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재밌다, 이 책] "이제 한국인 다 됐네!" 순수한 칭찬에 상대는 상처받고 고민 빠질 수 있어요
입력 : 2026.07.30 03:30
선량한 차별주의자
"이제는 한국인이 다 됐네요." 칭찬하려고 외국인에게 이런 말을 건넸다고 생각해 봅시다. 의도는 순수했습니다. 하지만 상대는 생각에 잠길 수 있습니다. '그전에는 혹시 나를 어떻게 생각했을까?' '나는 아직 한국의 구성원이 아니라고 선을 긋는 걸까?'
좋은 뜻으로 건넨 말이 때로는 누군가에겐 상처가 될 수 있습니다. 우리는 흔히 '차별'을 나쁜 마음을 먹은 사람이 저지르는 횡포라고 생각합니다. 누군가를 대놓고 미워하거나 괴롭히지 않는 한 자신은 차별과 무관하다고 믿죠. 하지만 선한 의도를 가진 평범한 사람도 자신이 모르는 사이 선입견을 드러내고 사람을 차별할 수 있습니다. 책 제목인 '선량한 차별주의자'는 무서운 괴물이 아니라, 어쩌면 우리 자신의 모습입니다.
차별이 잘 보이지 않는 까닭은 자신이 누리는 '특권'을 알아채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특권은 막대한 부나 권력만을 뜻하지 않습니다. 계단을 오를 때 아무 불편을 느끼지 않는 사람의 눈엔 무엇이 장벽인지 잘 보이지 않습니다. 하지만 누군가는 높은 곳으로 올라가려 다른 길에서 헤매고 있습니다.
저자가 비정규직으로 일하던 직장에서는 정규직 사무실 문엔 나무판으로 된 명패가, 비정규직인 저자의 문에는 보라색 종이를 코팅한 명패가 붙어 있었다고 해요. 그런데 정규직 동료는 2년 반 동안 명패가 서로 다르다는 사실조차 알아차리지 못했답니다. 이와 달리 저자는 아침에 출근해 사무실 문을 열 때마다 자신이 다른 신분으로 구분돼 있음을 확인해야 했지요. 누군가에게는 눈에 띄지도 않는 차이가 다른 누군가에게는 날마다 되풀이되는 낙인이 됩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파악하려면, 우리는 계속 생각하고 질문을 던져야 합니다. 아이들의 출입을 막는 '노키즈존' 앞에서 부모는 어떤 마음으로 발걸음을 돌리고, 글을 막 배우기 시작한 아이들은 무슨 생각을 할까요? 일상에서 흔히 주고받는 농담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해봐야 합니다. 누군가를 비하하는 농담에 불편함을 드러낼 때 "웃자고 한 말에 왜 죽자고 덤비느냐"고 핀잔을 주는 일은 흔합니다. 하지만 약자를 깎아내리는 식의 농담엔 누군가를 자신보다 못한 존재로 여기는 마음이 숨어 있기 마련입니다. 농담의 가벼움을 타고 이런 편견은 더 쉽게 퍼지기도 합니다.
책은 완벽한 사람이 되라고 요구하지 않습니다. 누구나 실수할 수 있음을 인정하고, 지적을 받았을 때 변명을 하기보다 자신의 생각을 돌아보라고 권합니다. 중요한 건 '나는 좋은 사람이니 차별하지 않는다'고 안심해선 안 된다는 거예요. 내가 보지 못한 게 있을 수 있다고 인정하고, 다른 자리에 선 사람의 말을 들으며 생각과 행동을 고쳐나가야 합니다. 주변을 좀 더 둘러보고 소리에 귀 기울이는 노력이 곳곳에서 쌓이면 사회는 한층 더 살기 좋은 곳이 될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