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클래식 따라잡기] 호수·시골로 떠난 작곡가들… 휴가지가 명곡의 산실 됐죠
입력 : 2026.08.10 03:30
휴가지에서 탄생한 음악
무더운 여름철 많은 사람이 휴가를 떠납니다. 회사와 가게는 잠시 문을 닫죠. 작곡가들도 떠납니다. 작업실, 음악학교, 무대를 비우고 한적한 곳으로 향하는데, 여행 가방에 오선지를 넣고 휴가를 떠나는 이도 많습니다. 오늘은 작곡가들의 여름휴가와 휴가지에서 탄생한 작품을 알아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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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하늘에서 본 스위스 툰 호수입니다. 독일 출신 작곡가 요하네스 브람스는 여름이면 이 호수를 찾아 산책을 즐기며 곡을 썼대요.
19세기 독일 함부르크에서 태어난 요하네스 브람스(1833~1897)는 성년이 된 이후 오스트리아 빈을 중심으로 활동했습니다. 그리고 여름이 되면 도시를 떠나 휴가지로 향했죠. 1877년부터 3년 동안 매해 여름을 오스트리아 남부의 아름다운 휴양지 푀르차흐에서 지냈습니다. 이곳엔 알프스산맥을 따라 펼쳐진 뵈르터제 호수가 있는데, 신기한 에메랄드빛 물색을 자랑하는 곳이에요.
50대이던 1886년부터 3년 동안 브람스의 휴가지는 스위스의 툰 호숫가였습니다. 그곳에 방을 구해서 여름 석 달을 보냈는데, 방 안에서 알프스 봉우리인 묀히, 아이거, 융프라우가 모두 보였습니다. 브람스가 '내 평생 가장 사랑스러운 아파트를 구했다'라고 감탄했다고 하죠. 브람스는 산책을 즐겼습니다. 새벽에 일어나 진한 커피를 끓여 아침 식사를 하고, 호숫가와 숲길을 걸으러 나갔습니다. 한 시간 반가량 걸으면서 떠오르는 해를 바라봤고, 기분이 내키면 맑은 호수로 뛰어들기도 했습니다. 지금도 툰 호수 근처엔 브람스 기념비가 있습니다.
그곳 생활은 중년의 브람스에게 활력을 불어넣었습니다. 그는 지인을 집으로 초대해 함께 연주를 즐겼고, 쉼과 여유를 통해 얻은 힘으로 작곡에도 몰두했죠. 푀르차흐에서는 '교향곡 2번' '바이올린 소나타 1번' '바이올린 협주곡'을 썼고, 툰 호숫가에서는 '바이올린 소나타 2·3번'과 '첼로 소나타 2번', 그리고 '바이올린과 첼로를 위한 이중 협주곡' 등을 완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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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체코 작곡가 안토닌 드보르자크가 프라하 서남쪽의 보헤미아 산간 마을 비소카에 마련한 별장입니다. 드보르자크는 비소카의 자연에서 영감을 받아 여러 작품을 썼습니다.
체코 작곡가 안토닌 드보르자크(1841~1904)는 프라하 서남쪽의 보헤미아 산간 마을 비소카에 별장을 마련했습니다. 기차와 마차를 갈아타고 가야 하는 그곳은 길게 늘어선 나무와 넓은 초원이 반겨주는 곳이었어요. 그는 그곳에 약 1800평에 달하는 농장과 낡은 집을 마련하고 정성껏 가꿨어요. 별장 정원에서 직접 비둘기를 키우며 모이를 주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작곡에도 몰두했습니다. 비소카의 광활한 자연이 준 영감 덕분에 그는 별장의 작은 방에서 '교향곡 8번'과 종교 음악 '테데움', 그리고 걸작인 '피아노 5중주 2번'을 완성했습니다.
미국 내셔널음악원 교수로 일할 때도 그는 늘 비소카를 그리워했고, 체코로 돌아온 뒤 가장 먼저 이곳을 찾았습니다. 별장에서 걸어서 20분 거리에 작은 연못이 있었는데, 드보르자크는 여기서 영감을 얻어 슬라브의 전설 '물의 요정'을 바탕으로 한 오페라 '루살카'를 썼습니다. 그의 오페라 중 가장 큰 성공을 거둔 작품입니다.
방학을 고대하던 포레
방학을 기다리는 건 학생들만이 아닙니다. 선생님에게도 방학은 기대되는 시간이죠. 프랑스의 유서 깊은 파리 음악원의 원장이었던 작곡가 가브리엘 포레(1845~1924)도 그랬어요. 학기가 끝나고 여름방학이 시작되면 포레는 가방을 챙겨 안시로 향했습니다. 프랑스 남동부에 위치한 안시는 알프스산맥의 빙하가 녹아 형성된 거대한 호수를 품은 곳입니다. 밝은 옥빛을 띠는 안시 호수는 수영, 다이빙 등을 즐기는 이들로 수채화 같은 풍경을 이루지요.
포레는 일흔네 살이 되던 1919년부터 여름마다 안시에 머물며 작곡에 열중했습니다. 그가 파리에 있는 아내에게 보낸 편지에는 작업 중인 작품 이야기가 자주 등장해요. 작곡 속도가 느린 편이었던 포레는 이곳에서 '피아노 5중주 2번'과 '첼로 소나타 2번'을 쓰기 시작했고, 1924년 세상을 떠나던 해엔 '현악 4중주'를 완성했습니다. 포레가 산책하던 정원은 '가브리엘 포레 공원'이란 이름이 붙었고, 공원 한쪽에서 그의 흉상을 만날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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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러시아 작곡가 세르게이 라흐마니노프가 스위스에 세운 별장인 ‘빌라 세나르’. 라흐마니노프는 큰 애정을 갖고 있던 이 별장에 머물면서 작곡에 몰두했어요. /위키피디아
러시아 작곡가 세르게이 라흐마니노프(1873~1943)는 예순 살을 바라보던 1932년 스위스 루체른 호숫가의 헤르텐슈타인 마을에 별장을 지었습니다. 스위스는 아내와의 신혼여행지이자, 아이들과 함께한 가족여행의 추억이 깃든 특별한 곳이었습니다. 그는 넓은 땅을 사서 별장을 세우고, '빌라 세나르(Villa SeNaR)'라는 이름을 붙였어요. 자신의 이름 세르게이에서 '세(Se)', 아내 이름 나탈리아에서 '나(Na)', 성인 라흐마니노프에서 'R'을 가져왔지요. 이 별장은 한쪽 면이 호수와 맞닿아 있었고, 정원에는 전나무와 자작나무, 장미 울타리가 빽빽하게 심겼어요. 라흐마니노프는 일곱 번의 여름을 이곳에서 보내며 '파가니니 주제에 의한 랩소디'와 '교향곡 3번' 등을 썼습니다.
"이곳에 진정한 평화와 고요가 있다"고 자랑할 만큼 별장에 대한 라흐마니노프의 애정은 깊었어요. 하지만 1939년 유럽이 제2차 세계대전의 전운에 휩싸이자 그는 이곳을 급히 떠나 원래 살던 미국으로 돌아가야 했죠. 그가 그토록 아끼던 빌라 세나르와의 이별이었습니다.
이밖에도 다양한 작곡가들이 온천 휴양지, 시골, 오두막 등에서 여름휴가를 보내며 작곡에 몰두했습니다. 그들에게는 마음껏 곡을 쓰는 것이 쉼이자 충전이었던 것 같습니다. 작곡가에게 휴가가 있었기에 지금 우리가 이렇게 근사한 작품들을 듣는 것이니, 여름에 고마운 마음도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