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위인과 정신건강] 27년간 박탈당한 자유… 복수 대신 모두의 자유 위해 헌신했죠

입력 : 2026.06.30 03:30

넬슨 만델라와 외상 후 성장

아프리카의 넓은 하늘 아래, 여느 아이와 다를 바 없는 한 소년이 있었습니다. 친구와 전쟁놀이를 하고, 강가에서 첨벙첨벙 물장구를 치던 아이였지요. 때로는 말썽도 피웠고요. 소년의 이름은 롤리흘라흘라(Rolihlahla). '나뭇가지를 흔드는 사람'이라는 의미인데 '말썽꾸러기'라는 뜻으로도 쓰였다고 해요.

평범했던 소년은 커가며 또 다른 이름을 갖게 됩니다. 그리고 훗날 세계 사람들은 그 이름을 들으면 '자유'와 '용기', 그리고 '용서'라는 소중한 가치를 떠올리죠. 바로 남아프리카공화국 최초의 흑인 대통령 넬슨 만델라(1918~2013)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넬슨 만델라의 생전 모습입니다. /AFP 연합뉴스
넬슨 만델라의 생전 모습입니다. /AFP 연합뉴스
만델라는 현재 남아공 이스턴케이프주의 도시인 움타타에서 태어났어요. 학교를 다니기 시작하면서 선생님으로부터 받은 영어식 이름이 '넬슨'입니다. 초·중·고와 대학을 거치며 만델라는 피부색 때문에 차별받는 세상에 대해 알게 됐어요. 같은 하늘 아래 살면서도 흑인들은 좋은 학교에 가기 어려웠고, 심지어 가고 싶은 곳을 자유롭게 오가기도 힘들었거든요. 만델라는 백인 정권에 저항했습니다. 흑인 차별 조치에 맞서 싸울 동료를 모으는 등 흑인 인권 운동을 하다가 정권의 눈엣가시가 돼버렸습니다. 결국 44세였던 1962년 감옥에 들어갑니다.

그가 수감된 기간만 무려 27년 6개월에 달합니다. 이때 그는 외로움, 절망과 싸워야 했어요. 화가 치미는 날도, 모든 걸 포기하고 싶은 날도 그에게 많았지요. 그런데 놀랍게도 만델라는 고통 속에서도 마음을 다시 세우는 법을 배워 갔어요. 미워하는 마음을 꼭 쥐고 있으면 결국 자신의 마음마저 어두워진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정신적으로 성숙한 거죠.

정신의학에서는 큰 상처를 겪은 뒤에도 삶의 의미를 다시 찾고 더 단단해지는 힘을 '외상 후 성장'(post-traumatic growth)이라고 부른답니다. 보통은 외부에서 강한 충격을 받으면 극심한 스트레스를 느끼는데, 만델라는 뭐가 달랐을까요? 정신의학에서는 사람이 평소 보이는 모습에 주목합니다. 만델라는 좁고 차가운 감옥방에서도 이불을 반듯하게 개고, 책을 읽는 규칙적인 하루를 보냈습니다. 스스로 무너지도록 내버려두고 싶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어려운 상황에서도 자신을 다잡으려는 일상의 노력이 그를 성장하게 한 것으로 보인답니다.

만델라는 일흔을 넘긴 1990년 감옥에서 풀려났습니다. 긴 시간을 감옥에서 보냈으니 여느 사람이라면 분노가 치밀어 올라 복수를 생각할 법도 합니다. 하지만 그는 이렇게 말했어요. "이제 우리는 함께 살아가야 합니다."

그 말은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였어요. 수많은 사람의 용기와 만델라의 끈질긴 노력 속에서, 남아공의 인종 차별 정책인 '아파르트헤이트'는 결국 무너집니다. 그는 1993년 노벨 평화상 수상자에 선정됐고, 1994년엔 처음으로 흑인들에게 투표권이 부여된 남아공 대선에서 첫 흑인 대통령에 당선됩니다. 이후 대통령 임기를 마친 뒤엔 어린이 교육, 약자를 돕는 활동을 했습니다. 그는 2013년 세상을 떠났지만 여전히 남아공 사람들의 '정신적 지주'입니다.

우리도 살다 보면 속상하고 억울한 일을 겪어요. 그럴 때 만델라의 삶을 한번 떠올려보는 건 어떨까요?
이헌정 고대 안암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