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숨어있는 세계사] 항해술로 유럽 곳곳 약탈… 그 물길이 무역망 됐어요
입력 : 2026.07.15 03:30
바이킹
팬들이 선보인 이 응원은 자국의 역사적 정체성인 바이킹의 문화를 축구 응원에 녹여낸 것이라고 할 수 있어요. 바다를 누비며 유럽을 호령했던 조상들의 모습을 떠올리며 '힘을 모아 앞으로 나아가자'는 의미를 담은 겁니다. 흔히 바이킹이라고 하면 '강한 전사' '무서운 약탈자'의 이미지가 떠오르곤 하는데요. 실제로 그들은 어떤 사람들이었을까요?
수도원의 보석·귀금속 노린 바이킹
바이킹은 지금의 덴마크·노르웨이·스웨덴 등 북유럽 일대에서 살던 사람들입니다. '비크(Vik)'라는 단어에서 그 이름이 비롯된 것으로 추측해요. 고대 언어에서 '비크'는 바다가 육지 쪽으로 파고들어와 있는 '만(灣)' 또는 '입구'를 의미했어요. 바다에서 나타나 약탈을 일삼는 무리를 두고 '비크'라는 단어를 쓰고, 이게 바이킹이 된 것으로 보인답니다.
북유럽 일대는 추위가 심하고 토지도 척박했습니다. 어업을 제외하면 이렇다 할 생계 수단이 없었어요. 먹을 것이 없어 굶주린 바이킹은 침략에 나섰습니다. 공식 자료에 의하면 793년, 현재 영국 자리에 있었던 노섬브리아 왕국의 수도원과 마을을 공격한 게 바이킹의 첫 약탈입니다. 수도원에는 보석이나 귀금속이 많고, 수도사들은 싸움에 서툴렀어요. 바이킹은 이 점을 노리고 이후에도 다른 해안의 수도원들을 계속 공격했습니다.
바이킹은 약 9세기부터 본격적으로 활약합니다. 당시 유럽 남쪽의 에스파냐는 이슬람 세력으로 넘어갔고, 한때 강력했던 프랑크 왕국도 점차 분열 상태로 들어가고 있었습니다. 바이킹은 방비가 허술한 유럽 해안을 습격해 약탈하기 시작합니다. 그렇게 약 11세기까지 바이킹 전성기가 이어졌습니다.
바이킹의 배, 롱십
바이킹이 유럽 곳곳에서 약탈을 이어갈 수 있었던 건 '롱십'이라 불리는 배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바이킹은 중세 당시 가장 뛰어난 선박 건조 기술을 보유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에요. 바람을 잘 타면 시속 28㎞까지 속도를 올릴 수 있었습니다. 또 롱십은 배의 흘수(배가 물 위에 떠 있을 때 물에 잠겨 있는 부분의 깊이)가 굉장히 얕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수심이 1m밖에 안 되는 곳에서도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어요. 이 때문에 해안 상륙이 수월했고 강을 거슬러 내륙 깊숙이 진출하기도 했습니다. 사람도 많이 탈 수 있었고요. 당시 유럽 사람들 입장에선 방어 준비를 다 마치기 전에 갑자기 롱십이 나타나 바이킹이 우르르 내려 공격해 왔으니, 그 공포가 상당했을 것입니다.
약탈만 일삼은 것은 아니었어요. 바이킹은 상인이기도 했습니다. 해양 활동이 활발해지며 9세기 초부터 북유럽에 무역 도시가 연달아 만들어졌는데, 가장 큰 헤데비(덴마크)를 비롯해 비르카(스웨덴), 카우팡(노르웨이) 등이 그 도시들입니다. 바이킹 장인들이 만든 소뿔 빗, 유리 염주, 옷감, 칼자루, 보석 장신구, 팔찌, 브로치 등은 외국 상인들에게 인기가 많았습니다. 북유럽 특산품이었던 담비 가죽, 바다표범의 이빨, 순록 뿔 또한 주요 거래 품목이었어요. 바이킹 전사들이 곳곳에서 잡아 온 포로가 노예로 팔려 나가는 일도 많았습니다. 바이킹은 그 수익을 챙겼고요.
콜럼버스보다 먼저 북미 탐험
노르웨이의 바이킹은 서쪽으로 나아가, 스코틀랜드와 아일랜드에 진출해 군사·무역 기지인 도시 더블린을 세웠어요. 또 프랑크 왕국을 침략한 바이킹 족장 롤로는 일부 영토를 인정받았는데 이 영토는 '노르만(북쪽 사람들)의 땅'이라는 의미로 '노르망디'라 불리게 되었어요. 후에 롤로의 후손 노르망디 공작 윌리엄은 1066년 도버해협 건너편의 잉글랜드를 공격해 노르만 왕조를 세웠고, 이는 오늘날 영국의 뿌리가 되었습니다. 바이킹은 아이슬란드에 대거 정착하고 더 나아가 그린란드로도 이주했습니다. 항해사 콜럼버스보다 무려 500년 앞서 아메리카 대륙을 탐험하기도 했는데요. 바이킹의 지도자 레이프 에이릭손은 북미 해안까지 탐험해 한겨울을 그곳에서 보내기도 했습니다.
스웨덴의 바이킹은 발트해 건너 슬라브인이 사는 동유럽 쪽으로 진출했어요. 슬라브인들은 스웨덴 바이킹을 '루스'라 불렀는데, 이는 '노를 젓는 사람'이라는 의미였습니다. 루스는 현재의 러시아 지역을 흐르는 드네프르강과 볼가강을 따라 내려가 흑해와 카스피해까지 진출했습니다.
'블루투스'도 바이킹에서 유래
11세기에 들어서 바이킹은 기독교를 받아들이고 정착 생활을 하면서 현지의 유럽인과 점점 동화되었어요. 또 유럽에서 바이킹의 침략을 막는 기술들이 발전하며 바이킹 약탈은 자취를 감추게 됩니다. 하지만 그간 바이킹이 유럽에 미친 영향은 막대했습니다. 뛰어난 항해술로 바닷길과 강줄기를 연결했고, 이 길을 통해 이슬람 세계, 아시아와 유럽의 물건들이 오가는 등 거대한 무역망이 완성되었어요. 이는 유럽의 경제를 깨우는 촉진제가 되었습니다.
바이킹 문화의 흔적 역시 지금도 쉽게 찾을 수 있습니다. 영어 요일에는 북유럽 신화, 즉 바이킹들이 믿었던 신들의 이름이 고스란히 남아있죠. 목요일(Thursday)은 천둥·번개의 신 토르(Thor)에서 유래했어요. 금요일(Friday) 역시 사랑과 풍요의 여신 프레이야(Freyja)에서 따왔다는 설이 있습니다. 또 블루투스(Bluetooth) 기술 이름은 10세기 바이킹 왕 하랄 블로탄의 별명 '푸른 이빨'에서 유래했습니다. 그는 북유럽 지역을 통일했는데, 선 없이 다양한 기기를 연결하는 기술을 그의 별명으로 표현한 거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