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재미있는 과학] 성가신 초파리, 유전•질병 연구 돕는 과학자 동료래요

입력 : 2026.08.18 03:30

초파리

[재미있는 과학] 성가신 초파리, 유전•질병 연구 돕는 과학자 동료래요
여름철 부엌이나 식탁 위에 과일이 있으면 어느 순간부터 작은 초파리가 주변을 날아다니기 시작해요. 분명 처음에는 보이지 않았는데 한두 마리가 나타나더니 어느새 과일 주변을 맴돌지요. 방충망을 쳐 놓았는데, 성가신 초파리들은 대체 어디에서 나타난 걸까요?


과일 냄새에 끌리는 초파리

'저절로 생겨난 게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 수도 있지만, 초파리도 다른 곤충과 마찬가지로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 갑자기 생겨날 수는 없답니다. 우리가 사 온 과일이나 채소에 아주 작은 알이나 유충이 이미 묻어 있기도 해요. 또 다 자란 초파리가 집 안으로 날아들어 오기도 합니다. 몸집이 매우 작기에 우리가 문을 여닫는 사이 들어오거나 방충망이나 창문 주변의 작은 틈을 통과하기도 하지요.

그렇다면 초파리는 왜 유독 과일 주변에 모여드는 걸까요? 단순히 달콤한 과일을 좋아하기 때문만은 아니에요. 초파리가 특히 잘 익거나 상처 난 과일에서 나는 냄새를 잘 찾아내기 때문입니다. 과일 겉면에는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효모라는 작은 미생물이 살고 있어요. 과일이 너무 익거나 껍질에 상처가 나면 효모가 과일 속의 달콤한 당을 이용하기 쉬워집니다. 효모는 이 당을 분해해 에너지를 얻는데, 이 과정에서 에탄올과 이산화탄소 등이 만들어지는 것을 '발효'라고 해요. 미생물의 활동이 활발해지면서 과일에서 풍기는 냄새도 달라지는데요. 식초처럼 시큼한 냄새를 내는 아세트산, 달콤하고 과일 같은 향을 내는 에틸아세테이트 등 여러 냄새 물질이 생길 수 있어요. 초파리는 이런 냄새에 끌려 모여듭니다. 더듬이에 있는 후각 기관으로 공기 중에 퍼진 냄새 물질을 감지하는 초파리에게 시큼하고 달콤한 냄새는 마치 '여기에 먹을 것이 있어!'라고 알려주는 신호인 셈이지요.

잘 익은 과일은 초파리가 알을 낳기에도 좋은 장소예요. 알에서 깨어난 유충은 과일에서 자라는 효모와 여러 미생물을 먹으며 성장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초파리, 열흘이면 어른이 돼요

처음에는 한두 마리밖에 보이지 않던 초파리가 며칠 사이 부쩍 많아지기도 합니다. 빠른 성장 속도와 뛰어난 번식력 때문이에요. 초파리는 알, 유충, 번데기, 성충의 순서로 자라는데요. 알에서 깨어난 유충은 먹이를 먹으며 몸집을 키우고, 번데기 시기를 거쳐 날개가 달린 성충이 됩니다. 우리가 주변에서 볼 수 있는 초파리의 한 종류인 '노랑초파리'는 알맞은 환경이라면 알에서 성충이 되기까지 10일 정도밖에 걸리지 않아요.

게다가 초파리는 번식 속도도 매우 빨라요. 성충이 된 암컷은 먹이가 풍부한 곳에 알을 낳는데, 한 마리가 평생 수백 개의 알을 낳을 수 있습니다. 모든 알이 성충까지 자라는 것은 아니지만, 먹이가 충분하고 환경이 알맞다면 짧은 시간에도 초파리의 수가 빠르게 늘어날 수 있지요.


초파리, 유전의 비밀을 푸는 열쇠

우리가 한 마리라도 더 없애려고 애쓰는 성가신 초파리. 그런데 놀랍게도 이런 초파리를 정성껏 키우는 과학자들이 있답니다. 초파리는 중요한 실험 동물이기 때문이에요.

먼저, 앞서 살핀 것처럼 초파리는 빨리 자라고 알을 많이 낳기 때문에 부모의 특징이 자손에게 어떻게 전달되는지 여러 세대에 걸쳐 관찰하기 좋습니다. 몸집이 작아 좁은 공간에서도 많은 수를 키울 수 있고, 눈 색깔이나 날개 모양 등으로 쉽게 구별할 수 있어요.

초파리를 활용한 연구로 노벨상을 받은 과학자도 있어요. 미국 생물학자 토머스 헌트 모건(1866~1945)입니다. 그는 붉은 눈을 가진 초파리들 사이에서 우연히 나타난 흰 눈 초파리를 연구했습니다. 서로 다른 눈 색깔을 가진 초파리를 교배한 뒤 자손의 눈 색깔을 관찰하면서 자손에게 전달되는 특정 유전자가 염색체에 있다는 사실을 알아냈어요. 이전까지는 생물의 유전에 관해 막연한 추측이나 미신이 많았는데, 모건의 초파리 연구를 통해 유전학이 논리적인 과학으로 성장할 수 있었답니다. 모건은 1933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받았어요.

한 가지 의문이 듭니다. 사람과 초파리는 생김새가 전혀 다른데, 초파리를 연구하는 게 어떻게 사람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까요? 바로 겉모습은 달라도 몸속은 의외로 비슷한 원리로 작동하고 있기 때문이에요. 세포가 자라 분열하면서 몸의 여러 부분이 만들어지고, 신경 세포가 서로 신호를 주고받는 등 생명체가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기본 과정이 서로 비슷하답니다. 그래서 과학자들은 사람의 질병과 관련된 유전자를 연구할 때 초파리를 활용하기도 해요. 특정 유전자의 기능을 바꾼 초파리의 움직임, 성장 등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관찰해 그 유전자가 몸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지 살필 수 있어요.

이런 방법으로 오늘날에는 초파리를 암, 알츠하이머병, 파킨슨병 같은 질병의 원리를 연구하는 데 활용해요. 또 초파리에 여러 물질을 시험해 새로운 치료법이나 약물 후보를 연구하기도 해요. 물론 초파리에게 효과가 있었다고 해서 사람에게도 똑같은 결과가 나타나는 것은 아니에요. 하지만 복잡한 사람의 몸을 연구하기 전에 유전자가 어떤 일을 하는지, 질병이 어떤 과정으로 나타나는지 알아볼 수 있는 중요한 단서를 제공해 줍니다. 흔히 볼 수 있는 작고 성가신 초파리는 사실 100년 넘게 과학자들과 함께 유전과 질병, 생명의 비밀을 밝혀온 중요한 연구 동료였던 겁니다.


이동훈 작가·'대충 봐도 머리에 남는 어린이 원소 상식' 저자 기획·구성=김민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