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숨어있는 세계사] 女 천황 8명 있었는데… 공주 두고 38촌 男 찾는 이유는?

입력 : 2026.07.29 03:30

일본의 '여성 천황' 논쟁

일본은 천황이라는 군주를 두고 있는 나라입니다. 천황은 현재 정치적 권한은 없지만 자국민에게 '국가의 상징'으로 여겨집니다. 일본 헌법 제1조엔 '천황은 일본국의 상징이며 국민 통합의 상징'이라고도 적혀 있지요.

그런데 최근 일본 사회가 '천황 논쟁'으로 시끄럽습니다. 구체적으로는 천황의 성별에 관한 논쟁입니다. "천황의 친딸은 천황이 안 되고, 38촌 떨어진 남성은 된다는 거냐?" "왜 남자만 고집하느냐?"라는 비판이 나온대요. 옆 나라 일본에서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요? 일본에서 여성이 천황이 된 사례는 없었던 걸까요?

일본 천황 가족입니다. 왼쪽부터 마사코 황후, 나루히토 천황, 아이코 공주. 일본 법은 남자만 천황에 오르도록 규정하는데, 나루히토 천황에겐 아들이 없습니다.
일본 천황 가족입니다. 왼쪽부터 마사코 황후, 나루히토 천황, 아이코 공주. 일본 법은 남자만 천황에 오르도록 규정하는데, 나루히토 천황에겐 아들이 없습니다.
"남성만 고집… 여론과 동떨어져"

천황 계승 등에 관한 규정을 담고 있는 법을 '황실전범'이라고 합니다. 최근 일본 국회는 이 법을 고쳤는데요. 옛 황족 가문의 남성을 양자로 들인 뒤 그 아들에게 천황 계승 자격을 부여하는 게 이번 개정안의 핵심입니다. 양자가 될 가능성이 있는 남성을 따져보니 나루히토 현 일본 천황과 36~38촌 관계라고 해요. 공통 조상은 600년 전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600년 전인 1426년 조선은 세종대왕 8년이었습니다.

황실전범은 남자만 천황에 오를 수 있다고 규정합니다. 나루히토(66) 천황, 마사코(63) 황후 부부에겐 아들이 없습니다. 외동딸 아이코(25) 내친왕(공주)이 있어요. 아이코 내친왕은 소탈하고 검소한 모습으로 일본 국민에게 인기가 많아요. 일본 사회에선 '여성도 천황이 돼야 한다'는 여론이 커지고 있었습니다. 73%가 '여성 천황에 찬성한다'고 답한 조사 결과가 나오기도 했어요. 그런데 일본 최초 여성 총리인 다카이치 사나에가 이끄는 자민당이 여성 대신 남성을 찾는 내용의 법 개정에 나서자, '여론·시대와 동떨어진 고집'이라는 비판을 받게 된 거죠.

일본 역사상 첫 여성 천황이었던 스이코 천황입니다.
일본 역사상 첫 여성 천황이었던 스이코 천황입니다.
역시 여성 천황인 사이메이(혹은 고교쿠) 천황입니다. 재위 당시 한반도에서 백제가 멸망하자 백제를 돕기 위한 파병 준비를 직접 지휘했다고 해요.
역시 여성 천황인 사이메이(혹은 고교쿠) 천황입니다. 재위 당시 한반도에서 백제가 멸망하자 백제를 돕기 위한 파병 준비를 직접 지휘했다고 해요.
여성 천황은 있었다

일본 역사엔 여성 천황이 존재했습니다. 8명이었죠. 이 가운데 2명은 각각 두 차례 천황에 올랐었답니다. 여성 천황의 재위 횟수를 따지면 10번인 셈이죠.

일본 최초 여성 천황은 제33대 스이코 천황(재위 593~628년)이에요. 앞서 천황을 지낸 아버지와 남편 등의 뒤를 이어 천황이 됩니다. 이 시기 일본은 삼국의 불교 문물을 받아들여 일본 최초 불교 문화인 '아스카 문화'가 발전합니다. 다만 조카 쇼토쿠 태자가 섭정(군주를 대신해 다스림)으로 정치 대부분을 맡았대요.

그다음 여성 천황은 제35대 고교쿠 천황(재위 642~645), 제37대 사이메이 천황(재위 655~661)인데요. 같은 사람이랍니다. 남편의 뒤를 이어 35대 천황이 된 뒤 정치적 이유로 물러났었는데, 다시 37대 천황에 오르게 된 거죠. 그녀는 한반도와도 관련이 깊습니다. 660년 우호 관계에 있던 백제가 멸망하자 군사를 보내 백제를 다시 일으키려고 했어요. 사이메이 천황은 일본에 머물고 있던 백제 의자왕의 아들 부여풍이 백제로 돌아가 부흥 운동을 이끌도록 도왔습니다. 그녀는 파병 준비 작업을 직접 지휘하기도 했지만 도중에 사망합니다. 그녀의 아들(덴지 천황)은 자신의 즉위식도 미루며 파병 준비를 마저 했고, 실제 군대를 백제에 보냅니다. 전투에서 패했지만, 이후 일본은 나라를 잃은 백제 사람이 일본으로 이주하도록 도왔습니다.

제41대 지토 천황(재위 690~697), 제43대 겐메이 천황(재위 707~715), 제44대 겐쇼 천황(재위 715~724) 모두 여성이었습니다. 그리고 천황을 두 번 지낸 여성이 다시 등장하는데, 바로 제46대 고켄 천황(재위 749~758), 제48대 쇼토쿠 천황(재위 764~770)입니다. 이후 한동안 여성 천황이 등장하지 않다가, 제109대에 이르러 메이쇼 천황(재위 1629~1643)이 여성 천황의 맥을 잇습니다. 그리고 제117대 고사쿠라마치 천황(재위 1762~1771)을 끝으로 여성 천황은 더 등장하지 않았습니다.

이처럼 여성 천황은 있었습니다. 하지만 일본은 황족 남성의 자손만 후계로 삼는 '남계(男系)' 원칙을 철저히 지켜왔습니다. 기혼 여성 천황은 모두 남성 황족과 결혼했습니다. 그 자녀가 천황이 되기도 했는데, 이 경우도 아버지를 따라 '남계'입니다. 다카이치 총리는 "126대 지금 천황까지 예외 없이 남계로 이어져 온 역사는 세계에서도 보기 드물다"라고 말하기도 했어요.

1889년 만들어진 황실전범입니다. '황위는 남계의 남자가 계승한다'는 내용이 적혀 있어요. /유튜브·위키피디아
1889년 만들어진 황실전범입니다. '황위는 남계의 남자가 계승한다'는 내용이 적혀 있어요. /유튜브·위키피디아
'구 궁가' 11개 가문

메이지 시대인 1889년 일본 제국 헌법과 함께 황실전범이 처음 만들어졌습니다. 이때 '황위는 남계의 남자가 계승한다'고 못 박았어요. 남계 원칙을 법으로 명확히 해 분쟁을 예방하려는 의도가 담긴 것으로 학자들은 분석합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인 1947년 '일본국헌법'에 따라 황실전범도 새로 만들어졌는데, '남계 남성 승계'라는 내용은 역시 그대로 들어갑니다. 그리고 황실전범은 이번 개정 전까지 79년 동안 사실상 수정되지 않았습니다.

이번 개정을 더 깊게 이해하려면 '구 궁가(舊宮家·옛 황족)'라는 표현을 알아야 합니다. 세계대전이 끝난 후 일본의 천황과 천황 제도에 대한 국제 사회 비판은 매우 거셌어요. 천황은 전쟁 책임을 지고 재판에 넘겨져야 하며, 천황 제도도 폐지돼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죠. 그러나 일본 국민은 천황이 유지되기를 바랐습니다. 미국 역시 일본에서 천황이 가진 영향력을 무시할 수 없었어요. 미국을 중심으로 한 연합군은 천황제 유지로 결론을 내리면서도, 황실의 힘을 빼려 황족 범위를 축소하도록 압력을 넣습니다. 결국 방계(직계에서 갈라져 나온 혈족) 11개 가문은 평민 신분이 돼요. 이들을 '구 궁가'라고 합니다. 이들을 황실로 복귀시켜야 한다는 주장은 그간 일본에서 꾸준히 나왔는데요. 이번에 옛 황족의 아들이 천황이 될 수 있는 근거가 마련된 거예요.

또 여성 황족은 결혼 후 황족 신분을 유지할 수 있게 됐어요. 원래는 공주가 평민과 결혼하면 평민 신분이 된다는 내용의 규정이 있었는데, 이를 삭제했습니다. 하지만 남편과 자녀를 황족으로 인정하는 건 아니며, 여성이 천황이 되는 길은 여전히 막혀 있는 것이죠. 그러면서 남성이 천황이 되는 길은 넓혀 '시대착오적' '성차별적'이라는 비판을 받게 된 거죠. 다카이치 총리 지지율은 작년 말 70%에 달하기도 했는데, 최근엔 41%까지 떨어졌어요. '남성 천황 승계'를 무리하게 밀어붙인 결과라는 분석도 나옵니다.
정세정 옥길새길중 역사 교사 기획·구성=김민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