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숨어있는 세계사] 세계의 '정치가문'… 권력은 이었지만 평가는 갈렸죠
입력 : 2026.07.08 03:30
대를 이은 지도자들
지난달 치러진 페루 대통령 선거에서 게이코 후지모리(51) 민중권력당 후보가 승리했어요. 그는 페루에서 선거로 선출된 최초의 여성 대통령입니다. 아울러 중남미에서 처음으로 일본계 부녀(父女) 대통령이 나왔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1990년부터 2000년까지 페루를 통치했던 알베르토 후지모리(1938~2024)입니다. 일본인 이민자의 아들이죠.
오늘날 많은 국가들은 대통령이나 총리 같은 최고 지도자를 '선거'로 선출하는 방식을 택하고 있어요. 선거인데도 부모와 자녀가 대를 이어 지도자가 되는 사례도 있답니다. 오늘은 한 국가의 운명을 이끈 '정치 가문'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오늘날 많은 국가들은 대통령이나 총리 같은 최고 지도자를 '선거'로 선출하는 방식을 택하고 있어요. 선거인데도 부모와 자녀가 대를 이어 지도자가 되는 사례도 있답니다. 오늘은 한 국가의 운명을 이끈 '정치 가문'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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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난달 페루 대통령 선거에서 당선된 게이코 후지모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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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게이코 후지모리의 지지자가 알베르토 후지모리의 사진을 들고 있어요. 앞서 페루 대통령을 지낸 알베르토는 게이코의 아버지입니다. 이들은 일본인 혈통이에요.
페루에서 태어난 알베르토 후지모리는 공과가 뚜렷한 정치인이에요. 불합리한 규제를 고치고 외국 자본을 유치하는 등 개혁에 나서 어려웠던 경제를 바로잡았다는 평가를 받아요. 또 당시 페루는 극단적 세력의 테러로 혼란이 컸는데요. 알베르토 후지모리는 인질 사건이 발생하자 방탄 조끼를 입고 직접 진압 작전을 지휘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에겐 '독재자'라는 꼬리표가 붙습니다. 시민을 억압하고 자유를 침해했다는 거예요. 결국 그는 2009년 징역 25년형을 선고받았고, 재작년 사망했습니다.
그의 딸 게이코 후지모리는 2011년, 2016년, 2021년 대통령 선거에 모두 나섰는데 전부 근소한 표 차이로 떨어졌어요. 아버지의 과오를 떠올리고 그녀를 뽑지 않은 시민이 많았던 것이죠. 그런데 올해 네 번째 도전에서 당선됐습니다. 2위 후보와 득표율 차이는 0.27%포인트(약 4만9000표)에 불과했답니다. 게이코 후지모리가 아버지가 보인 권위주의 정치를 넘어설 수 있을지, 아버지처럼 경제 발전을 이끌지 관심이 크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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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69년 당시 필리핀 페르디난드 마르코스(왼쪽 두 번째) 대통령이 가족과 함께 찍은 사진. 가장 왼쪽 남자아이가 훗날 아버지에 이어 필리핀 대통령이 된 봉봉 마르코스입니다.(왼쪽) 현재 필리핀 대통령 봉봉 마르코스(오른쪽).
필리핀의 페르디난드 마르코스(1917~1989)는 1965년 대통령에 당선됩니다. 그는 세계에서 손꼽히는 부패한 지도자인데요. 대통령을 지내며 부정하게 모은 재산이 100억달러(현재 기준 약 15조3000억원)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져 있어요. 그는 계엄령을 선포하며 독재 체제를 구축했어요.
1986년, 필리핀 수도 마닐라에선 그를 몰아내려는 '피플 파워 혁명'이 일어나고, 그는 미국 하와이로 망명합니다. 뒤를 이어 코라손 아키노(1933~2009)가 대통령으로 취임합니다. 하지만 독재의 유산을 제대로 청산하지 못했고, 기득권에 휘둘렸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이런 가운데 페르디난드 마르코스의 아들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주니어(69·일명 '봉봉 마르코스')가 1991년 어머니와 함께 필리핀으로 돌아왔고, 정치에 뛰어들어 이름을 알렸습니다. 2021년 그가 대통령 후보가 되자 필리핀 사회에선 '독재자 일가'라는 비판이 나오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아버지 집권 당시 나는 너무 어렸다"며 부모의 정치적 책임과 거리를 뒀고, 동시에 소셜미디어로 아버지 시대의 경제 성장을 강조하는 영상을 퍼뜨려 독재를 경험하지 못한 젊은 세대에게 큰 영향을 미쳤어요. 빈곤과 불평등으로 기존 정치권에 대한 시민들의 실망감도 컸기에, 봉봉 마르코스는 결국 선거에서 압도적 승리를 거두게 됐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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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1년 미얀마 아웅산 수지(가운데 파란 옷) 여사가 지지자들에게 둘러싸여 있습니다. 그는 미얀마 민주화의 상징으로 여겨지지만, 소수 민족의 인권 문제에 대해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지 않았다는 비판도 받습니다. /AP 연합뉴스·EPA 연합뉴스·위키피디아
미얀마 민주화의 상징인 아웅산 수지(81) 여사는 미얀마의 독립 영웅 아웅산(1915~1947) 장군의 딸입니다. 아웅산 장군은 영국 통치 아래 있던 버마(현 미얀마) 독립운동의 중심 인물로 제국주의에 저항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는 영국과 협상을 벌여 독립을 약속받기도 합니다. 그는 독립 국가 건설 준비에 나섰지만, 무장 괴한의 총격으로 사망하고 맙니다.
아웅산 수지는 해외에서 자라고 공부했는데요. 1988년, 어머니 병간호를 위해 귀국하며 그의 인생이 달라집니다. 그해 미얀마에서는 군사정권에 맞선 민주화 시위인 '8888 민주화운동'이 벌어지고 있었어요. 군부가 시민을 무력으로 진압해 많은 희생자가 발생했습니다.
이 모습을 본 아웅산 수지는 민주주의민족동맹(NLD)을 창당해 군사정권에 맞서는 대표적 지도자가 됩니다. 하지만 1989년 군부에 의해 가택연금됩니다. 감시 속에서 비폭력 민주화 운동을 이어 나갔고, 이러한 공로로 1991년 노벨평화상 수상자로 선정됐어요. 하지만 그는 2010년까지 총 15년간 감금돼 지냈어요.
2015년 총선에서 NLD가 압승하면서 아웅산 수지는 사실상 미얀마 정부를 이끄는 지도자가 됩니다. 그러나 2017년 미얀마 군부가 소수민족인 로힝야족을 대규모로 학살하고 수십만 명을 국외로 강제 추방하는 과정에서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았다는 비판을 받게 됩니다. 그의 명성은 크게 흔들리게 되었죠. 2021년 군부는 다시 쿠데타를 일으켰고, 아웅산 수지는 체포돼 지금도 자유를 누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미얀마의 이웃 나라 태국도 정치가 불안정합니다. 잦은 군부 쿠데타 등이 원인이에요. 이런 가운데 한 가문이 총리 4명을 배출하기도 했습니다. 바로 친나왓 가문이에요. 사업가 출신인 탁신 친나왓(77)은 2001년 총선에서 승리하며 총리가 됐어요. 하지만 2006년 쿠데타로 축출됩니다. 이후에도 그의 매제, 여동생, 막내딸이 차례로 총리에 올랐죠. 그러나 모두 쿠데타와 헌법재판소의 해임 결정 등으로 임기를 채우지 못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