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뉴스 속 신화] 눈 찔리고도 "아무도 날 해치지 않아" 외친 까닭은?

입력 : 2026.08.24 03:30

영화 오디세이, 원작과 다른 점

헤르메스가 칼립소에게 오디세우스를 떠나보내라고 명령하는 장면을 담은 그림입니다. 유럽 화가 제라르 드 레레스(1641~1711)가 그렸습니다. /위키미디어 커먼스
헤르메스가 칼립소에게 오디세우스를 떠나보내라고 명령하는 장면을 담은 그림입니다. 유럽 화가 제라르 드 레레스(1641~1711)가 그렸습니다. /위키미디어 커먼스
이달 초 개봉한 영화 '오디세이' 관객 수가 700만명을 돌파했습니다. 1000만 관객을 넘어설 것이란 기대도 나오고 있어요. 영화가 인기를 끌며 자연스럽게 원작 '오디세이아'에 대한 관심도 커지고 있는데요. 오디세이아는 기원전 8세기경 그리스 시인 호메로스가 썼어요. 그런데 2800여 년 전 작품을 현대의 영화로 만들려면 원작을 시대에 걸맞게 바꿀 수밖에 없어요. 영화는 원작과 다른 점이 아주 많답니다. 오늘은 그중에서 몇 가지를 간추려 살펴보겠습니다.


사라진 신의 역할

영화에서는 신이 거의 등장하지 않습니다. 신화를 믿지 않는 요즘, 신이 사건을 주도하면 개연성이 떨어지기 때문이에요. 가끔 나타나는 아테나도 사건에 전혀 개입하지 않아요. 오디세우스의 대화 상대일 뿐입니다. 또 원작에서 바다의 신 포세이돈은 외눈박이 아들 폴리페모스의 눈을 못 쓰게 한 오디세우스에게 분노해 엄청난 폭풍우를 일으켜 그의 귀향을 방해합니다. 하지만 영화에서는 폴리페모스가 오디세우스에게 눈을 잃은 직후 아버지 포세이돈의 이름을 부르며 복수를 간청할 뿐입니다.

또한 원작에서 전령의 신 헤르메스가 오디세우스에게 나타나 그의 부하들을 돼지로 만든 마녀 키르케를 제압할 방법을 일러줘요. 하지만 영화에서는 오디세우스가 새장에 갇혀 있는 까마귀를 활용해 키르케를 제압합니다. 또 원작에서는 제우스가 7년 동안이나 오디세우스를 붙들고 있던 요정 칼립소에게 헤르메스를 보내 그를 고향으로 보내주라고 명령해요. 하지만 이 역시 영화에선 볼 수 없지요.


삭제된 오디세우스의 기지

원작의 내용이 워낙 방대한 터라 영화에서 미처 언급하지 못한 내용이 꽤 많습니다. 가령 오디세우스는 외눈박이 폴리페모스의 동굴에 들어갈 때 타고 온 배를 해안에 숨겨둔 채 부하 12명만 데려갑니다. 이후 그들은 동굴에 갇힌 채 폴리페모스에게 끼니마다 2명씩 잔인하게 잡아먹히는데, 세 번째 식사 때 오디세우스는 그에게 포도주를 권합니다. 그걸 마신 폴리페모스는 너무 맛있다며 두 잔이나 연거푸 마시더니 오디세우스에게 이름을 묻습니다. 그 이유를 묻자, 폴리페모스는 맛있는 음료를 준 대가로 맨 나중에 잡아먹을 생각이라고 답해요. 오디세우스는 이때 자신의 이름을 '우티스'라고 말해줍니다. 우티스는 '아무도 아니다'라는 뜻이에요. 그리고 폴리페모스는 뒤로 벌렁 드러눕더니 코를 골며 잡니다.

이때를 노리고 만반의 준비를 해두었던 오디세우스는 부하들과 함께 미리 끝을 뾰족하게 깎아 가축 분뇨 더미에 숨겨두었던 올리브나무를 꺼내 그의 눈을 찌릅니다. 잠자다 허를 찔린 폴리페모스가 비명을 질러요. 그 소리를 듣고 근처 동굴에 살던 다른 외눈박이들이 그의 동굴 앞으로 달려와, 무슨 일이냐고 묻는데요. 폴리페모스는 "우티스가 나를 죽이려 해!"라고 외칩니다. 동료들은 투덜대며 돌아가요. 폴리페모스의 대답은 결국 "아무도 나를 죽이려 하지 않아!"라는 문장이 되기 때문입니다.

오디세우스가 동굴을 탈출할 때도 영화에서처럼 등에 풀단을 매고 동굴 문턱에 앉아 양들의 등을 검사하던 폴리페모스의 손아귀를 빠져나온 게 아니에요. 원작에서는 숫양 세 마리를 서로 묶은 다음 부하들을 숫양 배에 매달리게 해서 탈출시키고, 자신은 우두머리 숫양 배에 매달려 탈출합니다.

오디세우스는 원작에서 20년 만에 궁전 앞 거름더미에서 죽음을 앞둔 충견 아르고스를 만나고도 자신의 정체가 탄로 날까 봐 아는 체를 하지 않습니다. 그가 눈물을 머금고 그 옆을 지나가자 녀석은 바로 숨을 거둬요. 마치 잠시 죽음을 미루고 주인을 기다린 듯해요. 하지만 영화에서 오디세우스는 녀석의 죽음을 목도하고 머리를 쓰다듬어주다가 우연히 그 광경을 지켜보던 텔레마코스에게 녀석을 처음 발견한 절벽에 묻어주라고 부탁합니다. 바로 그 순간 텔레마코스는 그가 바로 자신의 아버지임을 직감해요.

또 오디세우스를 배반하고 구혼자들 편에 선 멜란티오스는 원작에서는 염소치기지만, 영화에서는 소몰이로 나와요. 오디세우스의 하인 에우마이오스는 원작에서는 궁전 밖 농장에서 돼지를 키우지만, 영화에서는 시각장애인으로 돼지치기이자 동시에 궁전 집사입니다.

유모가 오디세우스를 알아보는 흉터도 원작에서는 그가 어렸을 적 외갓집에 놀러 갔을 때 삼촌들과 사냥하다가 멧돼지의 엄니에 받혀 허벅지에 생기는데, 영화에서는 트로이로 떠나기 전 이타카에서 사냥하다가 발목에 생깁니다.


영웅의 이면

오디세우스에 대한 평가가 늘 긍정적이지만은 않았습니다. 훗날 그를 잔인한 정치가로 평가한 이들도 있었어요. 트로이를 함락한 후 포로로 잡힌 트로이 맹장 헥토르의 어린 아들 아스티아낙스를 죽여야 한다고 주장한 이는 바로 오디세우스예요. 후환을 없애려면 살려 둬서는 안 된다는 겁니다. 아스티아낙스는 결국 어머니가 보는 앞에서 불타는 트로이 성벽에서 아래로 내던져져 죽습니다. 오디세우스는 또 전사 아킬레우스의 죽음의 원인이 된 폴릭세네(트로이 왕의 딸)를 제물로 바쳐 아킬레우스의 혼령을 달래야 한다고 주장했고, 결국 그녀도 죽게 됩니다.

영화에서 오디세우스는 인간적 모습을 보입니다. 목마를 이용해 트로이를 함락시키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자신의 행동을 결코 자랑스럽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자신을 수많은 애먼 젊은이를 죽음에 빠뜨리고 찬란한 트로이 문명을 잔인무도하게 파괴한 공범자로 인식하고, 영화 내내 반복해서 반성합니다. 전쟁과 갈등으로 세계 곳곳이 신음하는 요즘, 오디세우스가 성찰하는 인물로 그려지고 있기에 영화 '오디세이'가 세계인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다는 분석도 나옵니다. 
김원익 홍익대 문과대학 교수·사단법인 세계신화연구소장 기획·구성=김민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