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뉴스 속의 한국사] '조선의 오디세우스들'… 오키나와·필리핀 표류했죠
입력 : 2026.09.03 03:30
조선 시대 표류기
크리스토퍼 놀런 감독의 영화 '오디세이'가 국내 관객 수 900만명을 넘으며 흥행하고 있다는 뉴스가 나왔어요. 기원전 8세기 무렵 그리스의 호메로스가 쓴 서사시 '오디세이아'를 원작으로 한 영화입니다. 트로이 전쟁을 승리로 이끈 주인공 오디세우스가 귀환하던 중 길을 잃고 바다를 떠돌며 온갖 지역을 거친 뒤 10년 만에 고향 이타카로 돌아간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옛날 우리나라에서도 이와 비슷한 소설과 기록이 있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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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선 시대 소설 '최척전'을 다룬 연극 '퉁소소리'입니다. 최척전은 가족이 타국으로 흩어졌다가 우여곡절 끝에 조선으로 귀환하는 내용이에요. /세종문화회관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하고 아들을 낳지만, 전쟁에 휘말려 헤어진 뒤 여러 나라를 방랑한 끝에 마침내 재회한다'는 줄거리에서 '오디세이아'를 떠올리게 하는 조선시대 소설이 있습니다. 1621년(광해군 13년) 조위한이 쓴 한문 소설 '최척전(崔陟傳)'이에요.
우리나라는 고려 때까지만 하더라도 바다를 통해 먼 나라와도 교류했습니다. 조선시대에 들어와 우리나라 사람이 배를 타고 외국으로 가는 것은 법적으로 금지됐습니다. 하지만 전쟁으로 포로가 되거나 바다에서 풍랑을 만나 의도와는 달리 낯선 타국으로 가는 일은 간혹 있었죠.
'최척전'은 바로 그런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전라도 남원에 사는 최척과 옥영은 서로 사랑해 결혼하고 아들을 낳으며 잘 살고 있었어요. 임진왜란 중이던 1597년(선조 30년) 옥영은 일본군에 붙잡혀 일본으로 끌려가고, 최척은 명나라 장수를 따라 중국으로 가게 되죠. 남장을 하고 정체를 숨긴 옥영은 일본 상인의 도움을 받아 무역선을 타고 전혀 모르는 나라로 가게 됩니다. 그곳이 안남(安南)이라 불리던 낯선 땅, 지금의 베트남이었습니다.
이후 최척은 장사를 하러 안남에 들렀다가, 그곳의 한 항구에서 마침내 옥영과 운명의 재회를 하게 됩니다. 이들은 중국으로 가서 둘째 아들 몽선을 낳고 평화롭게 살았습니다. 그런데 명나라와 후금의 전쟁이 일어나고, 최척은 포로가 됐다가 큰아들 몽석과 만나 고향인 조선으로 돌아옵니다. 옥영과 몽선도 우여곡절 끝에 조선으로 귀환해 가족 모두가 다시 모여 행복하게 살게 됐다는 이야기입니다.
'최척전'은 얼마 전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연극 '퉁소소리'로 극화되기도 했던 기구한 이야기입니다. 역사적 현실을 담았다는 평도 있습니다. 같은 시기에 나온 유몽인의 야담집 '어우야담'에도 남녀 주인공 이름이 '정생'과 '홍도'인 것만 다를 뿐 줄거리가 비슷한 이야기가 있어요. 그래서 실제 사건을 기반으로 한 이야기라고 여겨지며, 일본과 베트남을 오갔던 조완벽이라는 사람이 모델이라는 해석도 있어요. 조완벽도 오디세우스처럼 10년 만에 고향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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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선 전기 최부의 '표해록'입니다. 당시 명나라 사정과 지리·풍속을 기록해 중국에서도 귀중한 사료로 평가받습니다. /위키미디어 커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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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주도 선비였던 장한철은 풍랑을 만나 류큐(일본 오키나와)에 표류했습니다. 사진은 제주에 있는 장한철을 기리는 비석입니다. /제주학연구센터
실제로 일어난 사건을 그대로 기록한 기행(紀行) 문학도 있습니다. 우선 제목이 같은 두 편의 '표해록(漂海錄)'이 존재합니다. 바다를 표류한 기록이라는 뜻이죠. 조선 전기 최부의 '표해록'은 1488년(성종 19년) 명나라로 표류했던 여행기입니다. 최부는 한 해 전 도망간 노비를 잡아들이는 추쇄경차관에 임명돼 제주에 부임했고, 부친상을 당해 급히 고향 나주로 돌아가던 중 풍랑을 만나 지금의 중국 저장성에 닿게 됐죠.
해적을 만나 죽을 고비를 넘기고, 왜구로 오해받아 심문을 받은 끝에 베이징을 거쳐 조선으로 귀환할 수 있었습니다. 당시 15세기 명나라 내부의 사정과 지리·풍속을 기록해 중국 역사학계에서도 귀중한 사료로 평가받습니다. 이탈리아 마르코 폴로의 '동방견문록'에 견주는 사람도 있을 정도예요. 대쪽 같은 선비였던 최부는 불행히도 연산군 시절 선비들이 대거 화를 입은 갑자사화로 희생됐습니다.
조선 후기에는 장한철의 '표해록'이 있습니다. 제주도 선비였던 장한철은 과거 시험을 보러 육지로 가던 중 풍랑을 만나 유구(琉球·류큐)에 표류했는데요. 이곳은 지금의 일본 오키나와였습니다. 그가 구사일생으로 돌아와 쓴 '표해록'은 당시 류큐의 사정뿐 아니라 바다 한가운데서 겪은 굶주림과 공포, 계절풍과 해류 등을 기록한 해양 문학으로 인정받고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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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2년 그린 홍어 장수 문순득의 초상화입니다. 아시아 일대를 표류했던 그의 경험을 정약용의 형 정약전이 글로 남겼습니다. /국립해양유산연구소
19세기 초에 이르면 당시 스페인 식민지로서 서양 문화권이었던 필리핀까지 다녀온 사람이 등장하게 됩니다. 홍어 상인 문순득(1777~1847)은 1801년(순조 1년) 12월 풍랑을 만나 류큐에 도착해 8개월 동안 머물렀고, 중국으로 가는 배를 타고 돌아가려고 했으나 또 풍랑을 만나 여송(呂宋·루손)이라 불리던 필리핀까지 닿았어요. 마침내 중국 상선을 얻어 타고 마카오·난징·베이징·의주·한양을 거쳐 3년여 만인 1805년 1월 귀향할 수 있었습니다.
문순득은 글을 몰라 그 이야기를 쓸 수 없었는데, 마침 흑산도에는 정약용의 형 정약전이 유배를 와 있었습니다. 정약전은 문순득과 만나 이야기를 듣고 '표해시말'이란 기록을 남겼습니다. 다른 어느 책에서도 볼 수 없는 류큐와 필리핀의 문화가 생생하게 묘사된 것이 특징이죠. "남자가 밥을 지으며 남녀가 둘러앉아 손으로 먹는데 지체 높은 사람은 일간삼지(줄기 하나에 가지가 셋인 도구·포크)로 먹는다"는 얘기도 있어요. 정약용은 '여송에서 화폐가 유용하게 쓰인다'는 문순득의 말을 전해 듣고 자신의 책 '경세유표'에서 화폐 개혁안을 주장하게 됐다고 합니다.
오디세우스, 최척과 옥영, 최부, 장한철, 문순득에게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모두 오랜 여정에서 고난과 모험을 겪은 뒤 끝내 고향으로 돌아왔다는 거예요. 긴 여행을 마친 모든 사람이 그렇듯, 길을 떠나기 전과는 무척 달라진 삶을 살게 됐을 것입니다. 많은 경우 여행이란 깨달음과 성찰의 시간을 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