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재밌다, 이 책] 조선 시대 김정호가 만든 '대동여지도', 현대 지도에도 크게 뒤지지 않는대요

입력 : 2026.08.31 03:30

하늘과 땅과 사람의 과학

[재밌다, 이 책] 조선 시대 김정호가 만든 '대동여지도', 현대 지도에도 크게 뒤지지 않는대요
김연희 지음|출판사 이음|가격 2만2000원

우리 전통 과학은 서양의 근대 과학과 달랐습니다. 수식(數式)으로 정리한 공식이나 법칙, 실험실의 데이터와 거리가 멉니다. 한국 과학사를 연구하는 저자에 따르면, 과학을 지식과 기술의 발전으로만 본다면 전통 과학을 이해하기 힘듭니다. 대신 사람들이 세계를 이해하고 삶을 꾸려온 방식으로 보아야 합니다. 연구실의 과학 이론이 아니라 삶 속의 과학 실천이지요. 이 책은 하늘을 관측한 천문, 땅을 그려낸 지리, 몸을 지켜낸 의학을 살핍니다.

전통 천문학에서는 역법(曆法), 즉 달력이 매우 중요했습니다. 달력이 정확해야 계절 순환에 맞게 농사를 지을 수 있고, 절기에 맞춰 백성들이 생활할 수 있으니까요. 세종 시대 학자들은 원나라의 수시력(授時曆)을 연구해 조선의 한양을 기준으로 한 천체 운행 및 위치 계산법을 개발했습니다. 한양에서 북극 고도를 정확히 측정하는 기구들도 제작했습니다. 이후 조선은 독자적으로 천문을 연구하며 달력을 꾸준히 펴냈습니다. 외국에서 그들이 본 하늘이 아니라 우리 땅에서 우리가 본 하늘을 연구한 것입니다.

조선 초기 대표적인 지도는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입니다. 태종 임금 시기인 1402년 제작된, 당시 가장 뛰어난 세계 지도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이슬람의 영향을 받은 중국 지도들은 물론, 일본 지도도 참조해 전 세계를 담았습니다. 김정호가 1861년 만든 '대동여지도'는 조선 지도학의 전통과 성과를 집대성한 결과입니다. 김정호는 이 지도가 국가 운영과 국방에 쓸모가 많으리라 기대했습니다. 그는 근대적 측량 기술을 알지 못했지만, '대동여지도'는 첨단 기술로 제작한 현대 지도에 크게 뒤지지 않습니다.

고려는 현종 시기인 1018년 지방 주요 지역에 의사를 파견하고, 인구수에 따라 약국을 설치했습니다. 지방 사람들도 의약 혜택을 누리게 됐습니다. 이어 1226년 편찬된 '어의촬요방'은 위급할 때 쓸 수 있는 처방을 모은 책입니다. 서문엔 '이 책을 통해 신분과 경제적 능력이 떨어지는 만백성의 생명을 구하고자 한다'고 적혔습니다. 정약용은 1798년 홍역 치료법을 정리한 '마과회통'을 썼습니다. 홍역은 자주 유행하면서 많은 사람을 괴롭힌 역병이었습니다. 역병에서 백성을 구제하는 일이 의학의 중요한 역할이었습니다.

우리 조상들은 생산을 풍요롭게 하려 하늘을 관측하고 달력을 만들었습니다. 문화적 자부심을 떨치고 국가를 잘 다스리기 위해 지도를 만들었습니다. 사람들의 생명을 지켜내려고 의약을 개발하고 보급했습니다. 이것을 통틀어 저자는 '세상을 널리 이롭게 하는 과학'이라고 말합니다. 우리 전통 과학이 중요하게 여긴 것은 우리 풍토와 생활에 맞게 독자적으로 탐구한 과학 지식, 더 많은 사람을 위한 더 정확하고 더 쓸모가 많은 과학 기술입니다.

표정훈 출판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