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뉴스 속의 한국사] 꼬챙이에서 시작… 지금은 亞 최대 탐사 전용선 갖췄어요

입력 : 2026.09.10 03:30

한국 수중 고고학 50년

오는 14일 전남광주 목포시에 있는 국립해양유산연구소에서 '수중(水中·물속) 발굴 50주년' 기념식을 연다고 해요. '역사의 물살, 미래의 물결'을 주제로 한 특별전도 함께 열립니다. '50주년'이 된 건 우리나라의 수중 발굴 또는 수중 고고학의 역사가 1976년 '신안선'을 조사하면서 시작했기 때문이에요. 신안선은 한때 '서해 보물선'으로 불리며 많은 이를 설레게 했던 배랍니다. 무슨 얘긴지 같이 알아볼까요?

700년 전 청자를 개밥그릇으로 썼다?

"아따~ 또 이런 것이 나와부렀어잉?"

전남광주 신안군 증도면 방축리의 검산마을은 1976년 전까지 그다지 알려지지 않은 한적한 섬마을이었어요. 1950년대부터 어부들이 바다에서 그물을 던지면 간간이 깨진 도자기 조각이나 나무토막이 나왔다고 합니다. 마을의 한 할머니는 이렇게 증언했습니다.

"고기 잡다봉께 엽전 꾸러미가 많이 걸려서 이 양반(남편)이 '잡히라는 고기는 안 잡히고 쓸데없는 게 걸리네!' 그러고 뜯어 내버렸더래. 물에다 다. 그릇도 있고, 그거 갖다 개밥그릇 한 사람도 있었어라." 알고 보니 그 강아지는 700년 전 중국 청자를 밥그릇으로 썼던 겁니다.

1975년 8월, 어부 최형근씨가 여기서 그물로 조업을 하다 청자 6점을 인양했습니다. 그는 초등학교 교사인 동생 최평호씨에게 알렸고, 그는 이를 신안군청에 신고했습니다. 1976년 1월에 '국보급'이라고 알려진 또 다른 청자화병이 그물에 걸려 올라왔고, 이 사실이 언론에 보도되면서 세상에 본격적으로 알려지게 됐습니다.

신안선과 유물 3만 점… 목숨 건 보물찾기

도대체 어떻게 된 걸까요? 고려 시대인 1323년(충숙왕 10년) 중국 원나라에서 건조한 무역선인 신안선(20세기에 붙인 이름)이 닝보(寧波)에서 출항해 일본으로 가던 중 신안 앞바다에서 침몰했기 때문이에요. 여기에는 청자와 백자를 비롯한 유물 약 3만 점, 동전 28t(톤)이 실려 있었답니다. 그래서 그 유물이 조금씩 그물에 걸렸던 거지요.

바로 이 해, 1976년은 한국 '수중 고고학'의 첫 해였습니다. 수중 발굴이라는 개념이 없고 장비와 인력이 턱없이 부족하던 당시엔 해군 해난구조대 소속 심해잠수사들이 투입됐죠. 이들은 바다의 거센 조류를 뚫고 목숨을 건 발굴을 진행했습니다.

철제 구획틀을 설치해 유물과 선체를 수습했고, 어느 지점에서 무슨 유물이 나왔다는 정보를 기록했어요. 신안선은 약 9년에 걸친 수중 발굴을 통해 그 실체가 드러나게 됐습니다. 선체는 해체해 인양된 뒤 다시 맞춰졌어요. 길이 30.1m, 폭 10.7m, 무게 240t 규모였죠.

신안선 발굴을 계기로 해양 문화재의 발굴과 연구를 전담하는 기관이 생겨났다는 것도 기억할 필요가 있어요. 1981년 문화재연구소 부설 목포보존처리장이 생겨났고, 이 기관은 1994년 국립해양유물전시관, 2009년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가 됐어요. 2024년에는 국립해양유산연구소로 이름을 바꿨습니다. 현재 바다에서 발굴된 유물을 체계적으로 보존, 연구, 전시하는 거점 기관 역할을 하고 있어요.

국립해양유산연구소는 14일부터 전남광주 목포시 연구소에서 ‘수중 발굴 50주년’ 기념행사를 개최한다고 밝혔습니다. 사진은 신안선 전시실.
국립해양유산연구소는 14일부터 전남광주 목포시 연구소에서 ‘수중 발굴 50주년’ 기념행사를 개최한다고 밝혔습니다. 사진은 신안선 전시실.
1983년 신안군 바다에서 신안선의 일부를 건져 올리고 있습니다. 약 9년의 발굴을 거쳐 도자기·공예품 등 유물 2만7600여 점을 찾아냈답니다.
1983년 신안군 바다에서 신안선의 일부를 건져 올리고 있습니다. 약 9년의 발굴을 거쳐 도자기·공예품 등 유물 2만7600여 점을 찾아냈답니다.
완도선 복원 모형입니다. 완도선은 1983년 완도군에서 발견된 고려 시대 난파선입니다.
완도선 복원 모형입니다. 완도선은 1983년 완도군에서 발견된 고려 시대 난파선입니다.
완도선에서 나온 청자입니다. /국립해양유산연구소·신안군
완도선에서 나온 청자입니다. /국립해양유산연구소·신안군
완도선과 십이동파도선, 고려 배들의 발굴

또 하나의 중요한 수중 발굴이 1983년 진행됐어요. 완도군 약산면 어두리 앞바다에서 온전한 형태의 우리 배, 즉 한선(韓船)을 처음으로 건진 거죠. 당초 이곳에서 청자를 몰래 건져 팔아넘기던 도굴꾼들이 체포되면서 실체가 드러났고, 1984년까지 문화재관리국(현 국가유산청) 주도로 수중 발굴이 진행돼 갯벌 속에 묻혔던 11세기의 선체와 유물이 세상 밖으로 나왔습니다.

3만 점이 넘는 고려청자가 마치 타임캡슐처럼 드러났는데, 화려한 왕실용 상감청자가 아니라 일반 백성들이 실생활에서 사용하던 '실용 청자'라는 특징이 있었어요. '완도선'이란 이름이 붙은 이 배는 밑바닥이 평평한 우리 전통 배로서 썰물 때도 갯벌 위에 수평으로 앉을 수 있게 설계된 '평저선'이었습니다. 당시 발굴로 그 실물이 제대로 규명된 것입니다.

2003년 전북 군산 앞바다에선 12세기 고려의 청자 운반선 '십이동파도선'이 발굴되기도 했어요. 조개를 잡던 잠수사가 뻘을 씻기 위해 고압 물 분사기를 쐈다가 청자 무더기를 발견한 거죠. 8000여 점의 실용 자기가 인양됐는데, 이를 통해 깨지기 쉬운 도자기를 어떻게 배에 실었는지가 규명됐어요. 도자기 여러 개를 포갠 뒤 겉에 나무(부목)를 대고 새끼줄로 묶어 단단한 꾸러미로 만든 다음, 완충재인 볏짚 위에 꾸러미들을 빈틈없이 꽉 채워 실었다고 합니다.

꼬챙이와 손끝 감각에서 첨단 장비로 발전

2009년부터는 충남 태안군 근흥면 마도 해역에서 옛 배들이 발굴됐습니다. 이 해역의 물살이 거세 많은 배가 침몰했기 때문에 '바닷속 경주'라 불릴 정도입니다. 마도 1·2·3호선은 고려 시대 곡물과 청자를 싣고 가던 조운선(漕運船)이었어요. 조운이란 물건을 배로 운반하는 일, 특히 현물로 거둔 각 지방의 조세를 수도까지 운반하던 일을 말합니다. 마도 4호선은 처음으로 실체가 드러난 조선 시대의 조운선이라는 기록도 세웠습니다.

지난 50년 동안 한국의 수중 고고학은 전문 인력, 장비, 연구 패러다임 등 모든 분야에서 큰 발전을 이뤘습니다. 신안선 발굴 때만 해도 칠흑 같은 뻘물에서 잠수사가 손끝 감각과 쇠꼬챙이만으로 갯벌을 파헤쳐야 했으나, 현재는 아시아 최대 수중 발굴 전용선 '누리안호'와 여러 탐사선이 활약 중입니다.

또 무인 잠수정(ROV), 다중빔 음향측심기, 해저 지층 탐사기(SBP) 같은 첨단 해양 물리 탐사 장비가 투입돼 갯벌 속 지형과 매장물을 3차원으로 정밀하게 조사한다고 합니다. 유물을 건져 올리는 '보물찾기'를 뛰어넘어 옛 사람들의 삶을 복원하는 진정한 의미의 고고학으로 거듭난 것이죠. 수중 탐사 범위도 강화도와 제주도 등으로 넓혀 옛 '해양 실크로드'의 흔적을 찾고 있습니다. 
유석재 역사문화전문기자 기획·구성=김민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