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재미있는 과학] '소리 없는 재난' 폭염… 이불 두 겹으로 덮였기 때문이죠
입력 : 2026.08.05 03:30
극한 폭염
한반도를 덮은 두 장의 뜨거운 이불
올여름에도 무더위는 어김없이 찾아왔어요. 7월에는 경상권을 중심으로 체감 온도가 38도를 넘나드는 극심한 더위가 이어졌고, 특히 경남 양산시에선 5일 연속(7월29일~8월2일)으로 낮 최고기온이 40도를 넘었어요. 폭염은 굉장히 위험합니다. 태풍이나 호우처럼 요란한 소리를 내지는 않지만, 어떤 기상 재해보다도 많은 인명 피해를 발생시키곤 하는 '조용한 재난'이에요. 폭염은 두통, 어지럼증, 근육경련 같은 온열질환을 발생시키며 인체의 건강에 나쁜 영향을 줘요. 사람뿐 아니라 농작물이 시들고 가축이 지치는가 하면, 냉방 때문에 전기 사용량이 치솟는 등 사회 곳곳에 다양한 영향을 줘요.
그렇다면 우리나라의 여름철 폭염은 어떻게 만들어질까요? 주인공은 두 개의 거대한 고기압이에요. 하늘을 수직 방향으로 봤을 때 중간과 아래쪽에는 뜨겁고 습한 '북태평양고기압'이, 그 위에는 티베트고원 지역이 강한 햇볕에 달궈지면서 만들어진 '티베트고기압'이 자리를 잡아요. 두 고기압이 겹치면 마치 두 장의 두꺼운 이불이 한반도를 덮은 것처럼 되는데요. 뉴스에 나오는 '이중 고기압'이 바로 이것이에요. 고기압 안에서는 공기가 아래로 내려오며 눌려서 더 뜨거워져요. 강한 햇볕은 매일 땅을 달구는데 비구름은 좀처럼 만들어지지 않으니 더위가 잘 식지 않게 된답니다.
경상권, 유독 더운 이유는?
지형은 날씨에 영향을 줍니다. 대표적인 게 '푄 현상'인데요. 습한 공기가 높은 산을 넘으면서 고온 건조한 바람으로 바뀌는 기상 현상을 뜻해요. 그 이유를 살펴보겠습니다. 산 위로 올라갈수록 공기를 누르는 힘이 약해져 공기는 점점 차가워져요. 공기 안에 있던 수증기는 응결(온도 저하 등으로 인해 액체로 변함)돼 구름이 되거나 비로 내리는데, 이 과정에서 열을 내놓습니다. 이 열 때문에 공기는 올라가는 동안 천천히 식어요. 반대로 산을 내려오면서는 온도가 올라갑니다. 수증기량이 줄었기 때문에 더 건조하죠. 열을 식혀 줄 수 있는 게 없으니 훨씬 빨리 뜨거워집니다. 습한 공기는 100m를 오를 때마다 약 0.5~0.6도씩 온도가 낮아지는데, 내려올 때는 1도씩 올라갑니다. 봄철에 공기가 태백산맥을 지나며 온도가 올라가고 건조해지는 것도 이 때문이랍니다.
이번 경상권 폭염도 마찬가지예요. 한반도 남부에 위치한 소백산맥은 경상권과 다른 지역의 경계를 이루는데요. 고기압 가장자리를 따라 불어온 뜨거운 남서풍이 소백산맥을 넘어 내려오면서 온도가 한층 더 올라갑니다. 특히 대구처럼 산으로 둘러싸인 분지에는 그 열기가 그대로 갇히게 돼요. 이렇게 쌓인 더위는 태양의 높이가 낮아지는 늦여름, 북쪽의 찬 공기가 내려와 고기압을 밀어낼 때가 되어서야 비로소 물러가요.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우리나라에선 후텁지근한 '찜통더위'가 나타납니다. 나라, 지역마다 폭염의 얼굴은 조금씩 다른데요. 유럽의 경우 우리보다 훨씬 건조한 더위를 겪고 있습니다. 폭염이 유럽 대륙을 덮친 지난 6월 22~28일 27개국에서 총 1만명 이상이 평년보다 더 사망했다는 보도가 나오기도 했어요. 이웃 나라 일본은 최고기온이 40도를 넘는 날을 뜻하는 '혹서일'이라는 용어를 새로 만들었어요. 실제로 지난달 말부터 기후현, 후쿠오카현 등 도시 곳곳에서 혹서일이 관측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를 비롯해 세계 곳곳이 폭염으로 신음하는 중입니다.
18년 만에 새로 생긴 최상위 경고
기상청은 2008년부터 폭염특보를 운영해 왔어요. 하루 최고 체감온도가 33도 이상인 날이 이틀 이상 이어질 것으로 예상되면 '폭염주의보'를, 35도 이상이면 '폭염경보'를 발표하죠. 그런데 기후변화로 폭염이 점점 강해지고 길어졌어요. 최근 5년간의 연평균 폭염일수는 1970년대보다 2~3배나 늘었어요. 폭염경보만으로는 다 담을 수 없는 극단적인 더위가 나타나기 시작한 거예요. 그래서 기상청은 18년 만인 올해 6월 폭염특보 체계를 개편해 최상위 단계인 '폭염중대경보'를 신설했어요. 폭염경보 수준의 더위가 이어지는 지역에서 하루 최고 체감온도 38도 또는 최고기온 39도 이상이 단 하루만 예상돼도 발표됩니다.
그동안의 폭염주의보와 폭염경보가 더위에 약한 분들에게 '조심하라'고 알리는 노란불이었다면, 폭염중대경보는 모두에게 '일단 멈추라'고 경고하는 빨간불인 셈이랍니다. 뜨거운 논밭과 공사장, 아이만 남겨진 자동차 안은 아주 위험해요. 어르신이 야외에서 일하고 있지는 않은지, 어린이가 혼자 차 안에 있지는 않은지 확인해야 해요. 건강한 사람도 야외 활동을 멈춰야 합니다. 즉시 시원한 곳으로 이동하고, 물을 자주 마셔야 해요. 우리가 빨간색 신호등 앞에서 걸음을 멈추듯, 폭염 앞에서는 잠시 멈추는 것만으로도 나와 가족, 이웃의 건강을 지킬 수 있다는 사실을 꼭 기억하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