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꼭 읽어야하는 고전] 궁금한 건 뿌리까지 캐보라 강조했어요

입력 : 2026.08.20 03:30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

[꼭 읽어야하는 고전] 궁금한 건 뿌리까지 캐보라 강조했어요
정약용 지음|박석무 편역|출판사 창비|가격 2만원

1810년, 전남 강진 유배지에 있던 정약용에게 낡은 다홍치마가 전해졌습니다. 부인 홍씨가 시집올 때 입었던 것으로 유배지에 있는 남편을 향한 애틋한 그리움과 변함없는 마음을 전하기 위해서였죠. 오랜 세월이 지나 붉은빛은 바랬지만 정약용은 그것을 버릴 수 없었습니다. 치마를 잘라 작은 서첩을 만들고 두 아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말을 적었습니다. 3년 뒤에는 남은 천에 매화와 새를 그려 시집가는 딸에게 보냈습니다. 유물 '하피첩'과 '매조도'입니다.

이 낡은 치마에는 뿔뿔이 흩어진 한 가족의 사연이 담겨 있습니다. 1801년 신유박해로 정약용의 집안은 큰 화를 입었습니다. 형 정약종은 처형되고, 정약전과 정약용은 유배됐습니다. 정약용은 이후 18년 동안 가족과 떨어져 살았고, 두 아들의 벼슬길은 막혔습니다.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는 이 시절 정약용이 두 아들과 형 정약전, 제자들에게 보낸 글을 우리말로 옮겨 엮은 책입니다. '목민심서' 같은 저술에서는 위대한 사상가의 얼굴이 먼저 보이지만, 여기서는 가족의 끼니와 건강을 걱정하고 자식의 공부법에 참견하는 인간 정약용이 그대로 모습을 드러냅니다. 둘째 아들이 닭을 기른다고 하자 책에서 사육법을 찾아보고, 닭이 앉는 횃대도 달리 만들어 시험해 보라고 합니다. 일종의 '닭 백과사전'을 만들어 보라고 권하기도 합니다. 또 모르는 글자 하나가 나오면 뜻만 대충 알고 넘어가지 말고 여러 책을 뒤져 그 뿌리까지 캐보라고 합니다. 궁금한 것을 그냥 지나치지 않고 끝까지 파고드는 태도를 중요하게 여긴 것이지요.

닭을 기르는 일도, 모르는 글자 하나도 정약용에게는 배움의 재료가 됐습니다. 유배로 조선의 정치와 학문의 중심에서는 밀려났지만, 그의 공부는 오히려 세상을 향해 더 넓어졌습니다. 많이 아는 사람이 되는 것보다 계속 궁금해하고 배울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 정약용이 보여주는 공부는 이쪽에 더 가깝습니다.

정약용은 거창한 사랑의 말보다 사소한 당부를 통해 다정함을 드러냅니다. 그는 아들들에게 어머니 방이 추운지 살피고 요 밑에 직접 손을 넣어 보라고 합니다. 차가우면 종에게 시키지 말고 직접 불을 때라고 하지요. 물론 효와 가문, 사대부의 도리를 강조하는 몇몇 대목은 오늘의 독자에게 낯설고 답답하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그의 말을 그대로 정답처럼 받아들일 필요도 없습니다. 다만 이 오래된 편지를 오늘의 눈으로 다시 읽고 그 의미를 곱씹는 건 흥미롭습니다. 다시 처음의 다홍치마를 떠올려 볼까요. 한때 혼례복이었던 천은 가족이 흩어진 뒤 아들들에게 생각을 전하는 서첩이 됐고, 딸의 새 출발을 축복하는 그림이 됐습니다.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도 이와 닮았습니다. 200년 전 가르침을 그대로 보관해 둔 책이 아니라, 읽는 사람과 시대가 달라질 때마다 다른 생각을 불러내는 책입니다. 
이진혁 출판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