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사소한 역사] 6월 29일은 제 1회 '광부의 날' 광산에서 피땀 흘린 이들 기려요

입력 : 2026.07.07 03:30

광부

지난달 29일은 제1회 '광부의 날'이었습니다. 과거 석탄 산업에서 일하며 사고나 병으로 세상을 떠난 광부들의 희생을 기리기 위해 올해부터 만든 기념일이죠. 강원 태백·삼척·정선 등 과거 석탄 산업이 발전했던 지역을 중심으로 광부들의 헌신을 되돌아보는 행사가 진행됐답니다.

지금 대한민국에선 석탄 채굴 산업이 많이 쇠퇴했어요. 하지만 과거엔 한국의 산업화를 이끈 주요 산업이었답니다. 오늘은 석탄 채굴 산업과 광부의 역사에 대해 알아볼까요?

1976년 강원도 탄광 지대의 광부들 모습입니다. /문화체육관광부
1976년 강원도 탄광 지대의 광부들 모습입니다. /문화체육관광부
광부는 광산에서 광물을 캐는 일을 하는 사람을, 광업은 다양한 광물을 캐고 골라내는 산업을 말합니다. 광부 하면 으레 석탄을 떠올리곤 하지만 사실 그렇게 된 역사는 길진 않습니다. 19세기 말, 조선을 호시탐탐 노리던 러시아가 석탄 채굴권을 얻은 걸 근대적 석탄 개발의 시작으로 봅니다. 이후 조선을 강제로 병합한 일본은 당시 핵심 에너지원이었던 석탄 수탈에 열을 올립니다. 수많은 조선인이 탄광에서 피와 땀을 흘렸지만, 석탄으로 생기는 이익은 일본인이 사실상 독점했습니다.

일제가 패망한 뒤, 경제를 살릴 기반이 턱없이 부족했던 한국에 석탄은 없어서는 안 될 자원이었습니다. 정부의 석탄 산업 개발 정책 속에서 전국에 탄광이 속속 생겨납니다. 특히 1957~1966년을 '석탄 산업 중흥 시대'라고 부릅니다. 1970년대는 석유 파동으로 에너지 위기가 전 세계에 닥쳤던 시기입니다. 당시 우리의 석탄 산업은 소방수 역할을 했습니다. 석유를 구하기 힘들어지자 석탄에 기댄 겁니다.

하지만 1980년대, 경제 성장과 산업 확대로 석탄의 입지가 점차 줄어듭니다. 석탄을 더 캐려면 돈을 더 많이 들여야 했고, 환경오염도 사회적 문제로 떠올랐죠. 정부는 1987년 '석탄 산업 합리화 대책'을 수립하고, 석탄 산업 구조 조정에 나섭니다. 1988년 347곳이던 탄광은 1996년 11곳으로 급감했고, 6만8500명이던 근로자는 1만명으로 감소했어요. 이후 석탄의 입지는 갈수록 줄었죠.

광복 후 나라를 살리려면 석탄이 절실했지만, 산업 현장엔 늘 위험이 도사리고 있었습니다. 석탄 산업에서 일하다가 재해로 사망한 사람은 대한석탄공사 탄광에서만 1950년대부터 1500명이 넘습니다. 이처럼 석탄의 역사에는 아픈 과거도 서려 있습니다. 불의의 사고로 세상을 떠난 이들 중에는 가정, 나아가 국가를 위해 기꺼이 헌신하겠다는 굳센 의지를 보인 광부들이 많았어요. 삼척탄광에서 광복 후부터 불리기 시작한 노래 '삼탄가'의 가사를 되새기며, 오늘 공부를 마무리하겠습니다. '하늘이 주신 보배 우리의 선물 / 한 덩이 또 한 덩이 피땀에 젖어 / 이 강산 살찌리라 삼천만 행복.'
김현철 서울 영동고 역사 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