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디자인·건축 이야기] 같은 무게의 은 가격과 맞먹은 도자기… 유럽서 산업 스파이 보낼 정도였대요

입력 : 2026.07.07 03:30

징더전 도자기

지난 2일 국제도자협회(IAC) 총회가 중국 징더전에서 폐막했습니다. IAC는 세계 유일의 국제 도자 기구로, 2년마다 한 번씩 세계 각지에서 총회를 여는데요. 우리나라 경기도 이천에서도 2004년 총회가 열린 적이 있지요.

이번에 총회가 열린 징더전은 세계에서 유명한 도자기 도시 중 하나랍니다. 도시 별명은 '천년 도자 도시'예요. 중국 송나라 시기였던 1004년 황제 진종이 징더전의 도자기에 감탄해서 자신의 연호인 '경덕(景德)'을 하사한 게 도시 이름의 시작입니다. 징더전(景德鎭)의 우리 발음은 '경덕진'입니다.

징더전 황실 가마 박물관의 도자기 모습. 아래엔 도자기 파편들이 쌓여 있습니다. 징더전 장인들은 도자기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가차 없이 부숴버렸다고 해요. /전종현 저널리스트
징더전 황실 가마 박물관의 도자기 모습. 아래엔 도자기 파편들이 쌓여 있습니다. 징더전 장인들은 도자기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가차 없이 부숴버렸다고 해요. /전종현 저널리스트
징더전은 송나라에 이어 원나라, 명나라, 청나라 시기에 걸쳐 전성기를 누립니다. 그 비결은 흙이었어요. 우윳빛으로 아름다우면서도 단단한 최상급 백자를 만드는 데 필요한 결정적 재료가 근처 마을에서 안정적으로 공급됐거든요. 명나라와 청나라 때에는 황실 전용 가마가 설치되기도 합니다. 징더전의 장인들은 약간의 흠만 있어도 도자기를 부쉈는데 그 파편만 2000만 점에 달했대요.

징더전 도자기는 중국 국내에만 유통되지 않았습니다. 중국의 주요 수출품 중 하나였어요. 원나라 때는 페르시아에서 건너온 코발트 가루를 활용해 만든 청화백자가 이슬람 세계로 팔려나갔어요. 이후 수백 년 동안 유럽에서는 징더전 도자기에 열광했습니다. 도자기를 가리켜 '차이나'라고 할 정도였죠.

징더전 도자기는 같은 무게의 은의 가격에 이를 정도로 비쌌어요. 막대한 은을 빨아들이는 징더전 도자기의 비밀을 풀기 위해 유럽 전역에서 연구가 펼쳐졌고, 징더전에선 산업 스파이가 활동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다 1700년대 독일 마이센에서 처음으로 징더전과 비슷한 백자를 만들어 내는 데 성공했습니다. 이후 프랑스 세브르 지역에서도 도자기가 활발히 만들어졌고, 영국에서는 '본차이나'라는 이름의 도자기가 생산됩니다.

징더전 도자기의 디자인은 동서양 문화가 어우러져 발전합니다. 청나라 시기 황실에선 '법랑채 자기'가 인기였는데요. 징더전에서 백자를 구운 뒤 황실 공방에서 장인이 그림을 그리고, 다시 구워내는 도자기였습니다. 또 황실 공방의 기법은 징더전으로 넘어갔고 이는 색감이 풍부한 도자기의 대량 생산으로도 이어졌습니다. 이처럼 도자기에 그림을 그리는 방법이 다양해진 건 유럽의 예수회 선교사를 통해 유럽식 에나멜 채색이 중국 황실 공방으로 전해진 영향입니다. 밝은 윤기가 나고 정교한 그림이 그려진 징더전 도자기는 동서양 기술이 맞물린 결과였던 겁니다.
전종현 디자인·건축 저널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