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세계 미술관 산책] 쇠락한 항구에 세운 미술관, 이젠 '국가의 상징' 됐죠
입력 : 2026.07.27 03:30
뭉크미술관
노르웨이의 수도 오슬로에 가면 바닷가에 우뚝 솟은 독특한 건물 하나가 눈에 들어와요. 은빛 외벽을 두른 높은 건물이 피오르(fjord·좁고 긴 만) 쪽으로 살짝 몸을 기울이고 있는데요. 건물 외벽에는 긴 설명 없이 'MUNCH'라고만 새겨져 있어요. 노르웨이가 낳은 세계적인 화가 에드바르 뭉크(1863~1944)를 기리는 뭉크미술관이에요. 뭉크는 '절규'를 그린 화가로 잘 알려져 있어요. 붉게 물든 하늘 아래 해골처럼 야윈 인물이 두 손으로 귀를 막고 비명을 지르는 이 그림은 미술사에서 가장 유명한 그림 중 하나죠.
뭉크의 작품들을 체계적으로 전시하고 있는 뭉크미술관은 도시 재생, 친환경, 외교 측면에서도 세계의 주목을 받은 공간입니다. 오늘은 노르웨이를 대표하는 강력한 문화 브랜드가 된 뭉크미술관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뭉크의 작품들을 체계적으로 전시하고 있는 뭉크미술관은 도시 재생, 친환경, 외교 측면에서도 세계의 주목을 받은 공간입니다. 오늘은 노르웨이를 대표하는 강력한 문화 브랜드가 된 뭉크미술관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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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노르웨이의 수도 오슬로에 있는 뭉크미술관 전경입니다. 건물 외벽에 별다른 설명 없이 화가의 이름 'MUNCH'만 적혀 있는 게 특징입니다. 위 작은 사진은 뭉크미술관의 측면 모습입니다. 마치 바다를 향해 고개를 숙인 듯한 느낌을 줘요.
뭉크미술관은 1963년 뭉크 탄생 100주년을 기념해 오슬로 동쪽 퇴옌 지역에 처음 문을 열었어요.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건물이 낡고 작품을 보관할 공간도 부족해졌습니다. 작품을 안전하게 보존하고 더 많은 관객에게 소개할 수 있는 새 미술관이 필요했지요.
새로운 미술관은 2021년 10월 오슬로 중심부의 수변 지역 비에르비카에 문을 열었어요. 과거 비에르비카는 낙후된 산업지대였는데요. 오슬로시는 쇠락한 항구 지역을 새로운 수변 문화 공간으로 탈바꿈시키는 대규모 도시 재생 사업 '피오르뷔엔'을 추진했어요. 이 사업을 통해 오페라하우스와 데이크만 중앙도서관, 해변 산책로가 차례로 들어섰습니다. 뭉크미술관도 문을 열며 이 지역은 오슬로를 대표하는 활력 넘치는 문화 예술 지구로 거듭났답니다. 이 사업은 북유럽 도시 재생의 대표 사례로 손꼽힌답니다.
새 뭉크미술관은 13층, 높이 약 60m에 이르는 고층 건물이에요. 넓은 부지에 나지막하게 펼쳐 짓는 일반적인 미술관과 달리 건물을 위로 높이 쌓아 올렸어요. 고층 공공 미술관이 드문 유럽에서는 매우 이례적인 형태예요. 건물은 스페인 건축사무소 에스투디오 에레로스가 설계했어요. 이들의 설계안은 국제 설계 공모에서 '람다(Lambda)'라는 이름으로 제출됐어요. 그리스 알파벳 소문자 λ(람다)를 닮은 기울어진 형태에서 착안한 이름으로, 실제 건물 역시 상층부가 살짝 기울어져 있어 멀리서 보면 λ를 떠올리게 하지요. 미술관이 피오르를 향해 고개를 숙여 인사하는 느낌을 줍니다.
관람객은 층을 오르내리며 전시를 감상하는 것은 물론, 통유리창 너머로 피오르와 오페라하우스, 오슬로의 도시 풍경도 만나게 됩니다. 뭉크미술관은 이렇게 미술품을 전시하는 공간인 동시에, 시민과 방문객에게 도시의 풍경을 함께 선사하는 수직형 공공 전망대 역할도 하고 있어요.
뭉크미술관은 친환경 건축의 모범 사례로도 주목받습니다. 건축에는 저탄소 콘크리트와 재활용 철강, 재활용 알루미늄 등 탄소 배출을 줄인 자재를 사용했어요. 외벽을 감싼 반투명 타공 알루미늄 패널은 강한 햇빛을 적절히 막아 건물 내부의 온도 변화를 줄여 주고, 에너지 절약형 냉난방 시스템은 작품을 안전하게 보존하면서도 에너지 소비를 최소화하도록 돕는답니다. 또 사람들은 자동차 대신 대중교통이나 자전거 등으로 미술관을 쉽게 방문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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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에드바르 뭉크의 대표작인 '절규'입니다. 뭉크미술관은 세 종류의 절규를 번갈아 전시하고 있어요. 왼쪽부터 유화, 판화, 파스텔화.
뭉크는 수많은 작품을 오슬로시에 남기고 떠났습니다. 과거 나치 독일은 1937년 독일 미술관에 있던 뭉크의 작품들을 '퇴폐 미술'로 규정해 몰수한 적이 있어요. 뭉크는 자신의 작품이 짓밟히거나 사라질지 모른다는 큰 위기감을 느꼈지요. 결국 그는 소유하고 있던 회화, 판화 등은 물론 자필 편지와 작업 도구까지 모든 유산을 오슬로시에 기증했답니다. 현재 뭉크미술관은 총 4만 2000점이 넘는 소장품을 가지고 있는데, 그중 뭉크 작품과 자료는 약 2만 8000점이 넘어요. 세계에서 가장 크고 체계적인 뭉크 컬렉션이에요.
사람들이 가장 많이 찾는 곳은 4층이에요. 이곳에서는 '절규'와 '마돈나' 같은 뭉크의 대표작을 만날 수 있습니다. 절규는 다양한 종류가 남아 있는데요. 미술관은 빛으로부터 작품을 보호하기 위해 유화, 판화, 파스텔화 등 세 가지 버전의 '절규'를 한 시간마다 한 점씩 번갈아 공개합니다.
6층의 '모뉴멘털' 전시장에서는 뭉크가 오슬로대학교 강당을 위해 구상한 대형 회화를 볼 수 있어요. 가장 큰 작품은 크기가 약 50㎡에 달해, 미술관은 설계 당시부터 이 거대한 작품을 반입할 수 있도록 건물 외벽에 전용 통로를 따로 만들었다고 해요. 7층에서는 뭉크의 목판화와 제작 기법을 살펴보고, 그가 말년을 보낸 집과 작업실도 체험형 전시로 만날 수 있어요. 11층에서는 뭉크의 작품을 당대 다른 예술가들의 작품과 비교하며 그가 유럽 근대미술 속에서 어떤 위치를 차지했는지 살펴봐요. 미술관은 뭉크에 대한 내용만 다루는 건 아닙니다. 노르웨이 미술과 국제 현대미술 기획전도 있고, 공연과 음악, 영화, 강연, 청소년 프로그램도 진행됩니다. 복합 문화 공간인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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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에드바르 뭉크입니다. 과거 나치 독일에 의해 자신의 작품이 짓밟힐까 두려워한 뭉크는 오슬로시에 작품을 모두 남기고 떠났다고 해요. /뭉크미술관·위키피디아
뭉크미술관은 노르웨이의 상징이기도 합니다. 2022년 8월, 노르웨이·덴마크·스웨덴·핀란드·아이슬란드 등 북유럽 5국 정상이 뭉크미술관에 모여 북유럽의 안보 협력과 해양 환경, 녹색 에너지 전환을 논의하기도 했습니다. 이후 독일 총리도 합류해 공동 기자회견도 열었어요. 노르웨이는 세계의 관심이 집중된 이 무대에서 'MUNCH'라는 이름을 내세움으로써, 예술과 혁신, 그리고 지속 가능성을 지향하는 자국의 국가 정체성을 전 세계에 효과적으로 전달했어요.
낡은 항구를 문화 지구로 바꾸고, 친환경 건축을 실험하며, 한 화가의 유산을 도시와 국가의 브랜드로 발전시킨 뭉크미술관. 이곳은 미술관 하나가 도시의 풍경뿐 아니라 한 나라의 이미지까지 어떻게 변화시킬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성공적인 사례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