씬 눈부신 노랑을 캔버스에 올릴 수 있었습니다. 고흐도 '해바라기'를 그리며 이 색을 아낌없이 사용했습니다. 그런데 크롬 옐로에는 뜻밖의 약점이 있었습니다. 햇빛과 다른 안료에 반응해 시간이 흐를수록 갈색으로 변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날 그림 속 몇몇 해바라기는 처음 그려졌을 때보다 어두워졌습니다. 실제 꽃처럼 그림 속 해바라기도 세월과 함께 조금씩 시들고 있는 셈입니다.

색에 붙은 사회적 이미지는 우리가 물건을 사고파는 방식에도 영향을 미칩니다. '핑크 택스'는 여성용으로 판매되는 상품에 더 비싼 가격이 붙는 현상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2014년 프랑스에서는 비슷한 일회용 면도기인데도 분홍색 제품이 파란색 제품보다 비싸게 팔려 논란이 일기도 했어요.

'컬러의 말'이 흥미로운 것은 색 하나를 따라가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곳에 도착한다는 점입니다. 그림에서 출발했다가 화학과 무역을 만나고, 패션을 들여다보다 정치와 사회의 역사로 건너갑니다. 어떤 색은 귀하다는 이유로 권력의 상징이 됐고, 또 어떤 색에는 한 시대의 욕망과 편견이 고스란히 새겨졌습니다. 색의 역사를 읽는 일은 당시 사람들의 생각을 들여다보는 일이기도 합니다.

이진혁 출판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