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뉴스 속의 한국사] 백성 피해 부른 가짜 뉴스, 조선에선 중죄로 다스렸대요

입력 : 2026.08.27 03:30

가짜 뉴스

먼 옛날에도 가짜 뉴스가 있었다고 하면 믿어지실까요? 각종 소문 중엔 사실인 것도 있었지만, 거짓말이 섞인 경우도 많았습니다. 물론 현대의 가짜 뉴스와 조선 시대 등 옛날의 여러 소문을 똑같은 것으로 보기는 어려워요. 하지만 사실인지 아닌지 제대로 검증되지 않은 이야기가 널리 퍼져 사람들의 마음을 뒤흔들고, 결국 진짜 피해를 만들기까지 했다는 점은 많이 닮아 있지요.

임진왜란 당시 피란길에 오른 선조 임금 행렬을 담은 일본 그림입니다. 임금이 한양을 떠나자 민심이 흉흉해졌고, '조선이 전부 점령당했다' 등 소문이 백성 사이에서 돌았다고 해요. /위키피디아
임진왜란 당시 피란길에 오른 선조 임금 행렬을 담은 일본 그림입니다. 임금이 한양을 떠나자 민심이 흉흉해졌고, '조선이 전부 점령당했다' 등 소문이 백성 사이에서 돌았다고 해요. /위키피디아
거짓 소문으로 달라진 운명

소문에는 여러 가지가 있었습니다. 귀신이나 요괴에 관한 이야기도, 세상의 변화를 예언하는 이야기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소문이 모두 좋은 것은 아니었습니다. 때로는 진실이 아닌 것이 사실처럼 알려져 피해자가 나오기도 했습니다.

신라의 선화공주를 '가짜 뉴스 피해자'로 볼 수도 있을 것입니다. 삼국유사에 따르면, 훗날 백제 무왕이 된 서동이 선화공주와 결혼하려 거짓 정보를 퍼뜨렸기 때문입니다. 신라로 건너간 서동은 동네 아이들에게 '선화공주가 서동과 사랑을 나누는 사이다'라는 거짓 내용을 담은 노래(서동요)를 부르게 했지요. 소문이 돌자 선화공주는 결국 궁에서 쫓겨났고, 서동이 공주를 집으로 데려와 아내로 삼았다는 이야기예요. 입소문에 선화공주는 왕에게 미움을 받게 됐고, 운명도 달라진 셈이죠.

시간이 흘러 고려가 망하기 직전, 아이들은 '자두나무에서 꽃이 핀다'라는 노래를 부르고 다녔다고 합니다. 이후 조선이 건국되고 이(李)씨 이성계가 왕위에 올랐는데, '李'는 자두나무를 뜻합니다. '자두나무 꽃'은 미래를 점친 소문이었던 겁니다.

유언비어들이 걷잡을 수 없이 퍼지자 선조는 민심을 달래려 한글 문서인 '선조국문유서'(사진)를 백성에게 내렸습니다. '명나라가 곧 도움을 줄 것' 등 내용이 담겼어요. /국가유산포털
유언비어들이 걷잡을 수 없이 퍼지자 선조는 민심을 달래려 한글 문서인 '선조국문유서'(사진)를 백성에게 내렸습니다. '명나라가 곧 도움을 줄 것' 등 내용이 담겼어요. /국가유산포털
전쟁 중 유언비어로 흉흉해진 민심

조선 시대로 접어들어서도 유언비어, 소문은 여전했습니다. 조선 역사에서 유언비어가 가장 심각한 문제를 일으켰던 시기는 임진왜란 때였습니다. 전쟁이 시작되고 조선군은 일본군에 연이어 패했고, 선조 임금은 북쪽으로 몽진(蒙塵·임금이 난리를 피해 떠남)했습니다. 그러자 흉흉한 유언비어가 퍼졌습니다. '다른 지역은 전부 일본군에 점령당했고 그곳 사람들은 모두 죽임을 당했다' '왕이 이미 중국으로 도망쳤다' 등 이야기가 돌았습니다. 여러 소문 중 대부분은 사실이 아니었지만, 사람들은 몹시 불안해했고 희망을 잃어갔습니다.

조선 왕조는 백성들을 안심시키기 위해 여러 방법을 동원했습니다. 그중 하나가 임금이 내린 한글 문서인 '선조국문유서'였습니다. 양반뿐 아니라 모든 백성이 보도록 한문이 아닌 한글로 썼습니다. 유언비어를 듣고 두려워하는 백성들을 위로하는 내용입니다. 민심을 달래려 한 것이죠. 또 어쩔 수 없이 일본군에 붙들려 간 백성은 죄를 묻지 않고, 중요한 정보를 가져오면 상을 내리고 벼슬을 주겠다는 내용도 적혔습니다. '중국 명나라가 도움을 줄 것'이라는 내용까지 담겼어요. 이 문서가 실제로 백성들을 안심시켰는지는 알기 어렵습니다. 다만 당시 조정이 소문을 내버려두지 않았다는 것과 백성이 무엇을 믿느냐가 실제 전투만큼이나 중요하다고 인식했다는 점도 알 수 있습니다. 이후 조선 곳곳에서 의병이 일어나 일본군에 맞섰습니다. 명나라 도움으로 반격에 성공했습니다.

태종실록 중 '문가학을 체포해 옥에 가뒀다'는 내용이 담긴 부분입니다. 그는 자신이 마음대로 하늘에서 비를 내리게 할 수 있다고 말했고, 실제 이를 믿는 사람도 많았대요. /조선왕조실록
태종실록 중 '문가학을 체포해 옥에 가뒀다'는 내용이 담긴 부분입니다. 그는 자신이 마음대로 하늘에서 비를 내리게 할 수 있다고 말했고, 실제 이를 믿는 사람도 많았대요. /조선왕조실록
"온갖 병을 낫게 하는 신이 있다"

전쟁이 없었을 때도 이상한 소문은 사람들 사이에 널리 퍼지곤 했습니다. 태종 때 문가학이란 사람은 가뭄 상황에서 자신이 마음대로 하늘에서 비를 내리게 할 수 있고, 귀신 병사들을 부릴 수 있다고 자랑하고 다녔습니다. 세종 때는 자신이 부처를 만났다고 말하는 뱃사공이 있었고, 헌종 때는 돌부처가 스스로 움직였다는 소문이 돌았습니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자기가 신이라고 떠벌리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많은 사람이 이걸 믿어 큰 소동이 벌어지기도 했어요. 영조 때인 1758년, 황해도의 무녀 영매는 자기가 살아 있는 신이라고 주장했고, 인근의 무당들은 영매에게 압도당해 그녀를 따랐습니다. 백성들은 영매가 온갖 병을 낫게 한다며 관리들에게 그녀를 잡아가지 말아 달라고 부탁하기도 했습니다. 기적을 바라는 백성들이 영매를 따라다니며 신처럼 모셨고, 심지어 병사들마저 그녀를 따랐습니다. 조선 왕조는 한동안 이 소동을 진압하느라 진땀을 흘렸습니다. 조선 후기로 접어들 때에는 '이제 조선이라는 나라가 쇠약해졌으니 망하고 새로운 나라가 들어선다'는 예언이 나오며 여러 번 소동이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노력에도 좀처럼 잡히지 않은 소문들

조선 왕조는 다양한 방법으로 대응했습니다. 성종 때부터 천문과 땅의 기운을 예언하는 책들을 백성들이 보는 걸 금지했습니다. 천문을 관측하는 사람들에겐 말을 조심하라고 당부했고요. 하늘에서 혜성이나 별똥별 등 특별한 현상이 나타나면 사람들이 두려워하고 요언(妖言·인심을 혼란하게 만드는 요사스러운 말)이 만들어졌기 때문입니다.

조정의 공식 정보를 전달하기 위한 대책도 마련했어요. 우선 관보를 활용해서 소식을 전했어요. 또 중요한 일이 있을 때면 왕이 직접 윤음(綸音·임금이 내리는 말)을 내려 자신의 생각을 전했습니다. 한편으로 가짜 뉴스를 근절하기 위해 유언비어를 퍼뜨리는 사람을 법에 따라 중죄로 다스렸습니다. 처형하거나 추방하기도 했어요. 또 자신이 누구인지 밝히지 않고 몰래 투고하는 익명서는 아예 내용을 보지 않고 태워버리는 게 원칙이었습니다. 자신의 이름을 드러내지도 못한 글은 남을 험담하기 위한 것이라 여긴 겁니다.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조선은 거듭 가짜 뉴스에 시달렸고 백성이 피해를 보는 일이 반복됐습니다. 옛 조선 사람들도 소문을 조심했지만 쉽사리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특히 전쟁이나 가뭄·홍수·전염병 등 재난이 닥치면 사람들은 더욱 불안해했고 그럴수록 검증되지 않은 이야기는 더 빨리 퍼졌습니다.

어쩌면 오늘날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정보를 전달하는 수단은 이제 인터넷과 소셜미디어(SNS)로 바뀌었지만, 사람들의 불안한 마음은 때로 진실보다는 자신이 믿고 싶어 하는 이야기로 기울어지기 마련입니다. 결국 가짜 뉴스와 싸우는 방법은 새로운 기술이 아니라 들은 이야기를 한 번 더 의심하고 확인하는 태도인지도 모릅니다. 쉽지는 않겠지만 말입니다.
이한 작가·'한잔 술에 담긴 조선' 저자 기획·구성=김민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