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숨어있는 세계사] 쌀 부족으로 난리났던 일본, 이번엔 너무 많아 문제래요
입력 : 2026.09.02 03:30
식량 소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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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난해 서울의 한 대형 마트에서 일본 관광객들이 한국 쌀을 살펴보고 있습니다. 작년 일본에선 쌀값이 급등하는 일이 있었는데, 올해는 쌀 재고가 늘며 가격 하락을 걱정한다네요.
올해는 상황이 180도 바뀌었습니다. 막대한 비축미가 공급된 가운데, 농민들은 쌀 생산을 늘리고 시민들은 소비를 줄이며 쌀 재고가 급증한 겁니다. 지난 6월 말 기준으로 쌀 재고는 약 243만t으로 역대 최고 수준을 기록했다고 해요. 농민들을 중심으로 '가격이 더 크게 떨어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커졌고, 결국 일본 정부는 비축미를 다시 사들이기로 했습니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가뭄이나 홍수로 수확량이 줄어드는 흉작을 식량 위기의 원인으로 생각하는데요. 그러나 역사를 살펴보면 너무 많이 생산된 농산물도 경제·정치적 위기를 불러오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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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1차 세계대전이 벌어졌던 1917년 미국에서 발행된 포스터입니다. '연합국에는 밀이 필요하다'는 내용이 적혀 있어요. 당시 미국 정부는 농민들에게 생산을 늘리라고 독려했습니다.
제1차 세계대전(1914~1918)이 일어나자 미국 농업은 전례 없는 호황을 맞았습니다. 유럽이 전쟁터가 되면서 토지가 황폐해지고 농부들은 징집돼 유럽 농가가 일손 부족에 시달렸거든요. 유럽은 밀·설탕 등 부족한 식량을 미국에서 구했습니다. 미국 정부도 농민들에게 생산을 늘리라고 독려했습니다. 미국 농민들은 경작지를 늘렸고, 대출을 받아 농기계를 구입했지요.
하지만 1918년 전쟁이 끝나고 유럽의 농업 생산력이 점차 회복되면서 미국산 농산물에 대한 수요가 줄었습니다. 높은 곡물 가격이 이어질 것이라 예상했던 미국 농민들은 이미 많은 빚을 진 상태였어요. 트랙터 보급으로 더 넓은 땅을 경작할 수 있게 됐지만, 생산량이 늘어날수록 농산물 가격은 떨어졌습니다. 1919년 미국 미네소타주의 옥수수 가격은 1부셸(약 35.24L)당 1달러 30센트에서 이듬해 47센트로 폭락했습니다. 농민들은 빚을 갚으려고 더 많이 생산했는데요. 생산량이 늘어나자 가격은 다시 내려가는 악순환에 빠졌습니다. 일부 농가는 옥수수를 시장에 팔지 않고 난방 연료로 쓰기도 했습니다. 1930년대 초 일부 지역에서는 옥수수 1부셸의 가격이 8~10센트까지 내려갔습니다.
먹을 것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너무 많이 생산돼 농민들이 파산하는 상황이 벌어진 것이죠. 농민들이 대출을 갚지 못하면서 지방 은행들이 취약해졌고 농촌의 구매력이 감소해 미국 경제의 불균형도 커졌어요. 1929년 주가 폭락으로 대공황이 발생했는데, 1920년대에 이미 농촌에서는 대공황이 시작됐다고 보는 시각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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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880년대 브라질 한 커피 농장의 노예들입니다. 브라질은 세계 최대 커피 수출국이었고, 커피 농장 지주들은 정치·경제·사회적으로 막강한 권력을 행사했습니다.
19세기 중반 세계 최대 커피 수출국이었던 브라질은 20세기에 들어서는 세계 커피 생산량의 약 80%를 차지했습니다. 브라질 경제는 커피에 크게 의존했습니다. 브라질 커피 농장의 지주들은 정치·경제·사회적으로 막강한 권력을 갖게 됐어요. 이들의 정치적 영향력으로 정부는 커피 재배를 장려하고 신용 대출을 제공했습니다. 커피 연구를 위한 기관까지 설립했어요. 그런데 높은 가격을 기대한 농장주들이 생산을 계속 늘리면서 팔리지 않는 커피가 쌓이기 시작했습니다. 결정적인 충격은 대공황이었습니다. 당시 주로 미국과 유럽에서 브라질 커피를 사들였는데요. 세계 각국의 소득과 소비가 감소하면서 커피 수요가 줄고, 가격은 폭락했습니다.
커피 수출에 의존하던 브라질 경제는 큰 타격을 입었습니다. 커피 농장주를 기반으로 정권을 유지하던 기존 정치 세력은 위기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고, 이런 혼란 속에서 제툴리우 바르가스(1882~1954)가 1930년 군부 쿠데타를 통해 집권했습니다. 바르가스 정부는 커피 가격을 안정시키기 위해 농민들이 팔지 못한 커피를 사들였습니다.
그러나 저장 공간에는 한계가 있었습니다. 결국 정부는 남아도는 커피를 불태우는 방법을 선택했습니다. 1931년부터 1944년까지 폐기된 커피는 460만t에 달했던 것으로 추산됩니다. 커피 폐기는 단순한 낭비가 아니라 공급량을 줄여 가격과 농업 고용을 지키려 한 국가의 대규모 시장 개입이었습니다. 커피 위기는 브라질의 정치와 경제 구조를 바꾸기까지 했습니다. 바르가스 정부는 커피 농장주에게 크게 의존했던 기존 체제에서 벗어나 중앙정부의 권한을 강화하고 공업화를 추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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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년 1월 인도의 한 양파 상인이 양파 더미 위에서 쉬고 있습니다. 전년인 2018년 양파가 시장에 대량으로 나오며 양파 가격이 폭락하는 일이 있었습니다. /박성원 기자·위키미디어 커먼스
인도에서는 "양파가 정권을 흔든다"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양파 가격이 중요합니다. 양파는 거의 모든 계층이 매일 먹는 기본 식재료이기 때문에 가격이 오르면 국민이 물가 상승을 바로 체감하거든요. 실제 1980년 총선에서는 인디라 간디(1917~1984)가 양파 가격 폭등에 대한 국민의 불만을 활용해 표심을 얻어 승리했습니다. 1998년 델리주 의회 선거에서는 양파 가격 폭등을 통제하지 못한 집권당이 크게 패했습니다.
양파 가격이 높았을 때만 문제가 된 건 아니었습니다. 2018년에는 전년도에 수확한 양파가 다 팔리기도 전에 새로운 양파가 시장에 대량으로 나오며 가격이 폭락했습니다. 양파 1㎏을 생산하는 데 약 8루피가 들었지만 거래 가격은 1루피까지 내려갔어요. 농민들은 쉽게 썩는 양파를 헐값에 팔아야 했습니다. 일부 농민은 도로에 양파를 쏟아 버리며 항의했습니다. 전국 각지에서 크고 작은 시위가 잇따랐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