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숨어있는 세계사] 2000년 버틴 로마 다리… 비결은 화산재 콘크리트죠
입력 : 2026.08.26 03:30
로마의 건축
유럽 곳곳이 극심한 가뭄으로 신음하고 있습니다. 이탈리아도 마찬가지인데요. 최근 가뭄으로 수도 로마를 관통하는 테베레강 수위(물의 높이)가 낮아지기까지 했어요. 그런데 이 과정에서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먼 옛날 만들어진 다리가 모습을 드러낸 겁니다. '네로의 다리'라고 불리는 이 다리는 서기 39년에도 이미 존재했던 것으로 학계는 보고 있어요. 오늘날 아파트나 교량의 콘크리트 수명을 50~200여 년으로 보는데, 이 다리는 약 2000년을 버틴 겁니다. 오늘은 로마의 건축물이 유독 튼튼했던 이유와, 눈여겨볼 건축물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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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근 극심한 가뭄으로 이탈리아 로마의 테베레강 수위가 낮아지며 약 2000년 전 존재했던 ‘네로의 다리’가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콘크리트는 시멘트에 모래와 자갈 등을 섞고 물에 반죽한 혼합물을 말합니다. 고대 로마의 건축이 있게 한 가장 위대한 발명품이라고 할 수 있어요. 학자들은 로마인들이 기원전 3세기 무렵부터 콘크리트를 본격적으로 사용했다고 봅니다. 사실 그전에도 콘크리트에 자갈을 섞지 않은 '모르타르'라는 재료나 시멘트가 여러 용도로 건축에 사용됐어요.
로마의 콘크리트는 천연 화산재인 '포졸라나'를 사용했다는 점에서 다른 재료와 달랐습니다. 당시 나폴리 인근의 베수비오 화산에서 포졸라나를 구할 수 있었거든요. 굵은 모래알처럼 생긴 포졸라나, 석회, 물을 혼합한 뒤 깨진 돌이나 타일 조각을 넣어 콘크리트를 완성했습니다. 연구에 따르면 포졸라나를 사용한 콘크리트는 일종의 '자가 치유' 능력을 갖추고 있다고 해요. 균열이 생겨도 스스로 그 공간을 메우는 능력이 있어서 일반적인 콘크리트보다 더욱 강하다는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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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로마의 수도교입니다. 고대 로마인들은 뛰어난 건축 기술로 수도교를 만들었고, 체계적인 물 공급망도 갖췄습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기술이 사용된 로마의 공공 건축물에는 무엇이 있을까요? 우선 수도교(水道橋)가 있어요. 수도교는 하천이나 도로 위를 가로지르는 상하수도를 받치기 위해 만든 다리를 말해요.
로마 사람들은 적극적으로 물을 구했습니다. 멀리 떨어진 산속의 물을 도심으로 끌어와 사람들에게 공급했습니다. 기원전 시기부터 만들어진 로마 시내 수도망의 총길이는 수백 km에 달했어요. 이를 뒷받침한 게 바로 수도교입니다.
수도를 통해 공급된 물은 생활용, 상업용으로 쓰였고, 시내의 분수대 591곳으로도 공급됐습니다. 시민들은 여기서 공짜로 물을 퍼갈 수 있었대요. 체계적으로 물을 공급하면서, 수질 검사도 꼼꼼히 했어요. 샘물이나 수원지 근처에서 키우는 소가 그 물을 마시고 깨끗하고 질 좋은 우유를 만들면 좋은 물이라 판단했어요. 물의 투명도, 맛, 온도, 냄새 등도 따졌습니다. 물을 마시는 지역 사람들의 건강 상태도 점검했고요.
하지만 서로마 제국(395년 동로마와 갈라진 뒤 476년 멸망)이 쇠락하면서 로마에 침입한 적군이 군사적 목적으로 수도를 폐쇄하기도 했고, 반대로 로마군이 적이 수도를 쓰지 못하게 하려 일부러 단절시키는 일도 있었어요. 결국 훼손되는 수도가 많아졌어요. 전쟁으로 도시 인구가 줄면서 물 수요 역시 줄었고요. 로마의 수도는 큰 타격을 입었고, 이후 점점 시간이 흐르며 수도를 통한 물 공급은 줄어듭니다. 하지만 여전히 학자들은 먼 옛날 로마의 물 공급 시스템에 감탄하기도 하고, 특히 로마 기술로 유럽 곳곳에 만든 수도교 중 지금도 그 형태를 잘 갖추고 있는 것이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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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로마 카라칼라 대형 목욕장입니다. 서기 216년 문을 열었대요.
이어 살필 건축물은 '목욕장'입니다. 로마인들은 목욕을 즐겼고, 공중목욕장으로 많은 양의 물이 공급됐습니다. 로마의 장군이자 정치가였던 아그리파(기원전 63~기원전 12)가 처음 대형 공중목욕탕을 지었고, 이후 많은 황제들이 너도나도 대규모 목욕장을 만들었습니다.
그중에서 가장 유명하고 잘 알려진 것은 로마 21대 황제 카라칼라(188~217)가 세운 목욕장이에요. 216년 개장했는데, 당시까지만 하더라도 로마 사상 최대 규모를 자랑했대요. 고대 로마에서는 아무리 가난한 사람이라도 부자들과 똑같이 공중목욕장에서 목욕을 즐길 수 있었어요. 입장료가 매우 저렴하거나 아예 없었기 때문이에요. 특히 카라칼라 목욕장은 목욕뿐 아니라 경기장, 운동 시설, 산책로 등이 갖춰져 있었고 예술품도 감상할 수 있었습니다. 일종의 복합 문화 시설이었던 셈이죠. 이곳에서 사람들은 신분, 나이, 직업에 관계없이 새로운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카라칼라 목욕장은 한 번에 1600명을 수용할 수 있었대요. 이후에도 이러한 대규모 목욕장은 더 건설됐지만, 수도와 운명을 같이했어요. 로마 제국이 패망의 길로 접어든 후 수로 관리를 제대로 하지 못하는 바람에 목욕장도 그 기능을 잃어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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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프랑스 남부의 아를 원형 경기장입니다. 로마식 경기장인 이곳은 건설된 지 약 2000년이 지난 오늘날까지 실제 사용되고 있답니다. /AFP 연합뉴스·위키피디아
로마인들은 스포츠와 경기에 열광했어요. 고된 일상에서 생기는 스트레스를 풀 수 있는 창구였기 때문입니다. 로마인들은 튼튼한 콘크리트와 곡선 형태의 '아치 공법'을 결합해 수만 명을 수용하는 거대한 원형 구조물을 세워 올렸어요. 콘크리트 기둥은 무거운 석조 객석을 견고하게 떠받쳤습니다.
이런 로마식 원형 경기장을 완벽하게 보여주는 대표적 예가 프랑스 남부의 '아를 원형 경기장'입니다. 90년경 지어진 이 경기장은 관중 약 2만1000명을 수용했다고 해요. 아를 경기장의 진가는 시간이 흐르며 더욱 빛났습니다. 중세 시대에는 외벽의 단단함 덕분에 요새로도 활용됐습니다. 놀랍게도 2000년이 지난 오늘날까지 여전히 대형 콘서트와 투우 경기장으로 실제 사용되고 있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