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뉴스 속의 한국사] 일제강점기 조선인들 '인조 석유' 생산에 동원됐죠

입력 : 2026.07.02 03:30

석유 대체재

최근 중동 전쟁으로 석유를 실어 나르던 수많은 배가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하지 못하는 일이 있었습니다. 석유 공급이 원활하지 않게 됐고 세계는 비상에 걸렸지요. 우리나라에서도 휘발유, 경유 가격이 폭등했어요. 승용차 운행을 제한하는 정책도 시행됐고요.

이처럼 석유가 부족해지면 큰일이 생깁니다. 그렇다면 이런 의문이 들어요. 과연 석유를 대신할 만한 건 정말 없는 걸까? 실제 과거부터 석유 대체재를 찾으려는 노력이 많았습니다. 먼 나라 이야기가 아닙니다. 우리 조상들이 석유를 대신할 기름을 만드는 일에 투입되곤 했습니다. 지금으로부터 80~90년 전, 일제강점기 한반도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함께 알아보겠습니다.

정어리입니다. 무리지어 이동하는데, 한 지역에 대량으로 유입됐다가 시간이 흘러 사라지는 특성을 보이곤 합니다. /위키피디아
정어리입니다. 무리지어 이동하는데, 한 지역에 대량으로 유입됐다가 시간이 흘러 사라지는 특성을 보이곤 합니다. /위키피디아
일제강점기 발행된 '세계 제일의 정어리'라는 이름의 엽서입니다. '3면이 바다인 조선은 어장이 풍부하다'는 내용이 함께 적혔습니다. 당시 정어리가 얼마나 흔했는지 엿볼 수 있지요. /국립일제강제동원역사관
일제강점기 발행된 '세계 제일의 정어리'라는 이름의 엽서입니다. '3면이 바다인 조선은 어장이 풍부하다'는 내용이 함께 적혔습니다. 당시 정어리가 얼마나 흔했는지 엿볼 수 있지요. /국립일제강제동원역사관
화약 원료가 된 생선 기름

1930년대 말 제국주의 일본은 중국을 비롯한 이웃 나라와 전쟁을 벌였고, 세계대전이 터질 것이란 위기감도 점점 높아졌습니다. 전쟁을 치르려면 굉장히 많은 석유가 필요합니다. 연료나 무기 등 군수품을 만드는 데 기름이 필요하니까요. 그러나 일본에선 원유가 생산되지 않았습니다. 일본 입장에선 석유를 아껴야 했어요. 그래서 1934년 석유법을 시행해, 자국뿐 아니라 식민지에서도 석유 통제 정책을 엄격히 시행했습니다. 석유를 사고파는 모든 일에 일본이 관여했고, 석유를 함부로 쓰지 못하게 했어요. 당시 우리나라는 일본의 식민지였기에 역시 강도 높은 석유 통제 정책을 적용받았습니다. 그럼에도 석유가 부족해지자, 일본은 석유를 대체할 기름을 본격적으로 찾기 시작합니다.

첫 번째는 정어리였습니다. 정어리는 태평양을 헤엄쳐 다니는 청어과의 물고기인데요. 영양가가 풍부하고 기름기도 많아 많은 사람이 즐겨 먹는 생선입니다. 수많은 개체가 모여 무리를 짓고 다니는데, 1920년대 중반부터 정어리 떼가 대량으로 동해안에 유입됩니다. '물 반 정어리 반'이라는 말이 나왔을 정도로 그 양이 어마어마했다고 해요. 정어리가 너무 많아져서 바닷가에 그득하게 쌓였고, 어민들은 바구니로 주워 모으기만 하면 됐습니다. 배가 정어리 떼에 막혀 항구를 떠나지 못하는 일까지 있었습니다.

'기름 찾기'에 혈안이 돼 있던 일본은 동해안에 지천으로 깔린 정어리에 주목합니다. 정어리 기름을 짜서 공업용, 군수용으로 사용할 수 있었거든요. 화약의 원료가 되기도 했습니다. 이에 한반도에서 정어리 어획량은 급증합니다. 1927년 약 27만톤(t)이었다가 1937년에 들어선 139만t이 됩니다. 어부들이 정어리를 잡으려 항구로 몰려들었고, 정어리를 가공하는 공장들이 세워집니다. 특히 함경북도 청진은 '정어리의 청진'이라고 불릴 정도로 정어리가 많았답니다.

그러나 1942년 갑자기 동해안에서 그 많던 정어리들이 홀연히 사라져 버립니다.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정어리 떼가 특정 지역에서 머물다 다른 곳으로 사라지는 일은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곤 합니다. 당시의 정어리 기름 공장은 1300여 개에 달했는데 대부분 문을 닫게 됩니다. 일본의 화학 공업도 타격을 받았습니다.

지금도 한반도 곳곳에서 일제강점기 당시 훼손된 소나무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과거 일제가 소나무로 기름을 만든다며 조선 사람들을 소나무 채취에 동원했습니다. /국립산림과학원
지금도 한반도 곳곳에서 일제강점기 당시 훼손된 소나무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과거 일제가 소나무로 기름을 만든다며 조선 사람들을 소나무 채취에 동원했습니다. /국립산림과학원
어린 학생과 국토에 상처 남긴 송근유

비행기를 띄운다며 소나무에서 기름을 짜냈다면 믿으실까요? 일제는 1937년 '제1차 인조 석유 7개년 계획'을 시행합니다. 인조 석유는 말 그대로 자연에서 얻은 석유가 아닌 인위적으로 만든 것을 말하는데요. 당시 일본의 계획에 따라 식민지 조선에서 송진(소나무 등에서 분비되는 끈적끈적한 액체) 수탈량이 급증합니다. 1937년 2.12t이었는데, 1938년 37.99t이 되더니 1943년에 이르러서는 4074.31t이 됩니다. 6년 만에 1920배가 된 겁니다.

송진으로 송근유(松根油)를 만들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송근유는 송진이 있는 소나무의 가지나 뿌리들을 짜내 화학적으로 처리해 만든 기름입니다.

태평양 전쟁(1941~1945)으로 다급해진 일본은 본격적으로 송근유 생산에 나섭니다. 피해는 식민지 조선 사람들이 입었어요. 조선 곳곳의 마을과 동네에는 모아야 하는 소나무의 양이 배당됐습니다. 일제가 강제한 양을 맞추려 어른들은 물론 초등학생 아이들까지 동원됐습니다. 개인이 소나무를 가져가거나 송진을 채취하는 건 엄격하게 금지됐습니다. 자연도 황폐해졌죠. 지금도 대한민국 곳곳에 깊은 톱질의 흔적이 남은 소나무가 있습니다.

당시 학교에선 '200그루 소나무면 비행기는 1시간을 난다'라는 구호로 학생들을 선동하기도 했는데요. 정작 송근유는 쓸모가 없었어요. 연료 효율이 많이 떨어져 사용하기 어려웠다고 해요. 훗날 일본에 주둔한 미군이 송근유를 차량 연료로 썼다가 차량이 고장 나는 일도 있었다고 전해집니다.

1940년대 조선총독부가 전국 곳곳에 배포한 포스터입니다. 오른쪽엔 일본어로 '비행기도, 군함도, 탄알도 석탄으로부터'라고 적혔어요. 당시 일본이 석탄에 얼마나 목말랐는지 보여줍니다. /김문길 한일문화연구소장
1940년대 조선총독부가 전국 곳곳에 배포한 포스터입니다. 오른쪽엔 일본어로 '비행기도, 군함도, 탄알도 석탄으로부터'라고 적혔어요. 당시 일본이 석탄에 얼마나 목말랐는지 보여줍니다. /김문길 한일문화연구소장
석탄으로 만든 인조 석유

북한의 함경북도의 '아오지 탄광'은 북한 정치범 수용소로 악명 높았던 곳입니다. 우리에게도 익숙하죠. 이곳은 말 그대로 석탄 채굴 광산인데, 석탄 매장량이 어마어마합니다. 150억t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어요. 한국 최대 탄광인 삼척탄광의 매장량(2억t)에 비하면 어마어마한 수준입니다.

과거 일제는 이곳에서 풍부한 석탄으로 인조 석유 만들기에 나섰어요. 석탄이 들어 있는 거대한 통에 산소와 증기를 집어넣고 고온·고압 처리하면 합성 가스를 추출할 수 있고, 이를 다시 정제하면 '액화석탄'이 만들어집니다. 쉽게 말하면 석탄으로 액체 연료를 만든 겁니다.

일본은 어떻게든 석유 대체재를 만들어 내겠다는 계획으로 엄청난 비용을 들여 아오지에 인조 석유 생산 공장을 만듭니다. 그러나 그렇게 만들어진 인조 석유는 처음 계획의 1%도 안 될 정도로 그 양이 보잘것없었습니다. 석탄 처리에 들어간 비용을 감안하면 배보다 배꼽이 큰 수준이었습니다.

이후에도 인류는 석유 대체재를 찾았지만, 여전히 석유에 크게 의존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과연 석유 없이 살 수 있는 날이 올까요? 
이한 작가·'한잔 술에 담긴 조선' 저자 기획·구성=김민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