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뉴스 속의 한국사] 1인자만큼 막강했지만… 견제받아 위기에 빠지기도 했죠
입력 : 2026.07.09 03:30
2인자들
욕심 부린 강조, 천수 누린 강감찬
고려 7대 임금 목종(재위 997~1009)은 17세의 어린 나이로 왕위에 올랐어요. 토지와 과거 제도 등에서 개혁을 추진했지만 왕권이 몹시 불안했습니다. 어머니인 천추태후(5대 임금 경종의 왕비)와 그 남자 친구인 김치양의 정치적 영향력이 컸기 때문이에요. 그런데 아들이 없었던 목종은 개경(지금의 개성)의 화재 이후 병까지 얻었습니다. 목종은 왕족인 대량원군을 후계자로 삼은 뒤 전방 부대를 거느리고 있던 서북면 도순검사 강조에게 개경으로 들어오라고 명했어요.
그런데 대규모 병력과 함께 도성으로 들어온 강조는 김치양을 죽인 뒤 엉뚱하게도 살아 있는 목종을 폐위하고 몰래 시해했습니다. 1인자를 둘러싼 목종과 김치양의 대립 속에 돌연 난입한 변방의 2인자가 대치하던 두 세력을 모두 제거하고 새로운 1인자 행세를 하게 된 것이죠. 강조는 대량원군을 8대 현종으로 옹립하고 사실상 최고 권력자가 됐으나, 1010년 거란의 2차 침입 때 방심하다 패해 죽고 말았습니다.
이와 대조되는 인물이 1019년 귀주 대첩으로 거란과의 전쟁에서 최종적인 승리를 거둔 강감찬(948~1031)이었습니다. 전쟁 영웅이 된 강감찬은 관리 중 최고위직인 문하시중 직책에 올랐으나, 권력을 탐하거나 남용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나이가 들자 정중히 물러나기를 청했습니다. 현종은 '고려의 세종대왕'이라 불리는 현명한 임금이었는데도, 강감찬은 자칫 1인자가 경계심을 지닐 만한 2인자가 되지는 않으려 했던 것이죠. 강감찬은 현종보다 44세 많았는데, 현종이 승하한 뒤인 덕종 때까지 천수를 누리며 살았습니다.
세조, 공신들에게 "행여 기어오르지 말라!"
영화 '왕과 사는 남자'는 조선 6대 임금 단종이 숙부인 세조에게 쫓겨난 뒤 강원 영월로 유배를 간 이야기를 소재로 삼았습니다. 세조가 왕위에 오르는 데 기여한 대표적인 공신이 한명회와 정인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충절을 지켜 목숨을 잃은 사육신과는 달리, 이들은 높은 벼슬을 받고 부귀영화를 누렸습니다.
하지만 이들의 공신 생활이 100% 순탄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가끔 임금인 세조가 벌을 준 기록이 나타납니다. 정인지는 국문을 받은 적이 있는데, 이것은 임금의 명령으로 중죄인을 신문하는 무서운 일이었습니다. 주사가 심해, 임금과 술자리를 하던 중 '그대'라고 칭하거나 무시하는 듯한 말을 했다는 이유였습니다. 1467년 이시애의 난이 일어났을 때 붙잡힌 반란 세력의 일부가 "한명회와 모의했다"고 했는데, 이때 한명회는 일시적으로 의금부에 투옥되는 고초를 겪었습니다. '행여 1인자인 나의 권위에 도전하지 말라'는 경고였습니다. 공신 노릇이란 살얼음판을 걷는 것과 같은 셈이었죠. 권력이란 이토록 무서운 것입니다.
선을 넘고 추락한 '정조의 2인자' 홍국영
조선 22대 임금인 정조가 세손 시절부터 측근으로 삼았던 신하가 있었습니다. 홍국영(1748~1781)이었습니다. 정조의 아버지 사도세자가 할아버지 영조에게 벌을 받아 죽은 뒤 정치적 위기에 빠졌던 정조에게 든든한 힘이 돼 줬다고 합니다. 정조 즉위 후엔 젊은 나이에 초고속 승진을 해 임금의 비서실장 격인 도승지 자리에 올랐습니다. 당시 홍국영을 향해 정조는 "경이 없었더라면 어찌 오늘날의 내가 있었겠는가!"라고 공공연히 말했다고 합니다.
사실상 권력의 '2인자' 자리에 오른 홍국영은 '정조의 칼잡이' 역할을 했습니다. 임금의 정치적 반대파였던 노론 벽파를 공격한 것입니다. 자신의 누이동생을 정조의 후궁으로 들여보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정조의 후계 구도에 개입하는 등 2인자가 하지 말아야 할 '선'을 넘어섰고, 국가의 주요 결정을 마음대로 처리하는 오만방자함을 보였습니다. 결국 1779년 사직한 홍국영은 빠르게 몰락의 길을 걸었습니다. 마지막엔 재산이 몰수되고 한양 도성 출입마저 금지당한 뒤 33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김종필이 노태우에게 전수한 '2인자론'
1961년 5·16 군사정변 이후 1979년 10·26 사태로 박정희 대통령이 서거하기까지, 18년 세월 동안 대체로 '2인자'로 불린 인물이 있었습니다. 바로 제4공화국 때 국무총리를 지낸 김종필(1926~2018)이었죠. 1980년 신군부가 집권할 당시 김종필은 가택 연금을 당했는데, 훗날 13대 대통령이 되는 보안사령관 노태우가 김종필을 만나 사과하며 "혹시 충고해 주실 말씀이 없겠느냐"고 물었습니다. 김종필은 "내가 보니 당신이 (전두환 다음가는) 2인자 같은데…"라며 이런 조언을 해 줬다고 합니다.
"권력을 장악한 1인자는 2인자를 소외시키거나 무력화하고 싶어 하는 속성을 가지고 있다. 2인자는, 첫째, 절대로 1인자를 넘겨다봐선 안 된다. 비굴할 정도는 안 되겠지만 품격을 유지하면서 고개를 숙여야 한다. 이때도 2인자다운 논리가 서야 한다."
"둘째, 있는 성의를 다해서 일관되게 1인자를 보좌하는 사람이라는 인상을 가지게 하라. 조금도 의심을 받을 만한 일을 하지 마라. 때가 올 때까지 1인자를 잘 보좌해야 한다. 억울한 일이 있어도 참고 넘겨야 한다. 참는다는 것은 참을 수 있는 것을 참는 게 아니라 참을 수 없는 것을 참는 게 진정한 인내다. 나는 그런 식으로 살아 왔다." 국가나 정당의 2인자뿐 아니라 조직이나 가정의 2인자도 꼭 곱씹어 읽어봐야 할 '2인자론'인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